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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롤모델의 어린시절 ⑤ - 오프라 윈프리

중앙일보 2010.06.19 00:06



오프라 윈프리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방송인으로 손꼽힌다. 방송인을 꿈꾸는 세계의 청소년들이 가장 닮고 싶어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남다른 그녀의 재능은 대체 무엇일까? ‘타인에 대한 공감력 형성’과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오프라 윈프리. 그녀의 어린시절은 어땠을까?

세련된 연설·공감력 … 시련을 딛고 우뚝



물질도 사랑도 모든 것이 부족했던 환경



오프라 윈프리는 가난한 흑인 가정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 집을 오가며 불안정한 생활을 해야 했다. 자식에게 무관심한 어머니의 집에서 지내며 남자 친척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폭행과 성적학대를 당했다. 오프라윈프리는 수치스럽고 두렵고 비참한 감정들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채 혼자서 눈물을 흘리며 고통을 견뎌야했다.



그는 마음속에 가득 찬 고통과 분노를 잊기 위해 공부에 집중했다. 집에서는 천덕꾸러기였지만,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의 기대와 사랑을 받는 우수한 학생이었다. 이로인해 열세 살 때 선생님들의 추천으로 전액장학금을 지원받아 교외에 있는 사립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오프라 윈프리가 다니게 된 고등학교는 주로 백인 상류층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로, 전교생 중 흑인은 오프라 윈프리 뿐이었다.



오프라 윈프리는 학교에서 부잣집 친구들을 보면서 자신의 상황에 대한 열등감과 함께 본질적인 삶의 회의를 느껴야 했다. 매일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확인하면서 그들처럼 태어나지 못한 자신의 신세를 비관했다. 자신의 상처를 어느 누구와도 나눌 수 없고 위로받을 수 없다는 외로움이 오프라를 방황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엄마보다도 더 어린나이인 열네 살에 임신을 했다. 예정일보다 일찍 나온 아이는 몇 주 만에 사망하고 말았다.



말솜씨가 내 꿈을 이뤄 줄 수 있을까?



엇나가던 그녀를 다시 잡아준 건 아버지의 관심이었다. 망가져가는 딸의 모습에 아버지는 큰 충격을 받았다. 오프라 윈프리는 아버지 눈에 맺힌 눈물을 보며, 이제부터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아버지와 새 어머니 젤마의 관심과 사랑으로 그동안 잃었던 자신감을 회복했고, 학업에 놀라운 집중력을 보이며 빠른 속도로 성적을 향상시켜갔다. 어느새 친구도 많이 사귀고, 학교 수업 이후엔 연극반이나 토론 클럽 같은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클럽활동이나 다른 학교 행사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이던 오프라 윈프리는 나이답지 않은 세련된 연설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렇게 자신의 활동영역을 조금씩 넓혀 나갔고, 유명세를 타면서 여러 시민단체의 주요 행사에 연사로 초대돼 자신의 연설 실력을 마음껏 뽐냈다. 그러던 중 ‘백악관청소년회의’에 1400여 명의 대표 중 한 사람으로 참여하게 된다. 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오프라는 WWOL라디오 방송국과 인터뷰를 하게 되었고 재치 있는 말솜씨를 인정받아 오디션을 거쳐 방송국 오후 시간대 라디오 뉴스 진행을 맡게 됐다.



뉴스 진행은 그에게 그다지 적합하지 못했다. 뉴스 취재 중에 나타난 탁월한 ‘공감력’이 객관적으로 뉴스를 전달하는 데 방해가 됐다. 그의 뛰어난 ‘공감력’은 토크쇼를 진행하며 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내건 <오프라 윈프리쇼>를 통해 오프라 윈프리는 ‘토크쇼의 여왕’이 돼 방송 역사를 다시 써 나갔다. 전 세계 외롭고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며,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제공=명진출판]

그래픽=장미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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