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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 뒤의 고요

중앙선데이 2010.06.19 15:55 171호 11면 지면보기
끝났습니다. 누렇게 익은 청보리는 흰색 비닐 랩에 둘둘 말려 조사료(섬유질이 풍부한 소 사료)로 팔려나갔습니다. 땅을 갈아엎는 트랙터를 따라 벌레를 쪼아 먹던 백로들의 분주함은 날아가고, 농수로를 따라 힘차게 흐르던 물은 각각의 논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많은 것들과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한 가닥의 뿌리를 땅에 내린 모심기가 끝났습니다.

PHOTO ESSAY 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한시름 놓았습니다. 물론 가끔 논을 찾아 뜨거운 햇빛을 등에 지고, 달궈진 논물의 열기를 받아내며 풀을 뽑는 김매기가 남았으나 당분간 농부는 손을 놓습니다. 이제부터 어린 벼는 햇빛과 흙과 물의 도움을 받아 뿌리를 깊게 뻗고 쑥쑥 자라야 합니다. 농부는 잦은 발걸음으로 지켜볼 뿐 고난과 영광을 자연의 도리에 맡깁니다. 오랜 세월,
무딤이 들판 한가운데 자리한 ‘부부 소나무’는 그러한 도리를 몸소 버텼기에 지속 가능한 삶을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무딤이 들판에 고요가 찾아왔습니다.



이창수씨는 16년간 ‘샘이깊은물’ ‘월간중앙’등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2000년부터 경남 하동군 악양골에서 녹차와 매실과 감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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