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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이 있는 한 디자이너의 생명은 끝이 없다”

중앙선데이 2010.06.19 16:00 171호 10면 지면보기
스테파노 루소가 디자인한 혁신적인 스타일의 서글라스들.사진 루소 디자인 제공
여름이다. 선글라스의 계절이다. 올해는 눈 밑의 다크서클을 확실하게 가려주는 큼직한 나비 형태, 파일럿이 된 듯한 느낌을 만끽하게 해주는 세련된 잠자리 테, 티타늄 테에 24K 도금을 한 리미티드 에디션, 부분적으로 대나무 등 나무를 사용한 자연주의 테 정도가 주목할 만한 트렌드다.

밀라노 스튜디오에서 만난 세계적 아이웨어 디자이너 스테파노 루소

도대체 이 안경들은 누가 디자인하는 걸까. 그 귀한 직업을 가진 사람 중 하나가 스테파노 루소(Stefano Russo·사진) 루소 디자인 대표다. 1997년 한국 주얼리 디자인 협회가 서울 신라호텔에서 주최한 디자인 세미나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뿔테 안경 속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깡마른 몸매의 아이웨어(Eyewear) 디자이너다.

-루소 디자인에서는 어떤 일을 하나.
“패션 관련 회사가 새 컬렉션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우리는 리서치를 하고 컨셉트 및 테마를 설정한다. 이런 종합 정보를 아르마니와 루이뷔통 등 중요한 패션 회사에 제공하고 있다. 세상은 너무 복잡하다. 수천 가지 네트워크에서 나오는 수많은 정보로 인해 회사들은 오히려 어디로 방향을 잡아야 할지 모른다. 이런 회사들에 내 정보와 감각을 이용해 방향을 제시한다.”

-어떻게 아이웨어 디자이너가 되었나.
“로마에 있는 ‘아카데미아 디 코스투메 모다’를 졸업한 후 ‘콘서트(Concert)’라는 회사가 주최한 공모전에 참여했다. 공교롭게도 내 작품들이 1등부터 4등까지 모두 차지했다. 그래서 이 방면에 남보다 나은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공모전을 주최한 회사와 협동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베로나에 있는 주얼리 회사에서 일했는데 그때 주얼리 디자인보다 안경 디자인을 내가 더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플라스틱이나 메탈 등 평범한 재료로 사람의 인상을 바꿀 수 있는 물건을 제작한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

-안경 디자인의 특징이라면.
“안경은 인간의 오감(五感)과 가장 밀접한 액세서리다. 눈은 안경을 통해 세상을 보고, 안경 다리는 귀에 걸치고, 중심부는 코 위에 얹혀지고, 어떤 사람들은 경우에 따라 안경 다리를 입에 물기도 하고 형태와 재질을 손으로 만질 수 있다. 오감을 한번에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디자인 제품인 셈이다.”

-지금까지 경력은.
“2000년부터 2008년까지 프라다에서 안경-선글라스의 유일한 디자이너로 일했다. 또 프라다 그룹에 속한 다른 브랜드-미유미유, 헬무트 랭, 질 샌더의 선글라스 디자인도 함께 했다. 동시에 내 스튜디오에서는 주얼리나 시계 등 다른 분야의 디자인 일을 겸할 수 있었다. 2008년 말 루이뷔통으로부터 프러포즈를 받고 옮겼다. 루이뷔통에서는 아이웨어 디자인뿐 아니라 마케팅 팀과 함께 다른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이탈리아 회사와 프랑스 회사의 차이라면.
“일단 루이뷔통은 세계 최대의 럭셔리 그룹이라 그런지 가치가 다르게 느껴지고 경영 중심이며 관리적이다. 이탈리아 회사들은 그에 비하면 대부분 가족적이다. 각각 장단점이 있지만 가족경영 그룹의 단점이라면 외부인은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어느 한계 이상 성장하기 힘들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대신 경영 중심적 회사들은 실력이 뛰어나면 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아이디어가 있으면 전공 분야 아닌 다른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고 그에 따른 지출에 리미트를 두지 않는다.”

-스튜디오는 밀라노에 있는데 .
“매주 3일은 루이뷔통의 파리 본사에서, 그리고 나머지 3일은 밀라노의 내 스튜디오에서 일한다. 전에는 토요일은 근무를 하지 않았지만 요즘은 일이 많아 스튜디오에 나온다.”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
“일상생활 중 ‘딱’(엄지와 중지 손가락을 튀기며) 하는 순간에 온다. 그렇기 때문에 생활의 순간순간이 나에게는 아이디어의 소재다.”

-다른 디자인도 하나.
“시계와 주얼리다. 주얼리는 현재 엠포리오 아르마니의 남성 주얼리를 주로 하고 시계 디자인은 기회가 될 때마다 한다. 이제까지 한 것 중 가장 높은 판매 실적을 올린 것이 스와치의 두 번 감는 팔찌시계다.”

-디자이너로서 당신의 생활은 어떤가.
“매우 흥미롭다. 리서치, 주변의 모든 사물들, 새 프로젝트들, 일본·인도·서울·파리 등으로의 여행, 이런 모든 것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고 디자인을 계속할 수 있게 한다. 난 지금 각 브랜드의 주연배우로서, 그 프로세스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디자인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함을 느낀다. 창조자는 아티스트, 디자이너, 마케팅 디렉터 그리고 매니저를 동시에 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가 모자라면 완벽한 창조자라 할 수 없다.”

-디자이너는 언제까지 활동할 수 있나.
“한계가 없다. 일에 대한 열정이 있으면 디자이너로서의 생명은 죽을 때까지 간다. 단 열정 없이 유행만 좇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디자이너로서의 생명력을 잃게 된다. 모든 소비자와 디자이너에게는 그들에게 맞는 시장이 있다. 최고의 소비자에겐 최고의 디자이너가 있고 일반 소비자에게는 평범한 디자이너가 있다. 유행만 가지고는 절대 최고가 될 수 없으며 전진할 수 없다. 거기에 에너지가 필수적으로 보태져야 한다.”

-누구와 일하나.
“스튜디오에서 함께 일하는 3명의 디자이너들은 내 친동생들인 동시에 내 파트너들이다. 그들이 어렸을 때 난 아버지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진짜 형으로 함께 성장하고 있다. 그들이 나를 받쳐주기에 지금의 내 일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제 막 우리 멤버가 된 내 아들 세바스티안 또한 나의 보물이다.”

-처음 시작하는 디자이너들에게 조언한다면.
“한 곳에서만 일하는 디자이너는 네거티브다. 움직여라. 그리고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집중해라. 또한 너의 본능에 충실해라.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매우 어렵다. 누구는 불황, 경제위기라고 하지만 나는 ‘국제적으로 바뀌는 현상’ 혹은 ‘재편성’이라 부르고 싶다. 모든 것은 바뀐다. 집중하고 너의 열정에 밥을 먹여라.”




이탈리아 밀라노를 무대로 활약 중인 보석디자이너. 유럽을 돌며 각종 전시회를 보는 게 취미이자 특기. 『더 주얼』(2009)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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