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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pecial] 미국의 아침을 연다, ABC ‘굿모닝 아메리카’ 한인 앵커 주주 장

중앙일보 2010.06.19 00:14 주말섹션 6면 지면보기
“살인적인 스케줄이지만, 30분 정도 시간을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주주 장(45·한국명 장현주)의 목소리는 묵직했다. 표현은 군더더기가 없었다. 미국 3대 지상파 방송의 하나인 ABC방송의 간판 앵커다웠다. 그러곤 속사포처럼 이어갔다. 한국전쟁 발발 60주년 특집 프로그램을 찍으러 4박5일 일정으로 방한했고, 이명박 대통령과 참전 용사들, 톱스타 이병헌을 인터뷰했으며, 비무장지대(DMZ)를 촬영하는 일정이 남았다고 했다. “내 뿌리인 한국 관련 취재를 할 때면 나도 모르는 힘이 나요.” 그는 한국에서 태어나 4세 때 미국으로 건너간 한인 1.5세다. 방송 경력 20여 년 만인 지난해 ABC방송의 간판 프로그램인 ‘굿모닝 아메리카’의 앵커로 발탁됐다. 14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앤더슨 쿠퍼와도 뉴스 진행했죠 … 부모님은 한국인임을 잊지 말라 하셨어요

글=박현영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미국인의 아침을 열다



‘굿모닝 아메리카’는 오전 7시부터 9시까지, 뉴스와 생활정보를 전하는 프로그램이다. 뉴욕의 스튜디오에서 하는 생방송이 전국으로 나간다. 미국인들은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맞고, 그의 시각으로 간밤의 뉴스를 접한다. 한국계 미국인이 지상파 방송 아침 프로그램에서 앵커를 맡은 건 그가 처음이다. 축하 인사를 건네자 그는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책임감도 크다”며 “특히 한인으로서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한국 사랑’은 부모님의 영향이 크다. 늘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고 듣고 자랐다. “부모님은 한국의 뿌리를 잊으면 안 된다고 늘 강조하셨어요. 집에선 한국어만 쓰셨고요. 주말엔 한글학교에, 방학 때는 한국의 어학당에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예전엔 한국말을 곧잘 했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20년 넘게 가족과 떨어져 지내다 보니 지금은 많이 잊었다. 영어로 진행된 인터뷰 도중 ‘할아버지(참전 용사)’ ‘(어머니가) 고생했다’ 같은 한국어 단어가 간간이 튀어나왔다.



12세 때 미국서 평영 6위



그의 아버지 장팔기(79)씨와 어머니 전옥영(74)씨는 딸 셋을 데리고 캘리포니아로 유학을 갔다. 셋째였던 주주 장 밑으로 동생 둘이 더 태어나면서 가족은 미국에 눌러앉게 됐다. 부모는 공부를 포기하고 여행사와 여관을 운영하며 5남매를 키웠다. 지금도 실리콘밸리가 있는 서니베일에서 ‘프렌드십 인’을 운영한다. 한식 메뉴 덕분에 출장 오는 한국 기업인들이 많이 묵는다고 한다.



“부모님은 여느 한국 부모처럼 교육열이 높았어요. 자식들에 대한 기대도 컸죠. 부모님이 고생하시는데 보답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컸어요. 공부도, 운동도, 서클활동도, 뭐든지 열심히 했지요. 자식된 의무라고 생각했어요. 자신을 들볶아 많이 지치기도 했죠. 지금 생각하면 좀 더 즐겁게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후회도 돼요.”



자녀를 강하게 키우고자 했던 아버지는 그에게 수영을 가르쳤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수영 연습을 하고 등교했다. 12세 때는 평영 100m에서 전미 6위에 오를 정도로 소질을 보였다. 우수한 성적과 수영팀 주장, 학생 대표를 지낸 리더십까지 인정받아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에 동시 합격했다. 그는 스탠퍼드대를 택했다.



