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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영광?

중앙선데이 2010.06.19 15:58 171호 10면 지면보기
지난주 토요일에도 나는 서점에 들렀다. 특별히 다른 일이 없다면 주말 오후는 서점에서 책 구경하는 것이 나의 허영이고 사치다. 그날 비가 쏟아지긴 했지만 나는 퇴근하자마자 강남 교보문고로 갔다. 사람의 감성은 기후의 영향을 받는다. 비 오는 초여름 찾아간 서점에서는 아무래도 문학 코너에서 서성인다. 그때 작가 신경숙 선생의 사인회가 열리고 있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나는 생각했다. 이것은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린 거라고.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5월 12일 저녁 7시25분,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 들어있는 휴대전화가 잠깐 진동했다. 문자가 들어온 것이리라. 그러나 나는 확인하지 못한다. 경영진과의 식사 자리였고 마침 어느 분의 말씀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순간이라서 나중으로 미뤘다. 5분 정도 지났을까? 휴대전화가 격렬하게 진동한다. 중앙SUNDAY 담당 기자다. 무슨 일일까? 나는 자리에서 빠져 나와 전화를 받는다.

“제가 보낸 문자 봤어요?”
“아뇨, 식사 중이라서요.”
“그럼 문자 먼저 보고 통화해요.”

전화를 끊고 문자를 확인하려는 그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아, 이제 연재를 끝내자는 거구나. 말로 하기 힘드니까 문자로 먼저 통보한 거구나. 그래, 최근 몇 편은 완성도가 떨어졌어. 반전도 약했고. 메시지도 없었잖아. 무엇보다 이 칼럼의 역할은 웃기는 것인데 공연히 감동을 주려고 했어. 그래도 직접 말로 해주면 좋을 텐데. 나는 사랑하는 여자로부터 결별 통보를 받는 남자처럼 문자를 확인한다. 손이 살짝 떨린다.

“오늘 소설가 신경숙 선생을 뵈었는데 중앙SUNDAY를 좋아하는데 그중 ‘인생은 즐거워’를 가장 먼저 보신다고.”
나는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무 흥분해 이성을 잃은 내가 대체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영광이라고, 그것도 가문의 영광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게다가 기자가 묻지도 않은 말을 덧붙인다. 주위에서 반응이 뜨겁다, 이 칼럼 때문에 신문을 구독하겠다는 사람도 만났다, 다른 매체에서 원고 청탁이 쏟아져 큰일이다 등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마구 지어내 전한다.

그날 받은 문자는 지금도 내 휴대전화에 간직하고 있다. 그러니 선생의 사인회는 나를 부르는 전화벨이다. 나는 아직 선생의 책을 사지 않은 내가 부끄러웠지만 어쩌면 이렇게 친필 사인을 받으려고 그랬는지 모른다. 나는 책을 산다. 그리고 사인을 받으려고 늘어서 있는 사람들의 긴 행렬 끝에 가서 선다.

도무지 줄이 줄어들지 않는다. 선생의 사인회는 의례적인 사인회와 다르다. 독자 한 사람 한 사람 다정과 정성으로 충분한 시간을 나눈다. 시계를 자주 확인하는 서점과 출판사 행사 담당자들의 초조함을 선생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짧은 시간이지만 스침이 아니라 만남을 고집하는 선생의 고약함이리라.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그날 선생이 내게 해준 말들, 그러니까 숨막힐 듯 아름다운 선생의 문장처럼 쉼표와 말줄임표가 가득했던 선생의 말들과 고요한 웃음, 그리고 책의 면지에 써준 정갈한 글씨의 헌사를 이곳에서 밝히고 싶지 않다. 그것은 오직 내 마음의 박물관에 진열하고 싶으니까. 다만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선생과 나눈 마지막 대화만 옮긴다.

“선생님, 제 코너를 가장 먼저 보신다고 들었습니다.”
선생은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신문을 뒤에서부터 보거든요.”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대한민국 유부남헌장』과 『남편생태보고서』책을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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