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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공 앞세워 각개약진…모두를 열광케 한 ‘한방’은 없었다

중앙선데이 2010.06.19 16:17 171호 4면 지면보기
1. 라커룸
경기를 앞둔 긴장감. ‘선수’들은 축구화 끈을 동여매며 2002년 월드컵광고를 회상한다. “대~한민국, 짝짝 짝 짝짝!” 그것으로 모든 승부가 끝나버렸다. 사람들은 ‘Be the Reds!’라는 슬로건이 시키는 대로 대한민국을 외치고, 손바닥이 따갑도록 손뼉을 쳤다. SK텔레콤의 완승이었다. 공식 후원사였던 KTF는 손가락만 빨고 있었다. ‘다시는 이런 일방적인 게임은 없으리라-.’ 선수들은 눈으로 자신감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각자 ‘준비한’ 붉은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경기장으로 나간다.

카피라이터 정철의 ‘2010 월드컵 광고전’ 관전평


2. 전반전
애국가 대신 ‘오 필승 코리아!’가 연주되고, 관중은 “대~한민국 짝짝 짝 짝짝!”으로 화답한다. 과연 이보다 강력한 메시지를 보여줄 수 있을까? 선수들 표정에 언뜻 부담감이 스친다. 주심의 휘슬이 울리고 경기가 시작된다. 곳곳에 SBS 카메라뿐인 것이 이채롭다.

먼저 스리톱 중 하나인 이번 경기의 공식후원사 현대자동차. 한마디로 김연아 마케팅이다. 김연아가 그 상큼한 표정으로 ‘샤우팅 코리아!’라는 메시지를 들고 동분서주한다. 특히 눈에 띄는 기획은 대한민국 경기일정에 따른 맞춤 크리에이티브. 첫 경기 그리스 전에선 대한민국의 샤우팅에 그리스 신들이 무너지고, 아르헨티나 전에선 프리킥을 막는 선수들이 귀를 막고 무너진다. 나이지리아 전에선 밀림 속 동물들이 무너진다.

다음은 SK텔레콤. 그의 메시지는 ‘다시 한번 대한민국!’ 역시 갖고 있는 자산을 재활용하려는 전략이다. 김장훈·싸이 등이 응원단장으로 앞장선다. ‘당신의 Reds는 지금 어디 있느냐’고 묻는 붉은 악마 티셔츠를 소재로 한 크리에이티브가 눈에 띈다. 북한의 정대세가 출연한 광고 한 편이 천안함과 함께 침몰해 버렸다는 소문이 못내 아쉽다.

다음은 스리톱 중 마지막 올레 KT. 2002년의 설움을 만회하려는 듯 임팩트 있는 기술을 보여준다. ‘이름보다 더 큰 응원은 없습니다’라는 카피 아래 등장하는 대표선수들의 이름 묶음. 용영지운…동기보영…승리! 황선홍밴드로 통칭되는 최진철·김태영·유상철 등 2002년 스타들의 과감한 재기용이 참신해 보인다. 올레! 라는 슬로건을 띄우려는 정성이 눈물겹지만 여전히 쉽지 않은 것 같다.

이들 스리톱처럼 활발한 스트라이커는 아니지만, 조용히 자기 자리에서 기량을 발휘하는 몇몇 선수들도 눈에 띈다. 바로 외환은행과 두산, 그리고 버드와이저다. 그동안의 월드컵에서 한 골도 넣지 못한 이영표를 등장시킨 외환은행 광고는 잔잔한 울림이 있었고,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마운드에 꽂힌 태극기를 다시 살려내며, 이번에도 기적이 있다면 그건 사람일 거라는 메시지를 던진 두산도 공감을 얻는 데 성공한 것 같다. 버드와이저는 유머광고로 경기의 긴장을 풀어준다. 승부차기를 승리로 이끄는 건 미녀가 아니라 관중의 버드와이저 카드섹션이라는 광고.

이외에도 정말 많은 선수가 전반전을 뛰었다. 김혜수를 등장시킨 삼성생명. 이청용의 시저스킥이 빛나는 기아자동차. ‘go with visa!’ 대신 ‘go korea!’로 일시 변신한 비자카드. 광화문에서 길을 잃고 친구를 찾는 다음 로드뷰. 애니메이션으로 박지성을 조금 더 잘생기게 만든 삼성그룹. 응원할 때도 역시 맥심 아이스커피라는 이나영과 박상면의 주장. 김종국과 김수로가 외치는 대~한민국 훌랄라 랄라! 히딩크의 재등장 파파로스 피자. 무한도전 팀이 선수로 직접 나선 신한금융그룹. 김흥국이 축구공을 모자로 쓰고 나와 시청자의 인내력을 테스트한 전자랜드 광고까지.

축구 없는 광고는 ‘앙꼬 없는 찐빵’이라는 듯 너도나도 축구공을 들고 나섰다. 전반전은 한마디로 각개약진. 주심의 휘슬이 울리고 선수들이 다시 라커룸으로 들어간다.

3. 하프타임
전반전 경기 내용만으로 전체를 평가하긴 이르지만, 후반 선수교체를 위해서라도 간략한 분석은 필요해 보인다. 각개약진이란 온 국민을 하나로 묶는 대형 스트라이커가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대자동차의 김연아가 이번 경기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자리매김했으나 홈플러스 매장에서도 불경스럽게 축구공을 차며 뛰어다니고, 이승기와 입을 맞춰 KB를 노래하기도 하면서 나중엔 어느 팀 소속인지 분간이 어렵게 만들어버리는 약점도 노출했다.

광고와 길거리응원을 연결하려는 시도는 실패로 보인다. 우리 국민은 2002년처럼 자연스럽게 하나 되기를 원했고, 기업은 그들이 만들어놓은 공간에 들어가 기업홍보의 한 점이 되라고 요구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이번 월드컵 광고는 2002년의 대~한민국 신드롬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그런 초대형 임팩트를 꿈꾸며 너도나도 샤우팅했지만 손에 잡히는 게 크게 없었던 전반전. 그래서 외환은행이나 두산 광고가 눈에 띄었는지 모른다. 모두가 시끄러울 때 조용한 것이 오히려 더 강한 임팩트를 주니까.

그러나 이제 전반전이 끝났을 뿐이다. 이어질 후반전 광고들을 조금 더 길게 지켜봐야 한다. 지금 우리 대표팀이 예선만 치르고 돌아올 것 같지 않으니까. 월드컵 광고들에도 끝까지 선전할 것을 부탁한다.



‘정철카피’ 대표로 26년째 광고카피를 쓰고 있는 카피라이터. 최근엔 『내 머리 사용법』『불법사전』 등을 선보이며 활발한 작가활동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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