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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칼럼] 오바마와 유럽 지도자, ‘절뚝거리는 오리’ 전락하나

중앙일보 2010.06.19 00:08 주말섹션 15면 지면보기
나랏빚 공포와 유로화 걱정이 커지면서 ‘준비 통화(reserve currencies)’에 대한 화두가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준비 통화란 달러·엔·파운드화처럼 국제 결제에 쓰이는 돈이다. 전문가들은 올봄까지만 해도 준비 통화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몫은 점차 작아지고, 유로화 위상이 세어질 것으로 짚었다. 점진적으로 여러 준비 통화가 춘추전국시대처럼 포진한 ‘다극화 체제’로 변모할 것이란 말도 나왔다. 역사적으로 지구촌 금융위기는 외환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패권 통화의 입지는 탄탄했다. 2009년만 봐도 각국의 외환 곳간에서 달러화는 62%를 차지했고, 유로화는 27%였다. 각 통화의 외환보유액 비중을 바꾸려 중앙은행들이 고민해서 정책을 내놨지만 시장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나 환율이 변할 땐 사정이 달랐다. 달러 가치가 세지면 외환 곳간에서 달러가 늘었고, 달러 약세가 되면 그 반대였다.



사실상 지금까진 ‘공포의 균형’이 변화를 막았다. 외환보유액에서 특정한 돈을 줄이고 여러 통화로 다극화하려는 시도가 시장에 큰 충격을 주기에 중앙은행들이 감히 달려들지 못했다는 소리다. 특히 최근엔 유로화 위기 때문에 준비 통화가 다극화되어도 시장에서 안착할 것이란 시각이 흔들리고 있다. 유로화를 많이 보유한 아시아와 중동의 중앙은행들은 떨고 있다. 물론 미국의 눈덩이 재정적자를 볼 때 달러화도 잠재적으로 취약하긴 마찬가지다.



이럴 땐 역사를 돌이켜 보면 교훈을 찾을 수 있다. 1960년대에 영국의 파운드화는 세계 2위의 준비 통화였다. 미국 정책가들은 파운드를 떠받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을 쏟았다. 파운드화를 흔드는 상황이 생기면 달러도 위태롭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파운드화는 달러의 방어막 일부로 들어왔다. 그걸 본 비판론자들은 “절뚝거리는 두 오리가 서로를 떠받치고 있다”고 비꼬았다.



최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유럽 지도자들과의 전화통 외교에서 유로화를 구출하라고 압박했는데 이는 60년대 오리 얘기를 떠올리게 한다. 나아가 오바마의 전화는 유럽에서 공조책을 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2의 준비 통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특별한 사건이었다. 유로권이 무너지면 미국 경제도 낭떠러지에 서게 된다. 절뚝거리는 오리들이 서로를 껴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제 60년대 사례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언제 어떤 통화가 새롭게 부상하는지 말이다. 당시 파운드화는 결국 통치권을 잃었다. 대신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돌아보면 많은 사람들은 그런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봤지만, 한편으론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여겼다. 엔과 마르크의 부상은 인플레이션 고통을 불렀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겨우 20년 만에 일어났다. 두 나라는 엄청난 수출 실적을 자랑했다. 무역 흑자가 쌓이면서 달러와 파운드보다 탄탄한 기반을 갖게 됐다. 계속 늘어나는 수출로 쌓인 양국 재산은 그들의 통화에 대한 보증수표와 같았다. 달러·파운드화와 달리 엔·마르크화는 외국 자본 유치에 의존하지 않았다는 소리다.



준비 통화로 부상하면서 그만큼 대외 취약성은 커졌다. 그래서 일본과 독일은 국내 금융시장 자유화에 소극적이었다. 해외 자본이 밀려 들어와 자국의 화폐 가치가 급격하게 올라가고, 그 결과 수출이 줄어드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중국도 1996년 수출입 같은 경상거래에서 외환거래가 가능해졌지만, 금융시장 방패막이를 위해 자본거래에선 여전히 규제를 한다. 60년대의 교훈을 봤을 때 이 빗장이 풀리면 중국 위안화는 주된 준비 통화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인민은행과 금융회사들이 해외에 엄청난 자산을 보유했다는 점도 매력이지만, 세계인들이 소비하길 원하는 물건을 만들어 수출하는 나라가 중국이라는 점에도 끌릴 것이다. 일본·독일의 역사적 경험과, 최근 선진국들의 금융위기를 보면 중국의 정책 변화를 우려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처럼 덩치가 크다면 스위스 프랑이나 노르웨이 크로나처럼 소국의 강한 통화가 겪을 수 있는 취약성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또 중국이 준비 통화의 공급자가 되면 그동안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정 요인이었던 외환보유액 확대에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 준비 통화의 대안으로 위안화가 추가되면 발을 저는 오리들은 더 이상 강제결혼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Project Syndicate



해럴드 제임스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사 교수, 『세계화의 종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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