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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pecial] 월드컵 세 번째 함께 뛰는 축구 가족 차범근 - 차두리

중앙일보 2010.06.19 00:09 주말섹션 5면 지면보기
“어, 정말 그러네.” 지난 8일 차범근(57) SBS 월드컵 해설위원이 남아공으로 출국하던 날, ‘이번이 두리와 함께하는 세 번째 월드컵’이라고 하자 차 위원은 “그것까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차범근 “두리가 로봇이라고 ? 너무 많은 걸 알려 하지 마세요”



차범근과 차두리(30·프라이부르크) 부자는 4년마다 화제를 불러일으킨다. 2002년 차두리가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월드컵에 출전했을 때 아버지는 MBC 해설위원으로서 아들의 경기를 해설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차두리가 월드컵 대표에서 탈락했을 때는 부자가 함께 MBC에서 공동 해설을 했다.



그리고 4년 뒤인 올해 남아공 월드컵에서 다시 차두리는 태극마크를 달았고, 아버지는 SBS에서 그 경기를 해설하고 있다. 지난 12일 그리스전에서 차두리는 오른쪽 풀백으로 선발 출장해 90분을 다 뛰며 2-0 승리에 기여했으나 17일 아르헨티나 전에는 결장했다.



중계 캐스터인 배성재 아나운서는 틈만 나면 차두리에 대한 평가를 차 위원에게 물었다. 차 위원은 표정 없이 딴청을 부리거나 기껏 “현재까진 괜찮습니다”라는 단답형 대답을 하기 일쑤였다. 얼핏 보면 캐스터와 해설자가 손발이 맞지 않는 ‘불협화음’이었다. 차 위원은 경기가 끝난 뒤에야 비로소 “차두리가 사마라스를 잘 막았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잘했습니다”라는 평가를 내렸다.



그러자 인터넷에서 느닷없이 ‘차두리 로봇설’이 쏟아져 나왔다. 차범근 위원이 차두리 얘기가 나올 때마다 침묵하는 이유는 ‘그 시간에 두리를 조종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우스개였다. 여기에 ‘영문 약자인 D R CHA는 설계자인 닥터 차(범근)를 뜻한다’ ‘차두리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본 사람이 없다’ ‘등번호 11번은 충전 콘센트를 위장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22번으로 바꾼 것은 전압을 220V로 올렸기 때문’ 등이 덧붙여졌다.



그러자 “나는 엄마 배 속에서 나왔기 때문에 당연히 로봇이 아니다”라는 차두리의 해명(?)과 “너무 많은 것을 알려고 하지 말라”는 차 위원의 조크가 이어졌고, ‘차두리가 로봇이 아니라는 인증샷’이라며 차두리의 어린 시절 사진을 게재한 신문도 등장했다.



그런데 방송이 끝나자 차 위원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배성재 아나운서에게 “우리 아들 잘하잖아?”라고 자랑을 했다. 이 내용은 배 아나운서가 자신의 트위터에 소개하면서 알려졌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기도 하고 “(박주영에게 전달한 센터링은) 그림 같은 센터링이었다”며 좋아했다.



아버지 차범근의 큰아들 두리에 대한 애정은 사실 극진하다. 그러나 축구선수 차두리에 대한 평가는 무척 인색하다. 왜 그럴까.



차범근이라는 사람을 알면 답이 보인다. 차범근의 세계가 ‘축구와 집, 그리고 교회가 전부’라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다. 특히 차범근의 가족 사랑은 부러울 정도다. 부부 금실은 말할 것도 없고 세 자녀(하나, 두리, 세찌)에 대한 애정은 한결같다. 특히 장남인 두리가 축구를 하면서 부자간의 정은 더 깊어졌다. 1980년 독일에서 태어난 두리는 네 살 때부터 바이엘 레버쿠젠의 유소년 팀에서 공을 찼다. ‘차붐 주니어’의 등장은 클럽의 자랑이었다. 차 위원은 “본인이 원한다면 선수가 되는 걸 막지는 않겠다”는 입장이었지만 부인 오은미씨는 아들까지 축구선수로 키우고 싶진 않았다.