꿈을 찾다



한때는 엔지니어가 되려고 했다. 그의 꿈이라기보다는 아버지의 희망이었다. 실리콘밸리에서 평생을 산 아버지는 엔지니어를 최고의 직업으로 쳤다. “그런데 물리 과목에서 C를 받은 거예요. 그때 공학이 내 길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죠. 같은 학기에 정치학 수업은 A+를 받았고요. ‘내가 갈 길은 이쪽이다’라는 확신이 섰죠. 안개가 걷히고 해가 나온 느낌이라고 할까. 한국인 부모들이 흔히 저지르는 오류가 이거예요. 엔지니어가 됐다면 난 행복하지 않은, 그리고 특별히 뛰어나지도 않은 엔지니어가 됐겠지요.” 커뮤니케이션을 복수전공하면서 교지 편집장을 맡고 학교 방송국에서도 활동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ABC방송에 입사했다. 뉴스 부문의 데스크 보조로 시작해 프로듀서가 됐다. 대형 참사와 재난 현장, 대통령 선거, 걸프전까지 세계 곳곳을 누비며 뉴스를 만들었다. ‘카메라 뒤’에서 뉴스 제작을 총괄하는 지휘자였던 그는 새로운 꿈을 갖게 된다. “취재와 인터뷰를 하고, 촬영 지시를 내리고, 때로는 기사도 썼지만 뭔가 허전했어요. 내 목소리와 표정에 내 시각을 담은 뉴스를 직접 전하고 싶었습니다.”



‘화면 밖’의 생활을 청산하기 위해 그가 택한 길은 작은 방송사로 옮기는 것이었다. ‘화면 안’에 등장하는 기자로 훈련받기 위해서였다. 캘리포니아의 지역방송인 KGO-TV로 갔다. 방송 뉴스 8년 차였지만, 지역 뉴스를 취재하면서 기초부터 다시 배웠다.



인터뷰의 기술



세 아들의 사진을 붙인 ‘블랙베리’ 폰을 보여주는 주주 장. 아이들과 떨어져 있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출장때는 업무 강도를 더높인다. 미국 도시들은당일로, 12시간 거리인아시아도 4박5일로 끝낸다. 그가 일과 가정의 균형을 지키는 방법중 하나다.
주재 기자로 백악관과 대법원을 취재하고, CNN방송의 간판 앵커인 앤더슨 쿠퍼가 ABC에 재직할 때 함께 심야 뉴스를 진행했다.



그는 “기자라는 직업은 놀라운 휴먼 드라마를 발굴해 세상에 알리고, 때로는 정책을 바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람으로 꼽았다. 멜라닌 합성이 결핍된 선천성 유전 질환인 ‘백색증’ 환자들이 겪는 고통과 차별을 보도해 언론상인 ‘그레이시상’을 받았다. 캘리포니아 산불 취재로 에미상도 탔다. 아버지의 성전환으로 혼란을 겪는 가족의 이야기, 과학 분야에서의 남녀차별 고발, 해외 입양의 폐해를 세세하게 그린 보도 등이 호평을 받았다. 인터뷰 대상자들이 생면부지의 그에게 마음을 열고 속얘기를 털어놓게 하는 그만의 비결이 있을까.



“내가 던진 질문에 상대방이 답할 때 귀 기울여 들어요. 그래서 대화가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하죠. 별거 아니죠? 그런데 의외로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게 쉽지 않아요. 대개는 다음에 던질 질문을 머릿속에서 정리하느라 듣는 데 소홀하죠. 또 내가 상대를 속일 의사가 없고, 순수한 의도라는 것을 보여줘요. 교묘한 질문으로 상대방을 곤란에 빠뜨리거나 깎아내리는 식의 취재기법(gotcha journalism)은 쓰지 않는다는 믿음을 주는 거죠. 극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인터뷰할 때도 그들의 존엄성을 지켜주려고 노력하고요.”



오뚝이처럼 일어서라



평생을 ‘좋은 선례’처럼 살아온 그에게도 실패가 있었을까. “있었죠. 오래전 꼭 맡고 싶었던 앵커 자리가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 됐어요. 설사 원하는 것을 지금 얻지 못했더라도 다음을 위해 두 배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어요. 그러면 그걸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고요. 일이 좀 안 풀렸다고 침체되면 안돼요. 부모로서 자식들에게 가르쳐야 할 가장 중요한 것도 탄성(resilience)이라고 생각해요. KO 되더라도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는 거요. 그렇게 하기도 굉장히 어렵고, 가르쳐주기도 쉽지 않은 일이지요.”



