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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 기자의 까칠한 무대<31>30억원 증발 사건?

중앙선데이 2010.06.19 16:12 171호 5면 지면보기
올 상반기 최고 화제작으로 기대되던 뮤지컬 ‘미션’이 좌초됐다. ‘미션’의 한국 측 제작사인 상상뮤지컬컴퍼니는 16일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이탈리아 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공연을 연기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공식적 표현은 ‘연기’지만, 언제 다시 올라갈지 현재로선 전혀 가늠할 수 없다. 공연 취소라는 말이 더 적합할 듯싶다.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 폭포가 떨어지는 순간 울려 퍼지던 오보에의 아련함. 뮤지컬 ‘미션’은 우리에게 친숙한 영화 ‘미션’을 토대로 만들려 한 거 맞다. 세계적 배우 사라 브라이트먼이 출연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한국이 판권을 사들여 돈을 대면 이탈리아가 제작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탈리아 배우가 출연하고, 모리코네가 음악을 몇 곡 더 추가했다. 세계 초연 무대는 6월 중순 서울 세종문화회관으로 잡혀 있었다. 이후 작품은 세계 각지로 돌아다니는, 야심 찬 프로젝트였다.

완성도가 미흡해 공연을 미룬다는 말, 과연 누가 믿을까. 공연이 취소된 진짜 이유는 돈이다. 뮤지컬 ‘미션’의 총 제작비는 40억원. 이 돈은 모두 한국 측 부담이다. 한국에서 이탈리아로 40억원이 들어가야 한다는 얘기다. 이 중 30억원만 넘어갔다. 나머지 10억원이 마련 안 돼 공연이 중단된 것이다.

그래도 전체 제작비의 4분의 3이 투입됐는데, 무려 30억원의 거금이 들어갔는데 공연이 취소된다는 거, 이상하지 않은가. 한국 측 제작사는 “모자란 돈은 공연이 올라가고 티켓이 팔리면 그 돈으로 메우겠다”고 여러 번 설득했지만 이탈리아는 요지부동이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이탈리아가 너무 야박한 게 아닐지 모르겠다. 이 대목에서 외국과 한국의 온도 차가 있다.

해외에서 뮤지컬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건 투명성이다. 제작과 관련된 별도의 계좌를 만든 뒤 돈의 입·출금은 철저히 그 계좌를 통해야만 하도록 한다. 돈이 들어가고 나가는 날짜도 절대 어겨선 안 된다. 그게 룰이다. 근데 한국의 뮤지컬 제작 관례는 그렇지 않아 왔다. A작품의 제작비와 B작품의 제작비가 혼용되곤 한다. 돈이 제작에만 온전히 들어가지 않은 채 딴 쪽으로 유용되기도 한다. 입금 날짜를 꼭 지키지 않고, 외상이나 빚으로 떠안고 얼렁뚱땅 넘어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뮤지컬 ‘미션’이 개막 10여 일을 앞두고 갑작스레 중단하게 된 근본 원인엔 한국식 ‘무대포’ 제작 관행이 외국의 엄격함에 한 방 호되게 맞은 거라고 보면 된다.

손해 본 이는 제작사만이 아니다. 작품이 올라가야 할 세종문화회관으로서도 한 달간 파리 날리게 됐으니 피해를 본 셈이다. 하지만 세종문화회관이라고 책임이 없을까. 뮤지컬 ‘미션’의 한국 제작사인 상상뮤지컬컴퍼니는 지금껏 제대로 된 대형 뮤지컬을 올린 적이 없는, 신생 제작사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세종문화회관으로서도 극장을 내주는 데 까다롭게 해야 했을 터. 엔니오 모리코네와 ‘미션’이라는 명성에만 취해 제대로 된 검증 없이 대관을 해준 건 아닐까. 어차피 대관료 4억5000만원은 미리 받아 두었으니 공연이 올라가든 말든 별 상관 없다는 생각이 있었으리라곤 믿고 싶지 않다.

이 사건의 남은 한 가지. 제작에 투여된 30억원은 어떻게 될까. 그냥 증발돼 버리는 걸까. 그렇다면 투자자들은? 제작 방식이든 대관이든 잘못된 관행을 고치는 수업료 치곤 30억원은 너무 비싸다.




중앙일보 문화부 공연 담당 기자. '성역은 없다'는 모토를 갖고 공연 현장 구석구석을 헤집고 있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은 ‘더 뮤지컬 어워즈’를 총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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