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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엘러의 비전, 바젤의 문화 인프라,세계 컬렉터 빨아들이는 예술 권력

중앙선데이 2010.06.19 16:21 171호 2면 지면보기
장 미셸 바스키아의 ‘In Italian’(1983). Acrylic, oilstick, marker, and assemblage on canvas mounted on wood supports, two panels225*203㎝. Courtesy, The Brant Foundation, USA .2010, ProLitteris, Zurich
41회 아트 바젤, 블루칩을 주목하라
세계 최대의 미술 장터로 불리는 바젤 아트 페어의 VIP오프닝이 열리는 15일. 스위스 바젤의 기차역에서 택시를 타고 페어장 입구에 내렸다. 공식 오프닝을 몇 시간 앞두고, 선택 받은 컬렉터들에게 주어지는 첫 번째 선택 초대장(First Choice Pass)을 손에 든 VIP들이 서둘러 입장하고 있었다. 최고의 미술품들이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곳, 새로운 긴장과 흥분이 자연스레 몰려왔다.

아트 바젤, 세계 최대 미술장터로 자리잡은 비결


올해 아트 바젤에서 미술사적으로 검증 받은 작품들이 선전할 것이라는 것은 상반기에 있었던 메이저 경매 회사들의 경매 결과를 통해 이미 감지됐다. 1층에 자리한 대형 갤러리들은 모던 아트 작품을 많이 선보이며 안전한 카드를 내세우는 전략을 여실히 드러냈다. 피카소, 바스키아, 워홀, 칼더, 모딜리아니, 자코메티, 폰타나, 부르주아 등 모던과 현대 미술 거장들의 작품을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올해에는 유난히 장 미셸 바스키아(1960~88)의 작품이 눈에 띄었다. 6개 갤러리에서 30 점의 바스키아 작품을 출품했다. 그중 돋보였던 ‘가스 트럭(Gas Truck)’이라는 작품은 바스키아 작품의 대표적 화상인 샤프라지(Shafrazi) 갤러리에서 출품됐다. 가격은 1200만 달러(약 144억원). 올해는 유독 왜 이렇게 바스키아가 쏟아져 나왔을까.

바이엘러의 힘
가장 큰 이유로 바이엘러 재단에서 열리고 있는 바스키아 회고전의 영향력을 꼽을 수 있다. 바젤 시 외곽 리헨(Riehen)에 위치한 바이엘러 재단은 스위스의 화상이자 컬렉터였던 에른스트 바이엘러(Ernst Beyeler·1921~2010)가 1997년 설립한 재단이다. 재단에서 설립한 미술관은 2000년 9월 공식 개장했는데, 아트 바젤 페어장에서 트램(일종의 전차)으로 약 15분 거리에 있다. 건물이 주변의 고요한 자연 경관과 최대한 교감할 수 있도록 건축가 로렌조 피아노(Lorenzo Piano)가 설계했다. 이곳에서는 바이엘러가 그의 아내 힐디와 함께 평생 수집하고 기증한 230여 점의 인상파 및 모던 아트 작품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또 제스퍼 존스 전, 칸딘스키 전, 세잔 전, 앤디 워홀 전, 마크 로스코 전, 폴 클레 전, 자코메티 전 등 국제적으로 중요한 특별 전시를 개최해오고 있다.

아트 바젤의 북적거리는 장터에서 빠져나와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에 도착한 순간 초록의 자연 경관 속에 보석처럼 자리 잡은 건물을 보면 일단 숨을 크게 내쉬어 보게 된다. 복잡한 시장을 탈출해 마침내 쉼터에 다다른 느낌마저 주는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은 페어 기간 동안 바젤을 찾는 사람들이 꼭 들러야 하는 곳으로 자리매김했다.

24세에 고서적을 파는 작은 갤러리를 인수하면서 화상의 길에 접어들었던 바이엘러는 좋은 작품을 알아보는 눈이 있었고, 수준 높은 전시를 하는 기획자로서의 면모가 있었으며, 저명한 컬렉터와 뮤지엄을 설득할 줄 아는 비즈니스맨의 기술을 겸비한 사람이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앞서 20세기 미술사에서 중요한 작가들의 작품을 알아보았다. 후에 컬렉터로서 두각을 드러내면서 피카소와 클레, 칸딘스키, 자코메티 등의 작품들을 사들였다. 그는 1971년 아트 바젤을 만들도록 도왔는데, 당시 바젤엔 이렇다 할 문화적 인프라가 없었던 만큼 사람들은 그가 무모한 시도를 한다고 조롱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바젤의 위상을 볼 때 역시 바이엘러의 비전은 시대를 앞서갔다고 하겠다. 컬렉터로서 위상이 높아진 그는 여전히 딜러로서도 일했는데, “왜 아직도 딜링을 하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좀 더 좋은 작품을 손에 넣기 위해서다. 나는 아직도 사냥꾼과 같다. 내가 이 모든 세월 동안 이것에서 기쁨을 찾았듯이 말이다.”
바이엘러는 올해 2월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아내 힐디와는 2년 전 사별한 터였다. 현재 바이엘러 재단을 이끄는 디렉터는 8년간 아트 바젤의 디렉터로 일하면서 세계 미술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로 인정 받은 사무엘 켈러(Samuel Keller)다.