차두리는 89년 아버지가 프로축구 울산 현대의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한국에 왔다. 한국에서는 학교 축구부와 차범근 축구교실에서 계속 공을 찼다. 지금은 ‘차미네이터’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국가대표선수 가운데 최고의 파워와 스피드를 자랑하지만 아버지 ‘차붐’이 볼 때는 여전히 불만이 많았다.



차두리가 고려대 3학년 때 대학 선발팀 명단에서 빠졌다. 화가 난 오은미씨가 하소연했다. “솔직히 우리 두리가 대표선수감이 안 된다는 건 저도 알아요. 하지만 대학 선발팀에도 끼지 못하는 건 너무한 것 아닌가요?” 그런데 불과 1년 뒤 차두리는 히딩크 감독의 눈에 들어 곧바로 태극마크를 달고 아버지(86년 멕시코 월드컵)에 이어 부자가 월드컵 무대에 서는 영광을 누린다. 부자가 월드컵에 출전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이탈리아의 세사르 말디니-파올로 말디니 등 손에 꼽을 정도다.



히딩크는 차두리의 가능성을 보고 뽑았지만 차붐의 눈에는 여전히 성에 차지 않았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아버지는 매일 새벽 아들을 데리고 한강 둔치에 나가 함께 운동을 했다. 당시 아버지의 나이는 만 49세, 아들의 나이는 22세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체력은 아들조차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60을 바라보는 지금도 매일 강도 높은 체력훈련을 하는 차 위원의 허벅지 굵기는 여전히 현역 선수들을 능가한다.



당시 축구선수 차두리에 대한 불만은 방송 해설에서도 묻어났다. “주전선수라면 저 상황에서 센터링까지 연결했어야 한다” “패스 타임이 늦었다” 등 따끔한 지적이 이어졌다. 해설 때 아들에 대한 얘기를 피하는 것은 8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2002년 이탈리아와의 16강전 때, 종료 직전 차두리의 멋진 오버헤드 킥이 나왔다. 일제히 환호성이 터졌지만 차 위원은 별말이 없었다. 나중에야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 정말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 나도 깜짝 놀랐다니까. 그게 들어갔어야 했는데.”



아들에 대해 극도로 말조심하던 차 위원도 한국이 스페인을 꺾고 4강에 오르자 “아, 저기에 저의 아들도 있지 않습니까”라는 말로 겨우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어찌 보면 극도의 소심함이다. 그게 차범근의 매력이다. 드러내놓고 자랑하지 않는.



차두리에게 차범근은 커다란 벽이었다.



“어렸을 땐 아버지가 대단한 분인지 몰랐다. 한국에 오니 모두 차범근 아들이라고 특별하게 봤다. 헛발질이라도 하면 ‘차범근 아들 형편없네’라고 하고. 숨이 콱 막혔다.”



차범근에게 아들 차두리는 이해할 수 없는 철부지였다.



“내가 국가대표에서 탈락한다면 며칠 잠도 못 자고 자책하고 괴로워했을 텐데, 두리는 금방 헤헤거리고 다니더라. 정말 못마땅했다.”



지금은 어떨까. 도움을 주고받는 동반자다. 두리에게 아버지는 든든한 후원자고, 차 위원에게 두리는 최신 유럽축구 소식을 전해주는 보조 해설자다.



특히 두리가 결혼해 딸을 낳은 뒤론 더욱 사이가 돈독해졌다. 손녀 얘기만 나오면 차 위원의 입은 함지박만큼 커진다. 차 위원은 “두리의 실력을 맘껏 발휘해 승리에 일조하면 아버지로서 더 바랄 나위가 없다”며 “수비수라서 차마 주문은 못 하지만 두리가 골을 넣지 못할 것도 없다”며 기대를 나타냈다.



손장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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