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 미국만 사라지면 세계 평화? … 혼돈의 암흑시대가 올 것

중앙일보 2010.06.19 00:57 종합 22면 지면보기
콜로서스 - 아메리카 제국 흥망사

니알 퍼거슨 지음, 김일영·강규형 옮김

21세기북스, 546쪽, 2만8500원




책에 강력한 고압전류가 흐르고 있다. 겁나면서도 짜릿한 건 그 때문이다. 서구의 차세대 지성으로 꼽히는 니알 퍼거슨(46·하버드대 역사학 교수)의 이름값도 무시 못하지만, 놀라운 정보량과 전복적 문제제기가 밀도 높다. 때문에 이 책을 접하는 일이란 지적(知的)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기회다. 진정 흔치 않은 행운, 그러나 이 책은 격렬한 찬반논쟁을 피해갈 수 없어 보인다. 2004년 첫 출간 당시 미국 보수·진보 진영 모두가 얼떨떨해 했다는데, 한국사회라면 더 그렇다.





제국·제국주의에 대한 강력 옹호 때문인데, 이 분야의 다른 책과는 색깔 자체가 다르다. “나는 기본적으로 제국을 긍정한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21세기에 제국이 필요하다고 믿는다.”(77쪽) 미리 말씀 드리지만 오래 전 홉슨의 『제국주의론』을 탐독했던 독자라면 이 책을 밀쳐두는 게 좋다. 기억하시듯 홉슨에게 제국이란 곧 날강도에 다름 아니었다. 당연히 홉슨은 제국주의에 맞서 민족주의·반(反)식민주의를 지지한다. 그게 맞는 소리가 아닐까? 퍼거슨이 뭐 끼어들고 말고 할 여지조차 없는 것 아닐까?



하지만 뚜껑을 여니 그게 아니다. 역사를 긴 시선으로, 구조적으로 보자. 독립된 민족국가란 제국에 비해 신생체제에 불과하거나, 아주 예외적 경우였다. “제국은 늘 우리 곁에 있었다”(21쪽). 제국주의란 19세기에 반짝 했다가 사라진 게 아니다. 제국이 ‘악의 나라’이거나 시대착오적 개념도 아니다.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 말처럼 인류사에 패권국은 항상 존재했고 그게 보편이다. 때문에 국제사회의 룰을 정하고 경찰 역할을 맡는 힘의 중심축이 없으면 무극(無極)체제의 혼란·암흑시대가 찾아온다.



미국의 ‘세계의 경찰’ 역할에 대해 논란이 그치지 않는다. 사진은 두 줄기 광선 사이로 위용을 과시하고 있는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 ‘자유의 여신 상’. [중앙포토]
그런 경우는 서구역사에서 9~10세기 한 번뿐이었다. 바이킹이 설치던 고약한 때였다. 하지만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미국론이다. 저자가 볼 때 미국은 명백한 제국이다. 하지만 한사코 제국임을 부인하는 제국, 턱없이 유약한 제국이다. ‘일회용 제국’으로 끝날지 모른다는 경고도 그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인은 제국이란 말을 불편한 용어로 생각하거나, 욕설로 안다. 초강대국, 글로벌 리더십 등으로 표현하길 좋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건 말이 안 된다. 미국 GDP는 세계총생산량의 21.4%이고, 국방예산은 2~14위 국가들의 국방비를 합친 것과 같다. 또 130개국에서 752개 군사기지를 가지고 있는데, 19세기 대영제국도 그런 압도적 힘을 가져본 적 없다. 그런데도 미국이 고립주의의 낡은 깃발을 흔든다면 21세기 바이킹인 이라크·북한 같은 불량국가들이 판을 칠 것이다. 오해 마시라. 저자는 “나는 (미국) 의사당에 제국의 깃발을 날리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452쪽)고 선을 긋는다.



21세기에 질서를 부여할 자유주의적 제국(liberal empire)이 필요하며, 아무리 봐도 미국이 적격이라는 학문적 소신이다. 이 대목에서 그가 왜 제국주의론의 수정주의자로 불리는지 가늠된다. 제국은 날강도라는 전통적 시각을 뒤집기 때문이다. 걱정스러운 건 그가 ‘식민지 근대화론’자인 점이다. 그것도 확신범이라서 영국·프랑스·남아공·인도 등 48개국을 대상으로 한 경제성장 사례연구가 제시된다. 이점 우리에게는 불편한 진실이지만, 한국 관련 얘기가 책에 종종 등장한다. 한마디로 성공한 국가라는 것이다.



2차 대전 직후 한국·서독·일본은 ‘제국 아닌 제국’ 미국이 적극 개입해서 국가 만들기(nation building)에 승리한데 비해 베트남·이라크 등에서는 왜 실패했거나 죽을 쑤고 있는지를 그만의 분석틀로 제시한다. 눈여겨 볼 건 “공산주의 침략전쟁인”(162쪽) 한국전쟁 이야기 대목이다. 가늠대로 그는 원폭 사용을 주저하는 등 소극적인 제한전(制限戰) 논리에 충실했던 트루먼 대통령을 은근히 비판하고, 맥아더를 고대 로마의 케이사르에 비유한다.



‘정치경제학+역사학’인 묵직한 책 『콜로서스』는 당신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줄만한 책이다. 미국이 다윗에 쓰러지는 골리앗이 되기보다는 진정한 콜로서스가 돼야 한다는 내용이지만, 이에 대한 찬반·호오란 크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이런 큰 스케일의 책을 함께 읽으면서 중강국가(middle power) 한국의 활로에 대한 지식사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좋다면 그게 좋은 책 아닐까? 떠오르는 중국에 대한 대응법도 찾을 수 있다.



‘타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인 저자는 옥스퍼드대 출신의 영국인이다. 국내 번역서로는 『현금의 지배』 『제국』이 있다.



조우석(문화평론가)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