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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미얀마

중앙선데이 2010.06.13 03:56 170호 22면 지면보기
대우 인터내셔널의 대우E&P가 발굴에 성공한 미얀마 서부 해상 슈웨 천연가스 광구. 가스 판매 독점권을 확보한 중국이 향후 30년 동안 파이프라인을 통해 중국 내륙으로 직송한다. 블룸버그 뉴스
양곤 시내에 머무는 동안 조용한 도로를 무섭게 가로지르는 육중한 트럭들이 눈에 띄었다. 미얀마 특산 티크 목재, 옥(玉) 원석을 실은 대형 트럭들이다. “대부분 중국으로 실려 가는 것이다. 저 옥 원석은 아주 좋은 상품이다.” 현지 가이드 G씨(40)가 안타까워한다. 중국~미얀마 국경에 있는 샨주(州)의 도시, 무세와 미치나에선 곡물과 목재, 광물을 실은 트럭들이 중국 쪽으로 줄줄이 넘어간다고 한다.
롱지 차림의 남성과 탄나카(미얀마의 천연화장품)를 바른 순한 표정의 여성들, 100여 년 세월의 이끼를 품고 있는 식민지 시대의 건물, 흔히 볼 수 있는 파고다(탑)·불상보다 미얀마에서 실감한 것은 ‘중국의 힘’이었다. 수단·짐바브웨에서 군부정권을 지원하며 아프리카 대륙의 에너지를 뽑아 올리는 중국의 모습이 미얀마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트럭 정도가 아니다. 파이프라인을 건설해 미얀마의 가스를 독차지하고 중국 내륙에서 인도양으로 질주하는 도로·철도 건설계획도 세웠다. 중국의 미얀마 공략에 달아오른 인도·미국이 뒤늦게 고위 인사를 보내는 등 견제구를 날리고 있다. 일본·호주 등의 경제 지원 규모도 크게 늘었다. 그야말로 각축전이다.

