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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Leadership] 비즈 리더와의 만남 윤윤수 FILA 회장

중앙일보 2010.06.19 00:00 주말섹션 10면 지면보기
2007년 3월 스포츠 브랜드 휠라(FILA)의 글로벌 사업권을 인수해 전 세계 70여 개국에서 팔리는 휠라의 글로벌 최고경영자(CEO)가 된 윤윤수(65) 회장. 한 달의 절반을 해외에서 보내고, 출장으로 탑승한 대한항공 마일리지만도 400만 마일을 쌓아놓고 있을 만큼 바쁜 그다. 하지만 올 2월 절친한 친구를 위해 특별히 시간을 냈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예수성심 전교 수도회’에서 가톨릭 세례를 받았다. 가톨릭 신자인 부인이 졸라도 꿈쩍 않던 그가 마음을 바꾼 것은 특별한 ‘절친’이 세례를 권유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의 대부(代父)가 된 고등학교 동창, 소설가 최인호 작가다. 최 작가는 침샘암으로 투병 중이다.


‘거짓말 않고, 약속은 꼭 지킨다’
간단하지만 어려운 원칙
것이 윤윤수의 사업 밑천

8일 서울 서초동 휠라코리아 본사 회장실에서 윤 회장을 만나 사연을 들어봤다.



“오랫동안 매달 마지막 금요일 부부 동반으로 6쌍이 꼬박꼬박 모일 정도로 마음에 맞는 친구죠. 모임 이름이 ‘말금회’입니다. 고등학교 동창은 많아도 오랜 세월 큰 고비 없이 우정을 쌓아온 친구는 드물죠. 고등학교에 다닐 땐 그리 친하지 않았는데 오랜 세월 지내고 보니 서로 통하는 게 있더라고요.”



최인호
두 사람 사이는 2001년 명사 26명이 2명씩 짝을 이뤄 나눈 대담을 엮은 책 『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민음사)가 나오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두 사람은 ‘정승처럼 벌어야 정승처럼 쓴다’는 주제로 경영관과 인생관을 풀어냈다. 최 작가가 당시 한창 화제를 모으던 『상도』의 작가라는 점, 윤 회장이 한국에서 가장 연봉을 많이 받는 CEO라는 점, 또 두 사람이 친하다는 점 때문에 회자됐었다.



“사실 모이면 서로에게 편하게 욕하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나 하지요. 회사 얘기, 경영 얘기, 이런 심각한 얘기는 안 합니다. 아시죠, 정말 친한 사이끼린 그런 얘기 안 하게 되잖아요.”



윤 회장에게 최 작가의 근황에 대해 물었다. “방사선, 화학 요법 치료를 끝내고 건강이 많이 좋아졌어요. 내게 세례를 권유하던 올 초만 해도 상태가 안 좋아 그 친구가 부탁하는 건 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목소리도 정말 많이 좋아졌더라고요. 최근엔 강원도에 요양 갔다 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윤 회장은 “인생에는 지름길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여기까지 온 것도 ‘거짓말하지 않고, 한번 한 약속은 꼭 지킨다’는 간단하지만 어려운 원칙을 지켜온 덕”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의 출발은 미약했다. 어머니는 윤 회장을 낳고 백일 만에 장티푸스로 사망했고, 아버지는 그가 고2 때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고교 졸업 후 재수 끝에 서울대 치대에 합격했지만 곧 휴학했다. 의사가 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의대에 낙방하고 후기로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에 들어갔다. 대학 재학 때도 외무고시에 낙방하고 30세가 돼서야 해운공사(현 한진해운)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미약한 출발’로 ‘창대한 성공’을 이룬 뒤엔 인간 윤윤수를 믿어준 여러 사람의 믿음이 있었다.



2005년 휠라코리아 경영권을 인수할 때도, 2007년 글로벌 휠라를 인수할 때도 사업 밑천은 ‘신뢰’였다. 2005년 인수 당시 합의했던 조건들을 딱딱 제대로 맞춰줬기 때문에 신뢰를 얻어 2007년 글로벌 휠라를 인수할 기회도 찾아온 것이다. 브랜드는 매물로 시장에 나오면 가치가 급락하는 것을 잘 아는 본사가 윤 회장을 신뢰하는 상대, 빨리 일을 진행할 수 있는 상대로 여겼다.



“협상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채 되기도 전에 투자 계획을 비롯한 인수계약서를 만들어 갔죠. 3억 달러는 은행에서 투자 받고, 1억5000만 달러는 중국·유럽·라틴아메리카 등 윤윤수를 믿는 투자자들에게 끌어왔습니다. 전 세계를 2주일간 잠도 못 자고 뛰어다녔죠. 이렇게 한 달 만에 속사포처럼 인수 작업이 마무리되니 인수에 뛰어든 다른 사업자들은 하늘만 쳐다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1년 반 안에 2억 달러를 갚아야 한다는 은행의 조건도 10개월 만에 다 갚아 맞췄다. 미국인들의 입맛과는 다르게 고급화·명품화만 추구하다가 한 해에 6400만 달러 적자를 내던 미국 사업도 올 초부턴 흑자로 돌아섰다.



윤 회장이 요즘 유달리 바쁜 것도 글로벌 휠라 인수 당시 자신을 믿어 준 투자자들에게 한 약속 때문이다. 휠라코리아를 올해까지 상장한다는 약속이다. 올 9~10월 상장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 윤 회장은 “월급쟁이 출신이 글로벌 휠라를 인수할 만한 그런 큰돈이 어디 있었겠나. 투자자들이 다 나를 보고 투자한 것이다. 그 사람들의 신뢰에 보답을 해야 하지 않나. 그래서 요즘 이렇게 앞만 보고 뛰어다니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상장을 하고 나면 “테이크 잇 이지(Take it easy: 쉬엄쉬엄)하면서 가겠다”고 했다.



글=최지영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칵테일 >> 회장님은 출장 중



휠라 윤윤수 회장은 실용주의자다. 각국 유통업체를 만나는 비즈니스 미팅 때도 넥타이를 거의 매지 않고, 양복 대신 스포츠 셔츠나 비즈니스 캐주얼을 입는다. 비즈니스맨들이 일반적으로 들고 다니는 007가방 대신 휠라 브랜드의 배낭을 훌쩍 메고 출장을 다닌다. “1분, 1초가 아까운데 편한 게 제일”이라고 윤 회장은 말한다. 해외 출장이 잦다 보니 건강이 항상 걱정이다. 회사 관계자는 “시차 적응이 힘들어 수면제를 복용하실 정도”라고 귀띔했다.



‘진 윤(Gene Yoon)’. 세계를 무대로 뛰는 윤 회장의 영문 이름이다. 그의 명함에는 아예 한글이 없다. 앞면에는 글로벌 본사인 미국 GLBH홀딩스, 뒷면엔 한국의 휠라코리아 주소와 연락처만 영문으로 적혀 있다. 젊은 시절 JC페니 바이어로 일하던 시절, 사업차 오가는 텔렉스에 윤윤수란 이름을 발음대로 적긴 너무 길어 유진(Eugene)으로 정했다. 그마저 줄여 ‘진’이 됐다고 한다. 윤 회장은 “윤윤수는 몰라도 ‘진’하면 글로벌 패션업계에선 ‘기록을 깨는 사람’으로 다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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