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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임학 (1922~ )

중앙일보 2002.03.28 00:00 종합 50면 지면보기
물리학 분야에서 해방 이후 최고의 한국인 학자를 뽑으라고 하면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이 이휘소를 선택하듯이, 수학 분야에서는 이임학(學)을 선택한다.


美학자도 못풀어 해외 학술지에 낸 문제 거뜬히 푼 수학 귀재

요즘도 수학 분야에서는 교수들이 외국 학술지에 1년에 논문 한편을 내기가 힘들다. 하지만 이임학은 외국 학술지에 논문을 내는 한국인이 거의 없던 시기인 광복 이후부터 1960년까지 군(群)론에 관해 무려 16편의 논문을 기고한 우리나라 수학계의 숨겨진 선구자다.



일제 말기인 44년 9월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 물리학과를 졸업한 그는 해방 후 김지정·유충호 등과 함께 국내 수학자들의 모임인 수학회의에서 투표를 통해 경성대학 수학과 교수가 됐다.



46년 9월5일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안을 반대하는 이공학부의 교원 38명이 집단으로 총 사퇴했는데, 이임학도 여기에 포함돼 있었다. 투표로 선출된 나머지 두 명의 수학자들은 모두 월북했고, 그 가운데 김지정은 46년 9월 15일에 새로 설립된 김일성종합대학 수학과의 초대 학과장이 됐다.



당시 이임학도 처음에는 북한으로 가긴 했지만, 곧 그곳의 모습에 실망을 느끼고 다시 돌아와 서울대 교수가 됐다.



광복 직후 우리나라 대학에는 외국의 학술서적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47년 어느날 남대문 시장을 지나던 이임학은 우연히 쓰레기 더미 속에서 한 외국 수학잡지를 발견했다. 이것을 주워서 읽다가 그는 유명한 수학자 M 조른도 풀지 못한 문제를 풀게 됐다.



이것을 정리해서 외국으로 보낸 것이 바로 외국 학술지에 실린 우리나라 수학계 최초의 논문이다.



이 논문은 49년 미국수학회의 학술 저널에 출판됐지만, 이임학은 한국에 있는 동안에는 자신의 논문이 이 세계적인 저널에 실린 것도 모르고 있다가 훗날 유학을 가서야 비로소 알게 됐다. 53년 캐나다로 건너간 이임학은 55년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에서 젠킨스 교수 지도 아래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곳에서 그는 60년 리 군(Ree Group)으로 알려지게 되는 2개의 단순군을 발견해 일약 국제 수학계에 우뚝 선 인물이 됐다.



이 새로운 단순군의 발견으로 이임학은 프랑스의 갈루아, 노르웨이의 리(Sophus Lie), 독일의 펠릭스 클라인, 프랑스의 C 슈발리에로 이어지는 군론의 역사에 당당하게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 것이다.



이임학은 현재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수학과 명예교수로 있다.



포항공대 인문사회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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