미얀마 주재 조병제 대사가 말하는 진출 가이드


중국 1년 새 장관급 인사 50여 차례 보내
3일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중·미얀마 수교 60주년을 맞아 수도 네피도를 찾았다. 원 총리는 테인 세인 총리와 이미 합의된 ‘쌍둥이 파이프라인 프로젝트’를 공기 내에 마치기로 하고 국경 안정 협정에 서명했다. 미얀마 서부 벵골만 해안의 차익퓨 앞 ‘슈웨’ 해상 광구에서 중국 윈난(雲南)성 수도 쿤밍(昆明)까지 2000㎞(미얀마 내륙은 900㎞)를 잇는 대역사다. 쌍둥이 프로젝트는 ▶천연가스 운반 파이프 ▶원유 수송 파이프로 구성된다. 가스라인으로는 슈웨 광구에서 뽑아낸 천연가스가, 원유라인으로는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들여오는 석유가 중국 내륙으로 직행한다.
쌍둥이 프로젝트는 지난해 6월 미얀마 군부 2인자 마웅 에이 장군이 베이징(北京)에서 중국 측과 합의한 것이다. 당시에는 또 중국이 미얀마 북부의 수력발전소를 건설한다는 합의도 했다. ‘코리더(corridor) 프로젝트’도 최근 합의했다. 파이프라인을 따라 철도·도로를 건설한다는 내용이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해 6월 이후 중국의 장관급 인사들이 미얀마를 50여 차례나 방문했다. 대부분 전력과 도로가 협의 주제였다. 중국이 미얀마에 들이는 정성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수력발전소는 완공 시 발전량이 2만㎿. 한국의 총발전량(8만㎿)의 4분의 1이다. 미얀마에 일부를 보내고 대부분 중국이 갖는다. 미얀마의 현재 발전량은 1780㎿(2008년)에 불과하다.
슈웨 광구의 천연가스를 중국이 독점적으로 뽑아 간 자리엔 한국의 상처가 남아 있다. 슈웨 광구는 1990년대 후반부터 미얀마 서해에서 탐사작업을 해 온 대우E&P가 2004년 1월 극적으로 찾아낸 광구다. 대우E&P의 주시보 상무는 “70년대부터 프랑스·영국·미국 탐사팀이 실패하고 철수한 지역에서 대우의 기술력으로 찾아냈다”며 “대우로선 워크아웃 시점에 발견해 의미가 컸다”고 했다. 이곳의 가채매장량은 4.5TCF(조입방피트· 원유 환산 시 8.1억 배럴). 세계적으로 쉽게 찾기 어려운 대형 가스전이라고 한다.
문제는 가스 판매권. 대우 측은 가스를 액화천연가스(LNG)로 바꿔 한국으로 판매한다는 구상 아래 입찰에 들어갔지만 2007년 1월께 미얀마 정부는 중국석유공사(CNPC) 측에 가스 판매 독점권을 넘겼다. 주 상무는 “중국이 높은 가격으로 입찰했다”며 “천연가스가 석탄 값보다 3~4배 비싸지만 미리 확보하려는 차원에서 계약한 것 같다”고 말했다. 노인호 KOTRA 미얀마 무역관장은 “중국은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장기적 관점에서 에너지원을 확보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독점권 확보 배경으로 여러 얘기가 들린다. 싱가포르의 스트레이트 타임스는 지난해 9월 “유엔 안보리에서 미얀마를 국제사회의 평화를 위협하는 국가로 지정하는 결의안 채택에 중국이 비토권을 행사한 수주 뒤 계약이 체결됐다”며 “이전까지 한국과 컨소시엄을 구성한 인도가 확실한 선두 주자였음을 고려하면 중국 측에 대한 감사 표시”라고 보도했다. 파이프라인 건설프로젝트에 중국이 투입하는 자금은 25억 달러. 지난해 10월 공사에 착공했으며 천연가스가 생산되는 2013년 5월부터 가스를 내륙으로 실어 나르게 된다. 스트레이트 타임스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군부정권으로 들어가는 돈은 향후 30년간 290억~560억 달러나 된다.
중국의 미얀마 공략에 깔린 계산은 다층적이다. 우선 낙후된 중국 서부의 대개발 촉진을 위한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넓게는 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시작된 중국의 대아세안 공략 차원이다. 이른바 ‘1축(軸) 2익(翼)’ 정책.
중국은 서부 난닝(南寧)부터 베트남~라오스~태국~말레이시아~싱가포르에 이르는 도로망을 (1軸) 건설해 왔다. 동시에 서쪽으로는 윈난·쓰촨(四川)성 대개발계획을, 동쪽으로는 광저우(廣州) 통킹만~필리핀으로 이어지는 교역·에너지 수송의 인프라를 구축해 왔다.
중국은 2009년 아세안 기금에 250억 달러를 출연했다. 1월엔 아세안과 자유무역협정(FTA)도 체결했다. 아세안의 전략적 가치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중국이 북한의 자원을 다 뽑아 간다고들 하는데 여기서 보면 그것도 중국의 일상적이며 자연스러운 정책 패턴으로 보일 정도”라고 말했다.
중국의 파이프라인 정치학에는 경제적 이득을 넘어선 ‘대미 전략’이라는 함의도 있다. 중국은 현재 세계 2위의 에너지 소비국이고, 3위의 에너지 수입국이다. 수입 에너지의 80%를 믈라카 해협을 통해 중국으로 들여온다. 대부분 중동·아프리카산이다. 파이프라인이 건설되면 믈라카 해협을 거치지 않고 인도양에서 곧바로 윈난성으로 수송된다.
스트레이트 타임스는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특정 강대세력(미국 지칭)이 믈라카 해협을 제어하고 있어 전략적으로 취약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미얀마를 관통하는 파이프라인은 중국의 ‘믈라카 고민’을 완화시킬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이 군사정부를 지원하는 이유로, 미얀마가 민주화되면 친서방 국가가 돼 중국 측에 위협이 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인도, 뒤늦게 대화·협력 공세
중국의 ‘미얀마 빨아들이기’가 노골화되자 인도도 4~5년 전부터 ‘건설적 개입주의’로 방향을 틀었다. 중국과 앙숙인 인도는 그동안 중국과 달리 인구 11억의 민주주의 국가임을 내세워 미얀마에 대해 인권 개선을 요구하는 등 서방과 비슷한 노선을 취해 왔다. 낙후한 동북 지역 발전을 위해 인접 국가인 미얀마를 관통하는 도로 건설에도 합의했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2기)는 미얀마를 ‘폭정의 전초기지’로 불렀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 들어 ‘대화와 제재 병행’으로 기조를 바꿨다.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짐 웹 상원의원의 잇따른 미얀마 방문이 실례다. 2009년 900만 달러의 원조를 제공했던 호주도 최근 3000만 달러로 지원을 늘렸다. 일본도 점차 지원을 늘리고 있다. 유럽연합(8500만 달러)에 이어 가장 많은 1800만 달러를 지원했다. 외교 소식통은 “일본도 중국 위주 투자에서 벗어나 미얀마~인도 루트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일본은 군사정권 수립 이전엔 최대 원조국이었다. 우리 정부의 대미얀마 원조액은 미국과 비슷한 316만 달러로 아주 낮다. 그나마 2005년 이후 EDCF(유상차관)지원도 중단된 상태다. 중국의 지원은 공개되진 않았지만 엄청나다고 한다. 양곤 시내엔 중국이 지어 준 국회의사당 같은 정부 건물과 축구장 등이 즐비하고 신도시 네피도에도 국제컨벤션센터 등 대형 건물을 지어 주고 있다.
그러나 미얀마의 천연자원을 파이프로 뽑아 가는 중국인에 대한 미얀마인들의 반감은 크다. “산업도 중국인들이 장악하고 있다”고 두려워한다. 현지인 P씨는 “제2의 도시 만달레이는 이미 중국 자본에 장악됐고, 미얀마 자원들이 파이프라인을 통해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다”며 “솔직히 미얀마인들은 중국인들 때문에 불행하다”고 했다. A씨는 “대우E&P의 경우 슈웨 광구가 위치한 라카인주에 급수시설과 병원·학교를 지어 주고 의료장비를 주는 등 주민을 위한 지원을 했지만 중국은 군부가 원하는 지원만 하고 있다”며 이유를 설명했다. 양곤 외곽 신주택지도 화교 자본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인도인들에 대한 반감도 중국 못지않다. 62년 우 네 윈은 쿠데타 후 모든 기업의 경제시설을 국영화하면서 미얀마 경제를 좌우했던 중국인과 더불어 인도인들을 추방했다. 영국은 미얀마 식민 방식을 특이하게 했다. 직접 통치하지 않고 인도의 한 주로 편입시켰다. ‘관리자’ 인도인들의 고리대금업 등을 통한 수탈이 상당했다고 한다. A씨는 “미얀마에서 잘사는 사람은 군부 주변의 소수 미얀마인들과 인도·중국 출신”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공교육이 무너진 미얀마를 떠나 대부분 싱가포르, 영국, 호주로 유학 간다. 그들은 애국심이 없고 그들 자신만 위한다. 교육을 잘 받고 미얀마로 돌아와 사회 모든 부문을 장악할까 솔직히 걱정된다.” A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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