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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털같은 박주가리 씨 찬란한 봄의 꿈이… ①

중앙일보 2002.03.12 00:00 종합 48면 지면보기
길쭉한 호두 모양의 열매가 대롱대롱 매달린 마른 넝쿨은 첫눈에도 기품이 있어 보인다. 한길 남짓 되는 넝쿨을 걷어다 벽에 핀을 꽂고 걸어놓았더니 이튿날 하얀 솜털 덩어리가 방안에 둥둥 떠다니는 것이었다.나와 박주가리와의 첫 만남이었다. 주둥이가 넓은 유리병에 넣어놓고 눈길을 준 지 두어 해 됐는데 실내에서는 바람이 없어 그런지 정지된 상태로 박제가 된 것 같다. 그땐 물론 이름조차 몰랐었다. 이듬해 봄부터 나는 살아 있는 이 넝쿨식물을 관심있게 지켜보기 시작했다.



박주가리는 크기에 비해 열매가 매우 가볍다. 속이 솜털로 꽉 차있는데 이 명주보다 부드럽고 나일론보다 윤기 나는 은백색의 털이 씨앗을 매달고 외피의 갈라진 틈새를 빠져나와 우산살같이 펼쳐져 곧장 공중에 솟아오르는 것을 보면, 공기보다 가벼운 것을 몸안에 가득히 품고 있는 이 열매가 왜 이토록 가벼운지 이해가 간다.



민들레처럼 여름 내내 꽃씨가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고, 늦가을 짙은 서리 까지 내린 다음에 갈대나 억새풀이 새찬 바람 속으로 씨앗을 토해내듯이 날려보내고 있을 때 가을볕에 바싹 마른 박주가리는 갈색으로 뒤덮인 세상에 홀로 고고한 하얀색의 씨앗을 겨우내 공중으로 날려보낸다.



이 가벼운 씨앗의 장중한 겨울 여행은 물을 건너고, 산을 넘고, 마을을 지나, 도로를 타 넘고, 어디로 어디로 바람에 실려 가는 장도(壯途)가 길면 길수록 한 배에서 가지런히 같이 있던 다른 형제들과 더 멀리 떨어지게 된다. 나만이 나의 운명을 간직하는 것이고,다른 것은 이제 운명의 외곽으로 사라져 가는 잊혀진 존재에 불과 할 뿐.



잠시도 머뭇거림 없이 순서대로 바람을 안고 겨울여행을 떠나는 이 어린 씨앗을 보고 있으면 아픈 내 가슴이 하나의 작은 운동을 통제하는 더 큰 운동의 규칙 속에서 느끼는 안도감으로 비로소 진정되는 것이다.



생명이란 다른 생명의 일방적인 희생의 연장선상에서 누리는 찰나적인 반사 행운에 불과하고 생명의 아름다움이란 연속되는 숙명이 겹쳐지는 음영의 한 단면을 엿보는 것이 아닐까.



개들이 졸고 있는 양지바른 댓돌 위에서 박주가리 씨앗 하나가 꿈틀거리고 있다. 어디서 날아온 것인지 이 씨앗의 하얀 털은 여전히 햇볕 속에서 윤기로 빛나고 있으나 씨앗의 짙은 고동색이 회색으로 변해 있음으로 보아 모선(母船)을 떠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나 보다.



불확실한 미래의 불안감에 떨고 있는 연약한 생명의 불씨, 고독의 갑옷을 입고 있는 기다림은 존재의 의미며, 찬란한 봄을 기다리는 타임 캡슐이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항구에 묶어두기 위해 배를 만든 것은 아니다.



나는 좋은 자리를 잡아서 이 씨앗을 묻어주고 방으로 들어와 이미 꽤 오래된 유리병 속의 박주가리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박주가리야, 날아라! 더 높게 날아라! 나는 박주가리 씨앗을 털어서 공중에 날려보내며 손을 흔들었다. 내 손끝에 찬란한 봄의 꿈이 묻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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