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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의 소프트파워] 6·15와 6·25 사이에서

중앙일보 2010.06.19 00:17 종합 34면 지면보기
# 6·15는 10년 전 어찌되었든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 손을 맞잡은 날이고 6·25는 60년 전 피비린내 진동하는 동족상잔이 시작된 날이다. 외관상 6·15와 6·25는 숫자적 의미의 날수로는 열흘 차이에 불과하지만 정작 둘 사이엔 결코 쉽사리 건널 수 없는 깊은 협곡이 엄존한다. 지금도 우리는 바로 그 6·15와 6·25 사이의 깊게 팬 골짜기에서 서성이고 있다.



# 지난 16일 오전 3시30분(한국시간) 남아공 월드컵 무대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인 브라질과 랭킹 105위로 이번 월드컵 출전국 중 최하위인 북한이 맞붙었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이후 44년 만에 다시 월드컵 본선 무대에 오른 북한팀과 특히 대한민국 국적의 재일동포 3세 출신으로 북한 축구대표선수가 된 정대세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그 새벽에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경기에 앞서 요하네스버그 엘리스 파크 스타디움에 브라질과 북한 양국 국가가 차례로 울려 퍼지던 순간, 머리를 거의 밀다시피 한 선수 한 명이 하염없이 울먹이며 눈물을 삼키고 서 있었다. 바로 정대세였다.



# 천안함 사태의 연장선상에서 남과 북의 긴장이 고조돼 16년 만에 서울 불바다 발언까지 공공연히 재연될 만큼 군사적으로는 일촉즉발의 상황인데도,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북한 축구대표팀을 응원했고 대한민국 국적인데도 북한 대표로 뛰는 정대세에 환호했다. 비록 북한 정권이 진저리 날 만큼 미워도 우리는 월드컵에 출전한 북한팀을 마음으로 응원하는 모습을 감추지 않았고 또 그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듣자 하니 대통령도 경기가 끝난 후 북한이 브라질에 2대 1로 진 것을 아쉬워하며 오히려 북한이 브라질을 2대 1로 이겼으면 좋았겠다고 말했다 하지 않던가. 물론 외국인 아니 냉정한 관찰자의 시각으로 보면 천안함 사태로 대북 응징을 천명한 대통령과 동일인물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질 대목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두는 우리 안의 하나됨을 향한 거의 본능적인 균형감각 즉 ‘기우뚱한 균형’이 작용하고 있다는 방증(傍證)이리라.



# 6·25 한국전쟁 이후 남과 북의 관계가 이토록 경직돼 실낱같은 핫라인 하나 작동하지 않는 완전 밀봉된 상황은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드컵에 나선 북한팀을 거의 무조건적으로 응원하는 우리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남과 북의 하나됨을 향한 본능적인 몸부림을 재차 확인하게 되고 이것이 만들어낸 ‘기우뚱한 균형’에 감탄하게 된다.



# 6·15는 화해와 협력, 6·25는 대립과 대결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둘은 모두 다시는 전쟁 없는 평화가 이 땅에 구현되길 지향한다는 점에서 하나다. 국민은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천안함 사태에 분노하면서도 월드컵에 출전한 북한팀을 응원할 수 있는 것이고, 대한민국 국적이면서 북한 축구대표선수인 정대세가 흘린 눈물에 대해서도 이념적인 곡해 없이 그냥 그 자체를 순수하게 보는 것이다. ‘기우뚱한 균형’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 1997년부터 2년 가까이 걸어서 세 번을 왕복하며 비무장지대의 눈 시리고 가슴 저미게 아픈 비경을 카메라에 담았던 최병관. 그의 사진집 『울지마, 꽃들아』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녹슨 철모를 뚫고 피어난 가녀린 들꽃 몇 송이. 평화냐 전쟁이냐는 관념적인 이분법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그 기묘한 공존. 어쩌면 우리 모두는 녹슨 철모에 박힌 총알 구멍 사이에서 피어난 들꽃들이다. 그러니 6·15와 6·25 사이에서 우리는 기우뚱한 균형을 맞춰야 산다. 이명박 정부는 그 균형감각을 상실한 지 오래다. 결국 그것은 국민 몫으로 남겨졌다. 기우뚱한 균형으로 대립과 대결을 견디고 넘어 이를 끝내 종식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자식과 후손들에게 좀 더 나은 나라와 민족의 미래를 남겨줄 수 있지 않겠나.



정진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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