그 밖의 조언은. “특히 한국인들은 열정을 가지는 일을 더 파고들어야 할 것 같아요. 가족이나 사회를 의식해서, 의무감에 의한 것보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따르는 게 열정이고, 곧 창의성이에요. 인생이 이미 짜여 있는 상자라면, 가끔은 그 상자 밖으로 나와 자신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게 인생을 바꾸는 길입니다.”






칵테일 >> 그녀는 스타 방송인



모닝쇼(Morning Show). 미국 방송사의 아침 간판 프로그램을 말한다. 1952년 NBC방송이 선보인 ‘투데이(Today) 쇼’가 모닝쇼의 원조다. 75년 ABC방송이 ‘굿모닝 아메리카’를 편성하면서 맞수로 떠올랐고, CBS방송은 ‘더 얼리 쇼’를 내보내고 있다. 최근에는 앵커 4명이 공동 사회를 맡아 토크쇼 형식으로 뉴스와 생활 정보를 전한다. 주주 장도 동료 3명과 함께 ‘굿모닝 아메리카’를 진행한다. 전반부는 간밤의 주요 뉴스와 조간 신문 기사 등 하드 뉴스 위주다. 출근을 준비하는 직장인들이 주 시청 층. 후반부에는 남편과 아이들을 내보낸 주부들을 대상으로 패션·살림·요리·육아·교육·문화에 관한 최신 트렌드와 생활 정보를 내보낸다. 모닝쇼는 저녁 메인 뉴스 다음으로 영향력 있는 뉴스 프로그램이다. 모닝쇼의 앵커 자리 역시 스타 방송인이 되는 디딤돌이다. 명 앵커로 이름을 날리는 다이앤 소여(65)와 바버라 월터스(81)가 대표적이다. 소여는 99년부터 10년간 ‘굿모닝 아메리카’의 공동 앵커를 맡은 뒤 지난해 12월부터 저녁 메인 뉴스 단독 앵커로 ‘승진’했다. 월터스도 66~76년 ‘투데이 쇼’를 진행한 뒤 저녁 뉴스 앵커 자리를 꿰찼다. 모닝쇼 앵커는 그 자신이 셀리브리티이기도 하다. “상상도 못 했던 빅 스타들을 매일 분장실에서 만나요. 방송 첫날 첼리스트 요요마가 와서는 ‘안녕 주주, 난 요요야’라고 인사하더군요, 하하.”






칵테일 >> 아들만 셋, 수퍼 맘



퇴근 후 주주 장은 세 아이의 엄마로 돌아간다. 남편 닐 샤피로(52)와 9살, 6살, 2살짜리 아들을 뒀다. 뉴스 프로듀서 출신인 남편은 4년간 NBC방송 뉴스부문 사장을 지냈고, 지금은 공영방송 PBS의 지역 방송인 WNET 사장이다. 아들 셋을 키우는 ‘워킹 맘’의 삶을 주주 장은 ‘저글링(juggling)’이라고 표현했다.



“양손과 발, 머리에 젓가락을 올려놓고 접시 돌리는 곡예단 아시죠? 어느 접시 하나도 깨뜨리면 안 되는 저글링, 그게 딱 제 모습이에요.” 두 팔을 펼쳐 접시 돌리는 흉내를 내며 말했다. 그래도 아이들 얘기가 나오자 얼굴은 함박웃음이다. 엄마 노릇은 아침엔 ‘원격’으로 한다. “오전 4시30분에 일어나 출근하면 남편이 아이들을 깨워서 씻기고, 입히고, 먹여서 학교에 보내요. ‘구식 아빠’였던 남편은 아이가 셋이 되자 신식으로 바뀌었어요. 어쩔 수 없이요, 하하. 방송 중 쉬는 시간에 화상 통화로 애들을 지켜봐요. ‘이는 닦았니’ ‘계란 다 먹어야지’, 옆에 있는 것처럼 잔소리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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