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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붉은 자본가] 중국 투자은행 업계의 다윗, 천훙 한넝 회장

중앙일보 2010.06.19 00:17 주말섹션 12면 지면보기
1989년 6월 4일, 중국 베이징에서 ‘천안문 사태’가 터졌다. 중국 대학생들의 민주화 시위가 무력으로 진압된 사건이다. 이에 발끈한 미국이 중국에 대해 각종 제재 조치를 취했다. 그중 하나가 중국 유학생에 대한 영주권 부여였다. 그 덕택에 많은 유학생들이 미국에서 둥지를 틀었다. 그들이 모인 곳이 실리콘밸리다. 수리에 밝은 중국 유학생들이 실리콘밸리의 정보기술(IT) 붐에 합류한 것이다.


“내가 세워 1000만 달러에 팔았던 회사
56억 달러에 되팔리는 것 보며 뼈 아팠죠”

10년 뒤 이들 중국 유학생이 대거 베이징 행(行) 비행기를 탔다. 실리콘밸리에서 창업에 성공한 이들은 한 손에는 기술을, 다른 손에는 자금을 들고 귀국 대열에 가담했다. 소후(搜狐)·신랑왕(新浪罔) 등 인터넷 IT업체가 그 과정에서 탄생했다. 천안문 사태가 중국 IT 산업 발전의 모태가 된 셈이다. ‘천안문 사태의 아이러니’다.



중국의 투자은행(IB) 업체인 한넝(漢能)의 천훙(陳宏·48) 회장. 그는 이 물결의 선두에 섰던 인물이다. 미국 유학→천안문 사태→실리콘밸리 창업과 성공→귀국 후 창업이라는 ‘아이러니 코스’를 앞서 밟았다. 한넝은 직원 60명 규모의 중소 IB다. 골드먼삭스·모건스탠리 등 서방 업체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다. 그럼에도 그를 주목하는 것은 최소한 중국에서 한넝이 이들 서방 업체에 못지않은 실적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중국 IB업계의 다윗’이라는 별명을 얻은 이유다.



지난 8일 젠궈루(建國路)의 화마오(華貿)빌딩에 자리 잡고 있는 천 회장의 사무실을 찾았다. 사무실 문을 밀치고 들어서니 그가 환한 얼굴로 기자를 맞는다. ‘천안문 사태의 아이러니’를 추적하고 싶었다.



● 실리콘밸리에서 처음 한 일은 무엇이었나.



“(웃으며) 결혼이다. 유학 시절 만난 대만 여성과 결혼에 골인했다. 당시만 해도 중국과 대만 사이에 긴장의 파고가 높았다. 주변의 반대도 많았다. 그러나 사랑에는 국경이 없는 법, 우리는 결혼했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우리의 사랑과 결혼은 TV 드라마 소재가 되기도 했다.”



● 결혼하려고 실리콘밸리에 간 것은 아니지 않는가.



"1991년 선마이크로시스템에 취직했다. 제법 풍족한 생활이었다. 그러나 창업을 꿈꾸고 그곳에 간 나로서는 만족할 수 없었다. 2년 만에 그만뒀다. 친구에게 50만 달러를 빌려 에임넷(AIMNET)이라는 회사를 세웠다. 돈도 돈이지만, ‘중국인도 미국에서 창업주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의 천재성은 중국에서도 유명하다. 62년 중국 시안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대학에 입학했다. 16세 입학이었다. 미국 뉴욕주립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던 그는 유학 5년 만에 석·박사 과정을 끝내기도 했다.)



● 첫 창업은 성공했나.



“에임넷은 전화선 인터넷 접속 시스템(모뎀)을 개발하는 회사였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기술이었다. 그러나 초기 운영자금이 달렸다. 직원들 월급 주기에도 빠듯했다. 대만계 자금을 투자 받아 겨우 연명하는 수준이었다. 결국 3년 만에 회사를 매각해야 했다. 베리오(Verio)라는 회사에 1000만 달러에 넘겼다.”



● 50만 달러 투자로 1000만 달러를 벌었으면 성공한 것 아닌가.



“그게 그렇지 않다. 당시 베리오는 대금 지급 조건으로 ‘전액 현금’ 또는 ‘현금+지분’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돈이 궁했던 나는 전액 현금으로 받았다. 그게 실책이었다. 베리오는 관련 업체를 잇따라 인수합병(M&A)한 뒤 상장하더니 제3자에게 회사를 다시 매각했다. 매각 규모가 56억 달러에 달했다. IB 업무의 전형이다. 그때 만일 ‘현금+지분’ 조건을 선택했더라면 최소한 4억 달러는 나의 몫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받은 돈의 40배다. 그걸 어찌 성공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천 회장은 당시 IB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단다. ‘재주는 곰이 넘고 수익을 챙기는 것은 전주(錢主)’라는 투자 비즈니스의 속성을 간파한 것이다. 그가 중국으로 건너가 IB업체를 운영하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그때였단다.)



● 1000만 달러로 무엇을 했나.



