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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석 칼럼] 뒤샹의 소변기, 전시장의 똥바가지

중앙일보 2010.06.19 00:22 종합 25면 지면보기
소설가 박완서는 6·25 당시 신세계백화점 자리의 미군PX에서 근무했다. 스무 살 처녀의 그 경험은 데뷔작 『나목』이나 자전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싱아),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산)에 두루 등장한다. 특히 『싱아』와 『산』은 6·25의 생활사 증언으로도 일급인데, 풍부한 디테일이 빛난다. 그에 따르면 그 시절 속칭 PX물건, 미제물건의 위력은 엄청났다. 그곳서 흘러나온 담배 럭키스트라이크·카멜, 밀키웨이 초콜릿, 럭스 비누, 폰즈 크림의 힘으로 남대문시장 상권이 형성됐다.



PX는 그래서 “정신을 혼미케 하는 천박의 근원지이자, 이국적 활기”의 거점이었다. 그곳에서 구한 초콜릿 깡통우유 ‘타디’를 “삐삐 말라 머리통만 크고 얼굴에 버짐이 허옇던” 조카들에게 먹였다. 잠깐 새 살이 오르고 얼굴에 윤기가 흘렀다. 화려한 미제 포장지만으로 집안에 부티가 흘렀다는데, 그게 과장이 아니라는 걸 우리는 잘 안다. 지독한 궁핍은 얼마 전까지도 우릴 지배했으니까. 내처 외면해왔던 그 세목(細目)을 눈으로 보여주는 전시, 한국전쟁 60돌을 장식하는 멋진 전시가 ‘전쟁과 일상’(인사동 갤러리 떼)이다.



나는 거푸 두 번 가봤는데, 입구에서 탄성이 나온다. 이 많은 컬렉션 300여 점을 어떻게 구했단 말일까? 이를 테면 한 켠에 수두룩한 콜라깡통·연유통을 보라. 요즘엔 누가 쳐다보지도 않겠지만, 당시엔 품깨나 들였다. 깡통 하나하나를 망치로 두드려 편 다음 콜타르를 발라 기와 대용으로 썼다. “저게 왜 여기에 와 있지?” 싶은 교통표지판 몇 개도 은근히 히트다. 잘라낸 군용 드럼통에 정성껏 페인트칠 해 거리에 세워놓고 썼던 것이다. 강원 일부 지역에서 호롱불 대용이었던 ‘속을 긁어낸 수류탄’도 절묘하다. 심지를 꽂기 위해서는 구멍을 낸 총알 하나를 슬며시 붙여놓았다.



이런 용도변경에 피아의 구분이 있을 리 없다. 미군용 탄띠는 지게 끈이 됐고, 중공군 방망이수류탄은 소형 절구공이로 둔갑했다. 침 몇 개를 보관하는 휴대용 탄피 침통(針筒)도 기막히다. 사람 죽이는 총알을 활인(活人)의 의료용품으로 바꾼 지혜라니. 압권은 누가 뭐래도 군용 철모 똥바가지 한 쌍이다. 화장실 소변기를 뜯어내 미술관에 갖다 놓고 ‘샘’이라고 했던 마르셀 뒤샹부터 생각났다. 지금도 시골 일부에 남아있을 똥바가지를 천연덕스럽게 전시장에 올려놓은 건 그 못지않은 용기요, 사건이다.



‘샘’이 현대미술의 혁명을 알렸다면, 똥바가지는 ‘전후(戰後) 고난의 행군’을 되돌아보는 집단체험이다. 고백하지만 ‘샘’과 똥바가지 중 어떤 게 더 뛰어난 예술인지 구분해낼 자신이 내겐 없다. 아주 드문 경우이지만, 때론 예술·비예술, 파인아트·민속자료의 구분 자체가 의미 없어지는 법이다. 이 전시가 그렇다. 뿐인가? 전시장에 나온 삐삐선(통신선)으로 만든 장바구니·소쿠리 등 하나하나가 무궁무진 스토리의 보고다. 전시는 이달 말 종료된다는데, 그게 정말 아쉽다. 이 정도 수준의 컬렉션이란 국립민속박물관에도 없고, 용산 전쟁기념관에도 없기 때문이다. 광화문광장 아래층에서 앙코르 전시를 하면 어떨까? 그런 대박의 쇼를 이끌어낼 눈 밝은 공무원이 어디 없나?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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