이렇듯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바이엘러 재단에서 기획하는 전시에 대한 반응은 시장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아트 바젤 기간 중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에서는 자코메티 회고전이 열렸는데, 아트 바젤 부스에서도 자코메티의 수작들이 눈에 띄었다. 공교롭게도 마침 올해 2월 소더비 런던 경매에서 그의 브론즈 작품 ‘걷는 남자 I’이 9520만 달러라는 경이적인 가격에 판매되며 당시 세계 경매 최고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현재 세계 미술 경매시장에서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은 5월 4일 크리스티 뉴욕 경매장에서 팔린 파블로 피카소의 1932년작 ‘누드, 녹색잎과 흉상’으로 1억640만 달러(약 1180억원)를 기록했다).

바스키아,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
88년 28세 나이에 마약 과다 복용으로 요절한 작가 장 미셸 바스키아는 살아 생전 900~1000여 점의 유화와 2000~3000여 점의 드로잉을 남겼다. 이번 바이엘러 재단의 전시는 살아있었더라면 올해로 50세를 맞았을 바스키아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이었다. 전 세계 개인 컬렉터와 미술관에서 모은 100여 점의 유화 및 드로잉 작품들로 꾸며졌다. 뉴욕 지하철의 그래피티를 그리면서 음악가로서, 그리고 배우로서 살았던 바스키아는 19세 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카리비아에서 미국으로 이민온 흑인 가정에서 자라난 그는 베니스 비엔날레와 도큐멘타, 아트 바젤 등에 참여하면서 평단과 시장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최초의 흑인 작가였다. 앤디 워홀, 키이스 해링, 프란시스코 클레멘트 등 미술계 스타들과 함께 작업했다.

어린 아이의 낙서나 만화와 같은 그림을 빨강·파랑·노랑·초록 등의 화려한 원색으로 거칠게 채색하고, 해골이나 일상적인 오브제들, 그리고 시적인 문구를 적어 넣은 그림들…. 소비 문화와 시대의 부당함을 비판적이고 아이러니하게 풍자했던 바스키아의 대표적 작품들이 이번 아트 바젤에서도 단연 화제가 됐다. 스물 여덟의 나이로 일찍 세상을 등졌지만 그의 작품들은 영원을 누리며 이렇듯 불꽃을 태우고 있었다.

이번 전시에는 세계 뮤지엄들과 개인 소장가들이 최고 퀄리티의 작품들을 대여해주었다. 그 명단에는 뉴욕 현대 미술관, 휘트니 뮤지엄, 퐁피두 미술관, 브로드 재단 등의 기관과 세계적인 소장가인 스티븐 코언, 무그라비 가족, 이르마 브라만, 아담 린트만, 그리고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가수 마돈나, 테니스 선수 출신인 존 매켄로 등이 포함돼 있다.

바스키아 작품의 시장에서의 가장 최고 기록은 2007년 소더비 경매에서 세운 기록으로 1460만 달러였다. 이번 바이엘러 재단의 전시로 개인 소장가들은 그의 작품가격이 훌쩍 올라가게 될 것을 기대하며 미소 짓고 있을지 모른다. 조만간 바스키아 작품의 가격 기록 갱신 드라마가 탄생하리라고 예견하기는 어렵지 않다.

바젤의 힘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에서는 바스키아 전시와 함께, 푸에르토리코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작가였던 펠릭스 곤살레스 토레스(Felix Gonzalez-Torres·1957~96)의 전시도 함께 열리고 있었다. 또한 바젤 외곽의 샤울라거(Schaulager) 재단에서는 미국 작가 매슈 바니(Matthew Barney·43)의 전시가, 바젤 시내의 현대 미술관 쿤스트뮤지엄 바젤 (Kustmuseum Basel)에서는 캐나다 작가인 로드니 그레이엄(Rodney Graham·51)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아트 바젤을 명품 아트 페어로 이끌어가면서 전 세계 컬렉터와 갤러리스트, 큐레이터들을 집결시키는 바젤의 인프라는 단순히 아트 페어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거대 미술 시장을 지탱해주고 서포트해주는 문화적 인프라가 함께 가동되고 있다. 문화적 성공 없이는 시장도 성공할 수 없다.




최선희씨는 런던 크리스티 인스티튜트에서 서양 미술사 디플로마를 받았다. 파리에 살면서 아트 컨설턴트로 일한다.『런던 미술 수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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