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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세상사 편력] 꿈을 좇지 않으면 꿈은 이뤄지지 않는다

중앙일보 2010.06.19 00:11 주말섹션 15면 지면보기
월드컵 열기로 더 뜨거운 여름입니다. 더위에 익고 흥분으로 달떠 잠 못 이뤄도 태극전사들의 선전에 즐겁기만 합니다. 정말 잘하지요? 우리 선수들. 아르헨티나한테 지긴 했지만 4강 신화를 썼던 2002년 대표팀보다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것 같습니다. 무작정 똥볼 차고 헛되이 뜀박질만 하던 옛모습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야말로 축구가 뭔지 이제는 좀 아는 것 같습니다.



느끼셨나요? 우리 선수들이 잘하는 이유를. 아니 달라진 이유를. 저는 선수들이 이제 축구를 즐길 줄 아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기 싫은 걸 억지로 맞아가며 하던 운동이 아니란 말이지요. 하고 싶은 걸 즐기니 더 재미있고, 더 재미있으니 더 열심히 하고, 더 열심히 하니 더 잘하고 결과도 더 좋은 겁니다. 불모지였던 이 땅에 벼락 같은 축복으로 나타난 김연아·박태환한테서도 그런 선순환 구조를 봅니다.



여러분도 즐기세요. 즐겨야 합니다. 축구나 보면서 놀라는 얘기가 아닌 건 아시지요? 스스로 즐길 수 있는 일을 찾으라는 말입니다. 남들 하는 걸 따라 하지 마세요. 남이 잘할 수 있는 일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은 다릅니다. 지금 인기 있는 직업을 좇지 마세요. 신기루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이 사회에 첫발을 디딜 때면 인기의 흔적도 없을지 모릅니다.



즐길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세요. 즐길 수 있어야 최고가 될 수 있는 겁니다. ‘미쳐야 이룬다’는 ‘불광불급(不狂不及)’이 다른 말이 아닙니다. 그런 일을 어떻게 찾느냐고요? 옛날 얘기 하나 들려 드리지요. 중국 송나라 때의 시인 소식(蘇軾) 아시죠? ‘동파(東坡)’라는 호로 더 잘 알려진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 한 사람 말입니다. 어느 날 그가 숙부뻘인 유근이라는 사람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갔습니다. 잔치의 흥이 무르익자 유근의 두 손자가 그에게 시를 써 달라고 졸랐습니다. 소식은 문장도 유명했지만 명필로도 이름을 날렸었거든요. 조카들의 청을 거절할 수 없던 소식은 큰 잔에 술을 따라 단숨에 들이킨 뒤 일필휘지로 시를 지었습니다. 이참에 한시 공부 좀 해보자고요.



‘몽당붓이 산처럼 쌓인들 뭐 그리 대단하리(退筆如山未足珍)/일만 권 책을 읽어야 신명이 통하는 법일세(讀書萬卷始通神)/그대 집안에 전해오는 필법이 있으니(君家自有元和脚)/그걸 버리고 남에게 묻는 짓일랑 하지 마시게(莫厭家鷄更問人)’



전반부는 우선 실력을 쌓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실력이 없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을 테니까요. 몽당붓(退筆)이란 옛날 중국에서 지영이라는 스님이 글씨 공부하느라 쓰고 닳은 몽당붓 열 항아리를 땅에 묻고 몽당붓 무덤(退筆塚)이라 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래 봐야 글을 많이 읽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뜻이지요. 없는 실력이 학벌로 커버되지는 않는다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 겁니다.



후반부에 우리의 주제가 나옵니다. 유근의 집안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원화각(元和脚)’이란 필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후손들이 조상의 훌륭한 서체는 내팽개치고 남의 서체만 탐한다고 나무란 거지요. 마지막 구의 ‘염가계’가 바로 그런 뜻입니다. ‘염가계 애야치(厭家鷄 愛野雉)’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집에서 기르는 닭은 싫어하면서 들에 야생하는 꿩을 좋아한다’는 얘기지요.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건 가벼이 여기고 남들이 하는 것에만 가치를 두는 세태를 풍자한 경구입니다. 조카의 얼굴이 벌개졌겠지요.



그런 겁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은 멀리 있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평소 재미있게 하고 있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걸 직업으로 선택하세요. 그래도 되나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위험이 따를 수도 있고요. 하지만 평생 해야 할 일 아닙니까. 즐길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걸 갈고 닦아 더 잘하게 만드세요. 그래야 일가(一家)를 이룰 수 있습니다. 최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흔히들 자신의 것을 찾지 못하고 분위기에 휩쓸리고 맙니다. 결국 직업은 호구지책(糊口之策)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러고는 후회하고 남을 원망합니다. 브라질 작가 파울루 코엘류의 지적이 적절합니다. “흔히 꿈을 실현하는 데 따르는 위험과 꿈을 실현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욕구불만 사이에서 망설이며 세월을 보낸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다른 사람들을, 특히 부모와 배우자와 자식을 탓한다. 우리의 꿈을, 욕망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게 가로막은 죄인으로 삼는 것이다.”



잘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생각하고 결정하지 않으면 코엘류의 말대로 한 발짝 더 나가게 됩니다. 한 가지만 기억하십시오. 꿈을 좇지 않으면 꿈은 이뤄지지 않습니다.



이훈범 중앙일보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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