“국제 인터넷통신 관련 업체인 GRIC을 설립했다. 96년의 일이다. 이번에는 제대로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시작할 때부터 벤처캐피털 업체를 끌어들였다. 투자를 받은 것이다. 회사가 관련 분야 1위 업체로 오르는 데는 2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기술과 돈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투자은행 비즈니스에 매력을 느꼈다. 99년 말 나스닥 상장에 성공했다. 14달러에 상장된 주가는 첫 날 42%가 올라 20달러 선을 돌파했다. 이 정도면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다. GRIC의 성공은 기술도 기술이지만 IB의 승리라고 봐야 한다.”



(GRIC은 뉴욕 증시에 상장한 첫 중국인 창업 회사였다. 천훙의 나스닥 시장 상장은 실리콘밸리의 많은 중국 기술자들을 자극했고, 중국 IT 관련 업체들이 뉴욕증시에 잇따라 상장하게 된다. 현재 나스닥 시장에 등록된 중국 IT업체만 약 90개에 이르고 있다. 천훙 회장이 중국 기업의 미국 자본시장 진출의 물꼬를 튼 셈이다.)



● 베이징으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인가.



“아무리 성공했다고 해도 미국에서 나는 객(客)이었다. 객의 성공은 주인의 몫일 뿐이다. 실리콘밸리에서의 경험을 중국 발전을 위해 써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천안문 사태의 상처도 아물고 있었고, 2000년대 들어 중국 경제도 급속히 성장하고 있었다. 중국 IB 시장은 골드먼삭스 등 서방 업체들이 잠식하고 있었다. 그 시장을 지켜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2003년 베이징으로 돌아와 한넝(漢能)을 차렸다.”



● 왜 ‘한넝(漢能)’인가?



“실리콘밸리에서 ‘중국인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게 창업의 가장 큰 이유였다. 중국(漢) 사람들도 능력(能)이 있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주자는 뜻에서 회사 이름을 ‘漢能’으로 지었다.”



(천 회장은 실리콘밸리의 사업을 모두 정리했다. 2006년 45억 달러에 GRIC의 지분을 전량 매각했다. 모든 역량을 ‘한넝’에 쏟기 위해서였단다.)



● 이름대로 ‘중국인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는가.



“지난해 7억3400만 달러의 M&A 프로젝트를 성사시켰다. 중국 IT업계의 M&A로서는 최대 규모다. 골드먼삭스나 모건스탠리도 군침을 흘리던 프로젝트였다. 인수 대상 기업 모두 만족했다. 처리 과정이 빠르고 매끄러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금 추진 중인 M&A 프로젝트 거래 규모는 10억 달러에 달하고 있다. 이제 골드먼삭스도 무섭지 않다.”



(한넝이 투자은행 업계의 주목을 받은 것은 2004년 영상미디어 서비스업체인 프레임미디어의 M&A였다. 한넝은 당시 경영난에 빠진 이 회사 지분 43%를 약 300만 달러에 사들였다. 기업 구조조정을 통해 경영을 정상화한 뒤 경쟁업체에 매각했다. 매각대금은 1억8300만 달러로 3년여 만에 60배를 벌었다.)



● IB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결국 ‘사람’이다. 최고의 능력을 갖춘 인재를 뽑아 키우고 있다. 직원 60명의 90%는 베이징대·칭화대 출신이다. 이들 대학 졸업생 중 유학 경험이 있거나, 또는 금융기관 경력자를 대상으로 선발하고 있다. 투자 대상 업체를 결정할 때에도 해당 기업 CEO의 인간성과 추진력을 본다. 인간성이 바르지 못하면 반드시 문제가 터진다. 추진력 없이 적당히 인간관계에 의존하려는 기업인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 ‘중국의 골드먼삭스가 되겠다’는 꿈은 이뤄지고 있는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직원들에게 ‘중국의 골드먼삭스가 되자’고 강조한다. 그게 비전이요, 목표다. 아직 많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골드먼삭스는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업체다. 전 세계를 연결하는 글로벌 네트워크가 있고 업계 최고의 인재들이 몰려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만은 이길 자신이 있다. 중국 기업의 글로벌화와 함께 한넝 역시 세계 시장으로 나갈 것이다. 느린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단지 멈추는 것을 걱정할 뿐이다.”



베이징=한우덕 기자






한넝(漢能)



천훙 회장이 2003년 설립한 투자은행(IB). 기업에 대한 재무 컨설팅과 인수합병(M&A), 직접투자 등에 집중하고 있다. 약 200억 달러 규모의 M&A 성사 실적을 갖고 있다. 지난해 아시아인포와 롄촹커지(聯創科技) 간 7억3400만 달러 규모의 M&A를 성사시켜 업계에서 주목을 끌었다. 한국 SK그룹의 중국 인터넷업체 인수를 맡기도 했다. 또 40억 달러의 투자펀드를 미국과 아시아에서 조성해 운용하고 있다. 베이징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미국 실리콘밸리·상하이·싱가포르 등에 법인을 설립했다. 



천훙 회장 이력



1962년 시안(西安) 출생

1978년 시안교통대학 컴퓨터공학과 입학

1985년 뉴욕주립대학 입학(석·박사)

1991년 선마이크로시스템 근무

1993년 에임넷 설립(1996년 매각)

1996년 GRIC 창업

1999년 GRIC 나스닥 상장(2006년 매각)

2003년 한넝 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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