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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좋고 축구 잘 하던 버마를 기억하십니까?

중앙선데이 2010.06.13 07:07 170호 20면 지면보기
5월 25일 오후 6시. 미얀마(옛 버마)의 옛 수도 양곤 공항에 착륙하는 비행기 창밖으로 주변 땅들이 다가왔습니다. 비를 흠뻑 먹은 붉은 대지가 “나 비옥해 보이지? 이래 봬도 영국 식민지 시절 전 세계 식민지로 쌀을 공급하던 땅이야. 지금 이런 상황에서도 굶는 사람이 없는 게 다 내 덕이지”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섭씨 41도까지 치솟던 건기가 끝나고 며칠 전 우기가 시작됐다고 합니다. 시원한 바람이 간간이 불었습니다. 거리엔 인도나 베트남처럼 시끄러운 오토바이도 행렬도, 매연도 없었습니다. 차들도 신호를 잘 지켰고, 거리의 사람들도 편안한 표정이었습니다.

미얀마의 재발견

다음 날 오전 양곤 시내로 나섰습니다. 굵은 비가 한바탕 쏟아졌습니다. 공터에서 웃통을 벗고 롱지(긴 치마 스타일의 전통 의상)를 말아 올린 청년들이 흙탕물 속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1960년대 버마 축구선수들이 수중전에서 한국의 애를 먹였던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버스 정류장엔 중고 트럭이나 승합차를 개조한 버스들이 즐비하게 늘어섰습니다. 차 뒤편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가는 차장들의 모습이 60~70년대 우리네 ‘차장 언니’를 생각나게 했습니다.

미얀마는 잊혀진 나라, 시간이 멈춘 나라라고들 합니다. 62년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우 네윈이 폐쇄·고립 위주의 ‘버마식 사회주의’를 내세우고 이어 88년 탄 슈웨 장군의 신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뒤에도 폐쇄 정책이 지속됐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야당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 아웅산 테러(83년) 정도의 단어로만 기억날 뿐이지요.

그런데 한국과 미얀마는 역사적으로 비슷한 사건을 겪습니다. 식민지 경험, 독립, 군부 쿠데타, 신군부 등장 그런 것들입니다. 현재의 모습은 너무나 다릅니다. 한국은 수출 지향적 개방 정책을 취했고, 무궁한 천연자원과 풍족한 식량이 있었던 미얀마는 닫아 걸고 나눠 먹는 데만 신경 썼던 겁니다. 우리 지도자들이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대체로 국가 발전 비전을 앞세우고 나아간 데 비해 미얀마 지도자들의 비전은 오로지 정권 유지에만 국한됐던 모양입니다. 현재 미얀마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442달러로 유엔 기준 최빈국입니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80달러 수준일 때 미얀마는 잘살았습니다. 의료체계, 교육시스템 모두 아시아에서 선진 수준이었습니다. 반기문 사무총장이 나오기 한참 전 아시아 최초로 유엔 사무총장(우 탄트)을 배출한 나라입니다. 싱가포르의 고촉통 전 총리는 국립 양곤대학을 두고 “내 꿈은 양곤대학에 들어가는 것”이라 했던 때가 있었답니다.

군사정부는 88년 민주화 시위 이후 양곤대학을 4년간 폐쇄했다가 5개 단과대로 나눠 교외로 분산시켰습니다. 시위를 우려해서죠. 서울 도심에 있던 서울대를 멀리 관악산 아래로 옮긴 유신체제보다 한 수 높은 것 같았습니다. 방문 기간 시내 양곤대학 자리에 가봤습니다. 정문 출입은 막았지만 뒷문은 열려 있었습니다. 석·박사 과정은 남겨두고 있다고 합니다. 동남아시아의 인재들이 모이던 대학 기숙사는 집 없는 공무원 가족과 총각 교수들의 주거지가 됐습니다. 인야 호수 앞 대학로는 오래된 아름드리 나무들이 어우러진 젊은이의 거리였지만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2008년 5월 13만8000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이클론 ‘나르기스’로 양곤 시내 고목 1만5000그루가 쓰러졌다고 합니다. 나무도 젊은이들도 사라진 대학로는 고즈넉했습니다. 공교육은 무너졌고, 교육열이 높은 미얀마 국민은 사설 학원을 찾아듭니다.

양곤 시내엔 고층 건물 몇 개를 빼고는 식민지 시절 지어진 예쁜 건물이 많습니다만 황폐함의 더께가 붙었습니다. 외양이 근사한 양곤 종합병원을 가봤습니다. 내부는 돌아보기 민망했습니다. 청소를 몇 년째 하지 않은 것 같은 복도·계단에서 보호자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고, 중환자·일반 환자가 뒤섞인 병동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영화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서방 언론 통신원으로 일하는 현지인 A씨는 “모든 것이 다 황폐해졌다”고 했습니다. 국가 자원과 부는 군부 독재자 탄 슈웨 장군과 측근, 그들에게 줄을 댄 소수의 차지라고 합니다. 미얀마는 민주운동 탄압, 인권 문제로 미국과 서방의 제재를 받고 있습니다. 현지에서 보니 제재는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중국의 지원 때문입니다. 2003년 신제재 이후 양곤 서부 지역의 공장 2000개 가운데 1000개가 문을 닫았습니다. 지도부와 상관없는 일반 주민들의 일자리만 없어진 겁니다. 중국과 미얀마 관계는 북·중 관계를 보는 듯했습니다. 1주일 취재를 하면서 중국은 정말 두려운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계 지도를 펴놓고 미얀마를 한번 보십시오. 이 나라는 중국과 인도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미얀마에 대한 전략적 개념이 떠오르실 겁니다. 희망이 없을 것 같은 미얀마에서 그래도 변화의 조짐을 느꼈습니다. 올 10월 예정된 20년 만의 총선. 제한적이지만 국가산업의 민영화·개방화 분위기도 있습니다. 그 냄새를 맡았을까요.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슬금슬금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잘만 된다면 우리로서도 기회입니다. 미얀마 사회에 한류가 정착된 게 다행인 것 같습니다. 미얀마는 북한 같은 체제에 비해선 인터넷도 되고, 자유롭게 사업도 할 수 있지만 군부 독재의 감시가 심합니다. 취재 비자도 내주지 않습니다.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을 모두 익명으로 처리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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