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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선 무기·땅굴 기술 수출, 미얀마선 돈·식량 제공

중앙선데이 2010.06.13 03:51 170호 22면 지면보기
북한의 기술 수출로 건설하고 있는 네피도의 군사 지하 터널. 미얀마 망명단체가 지난해 공개했다.
한국과 미얀마를 이어 주는 끈이 ‘한류’와 ‘지원’이라면 북한과 미얀마를 연결하는 고리는 땅굴 기술과 무기 거래다. 두 나라는 매년 유엔이 내놓는 ‘인권 결의’ 대상에서 빠지지 않는 동지이자 안보리 제재의 대상국이다. 미얀마는 1988년 민주화운동 탄압 이후 계속 제재를 받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2차 핵 실험 이후 안보리의 강화된 제재(1874호)를 받고 있다.

안보리 제재 ‘동병상련’ 북한과 미얀마

미얀마 군사정부의 무기 수요는 큰 편이다. 소수 민족의 독립운동을 저지하기 위해서다. 샨주에 있는 와족은 2만~3만 병력에 병참기지까지 갖추고 있다고 한다. 미얀마에 무기를 파는 서방 국가는 없다. 중국·러시아·인도·세르비아 등 구 공산권과 비동맹 국가들로부터 무기를 들여왔다. 99년부터 미얀마의 군 실무자가 평양을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북·미얀마 간 군사협력이 시작됐다고 한다. 북한제 소총, 소형 미사일을 주로 구입했다. 북한의 ‘전문 분야’인 땅굴 기술 수출도 핵심 분야다. 현금 확보가 어려운 북한은 미얀마 군사정부에 무기를 몰래 팔고 돈과 식량을 받았다. 땅굴 분야에서도 설계, 장비 임대, 인력 지원 대가로 수입을 챙긴다.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는 미얀마의 망명조직 ‘버마 민주주의 목소리(DVB)’는 지난해 미얀마 군사정부가 네피도와 샨주 주도 타웅지에 건설하고 있는 대형 지하터널 공사 현장과 현장에서 기술 지도를 하고 있는 북한인들의 사진·동영상을 공개했다. DVB는 미얀마 전역에 800개의 지하터널 네트워크 구축작업을 하고 있으며 핵 공격도 견딜 수 있는 군지휘통제소도 있다고 주장했다.

양국 간 핵 기술 협력 얘기도 이 단체를 통해 지난해부터 흘러나왔다. 4일 DVB는 “군부가 우라늄 농축기술과 장거리 미사일 등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부품들을 북한으로부터 확보했다”고 밝혔다. 육군 핵 개발 부대 본부에서 근무하다 망명했다는 사이 테인 윈 소령은 관련 사진·문서를 증거로 제시했다. 핵 기술 협력에 대해선 의견이 갈린다. 드러난 자료들이 핵 기술 협력의 명확한 근거라는 이들도 있지만, 미얀마의 과학기술 수준이 핵 기술을 개발하기엔 너무 낮은 수준이라는 의견도 있다. 12일 미얀마 외무부는 공식적으로 북한과의 핵협력설을 부인했다.

어쨌든 북한과의 군사협력은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가 미얀마 군사정부에 대화 및 개입정책을 취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는 요소다. 지난해 공해상 추격을 받고 결국 북한으로 회항한 강남호사건 등은 미얀마의 북한산 무기 거래 정황을 보여 주는 사례다. 특히 천안함 사건 발생 이후 미국은 한국과 함께 미얀마에 대해 대북 안보리 결의 1874호를 준수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지난달 10일 미얀마를 방문한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북한제 무기를 구매하지 말라고 했고 방문 직후 미얀마에 대한 제재를 연장한다고 밝혔다.

남북한과 미얀마의 묘한 인연은 83년 10월 9일 아웅산 테러 사건부터 시작됐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양곤의 아웅산 국립묘소에 도착하기 직전 북한은 미리 설치해 둔 폭발물을 폭파, 행사장에 기다리고 있던 서석준 부총리 등 우리 관료 16명을 숨지게 했다.

강민철 북한 대위 등 북한 공작원 3명이 체포됐고 미얀마(당시 버마)는 북한과 단교 조치를 취했다. 당시 북한과 미얀마는 비동맹 국가로서 매우 우호적인 관계였다. 주범 강민철은 양곤 시내 인세인 형무소 정치범 수용시설에서 25년간 수형 생활을 하다 쉰여덟의 나이로 2년 전 사망했다. 우리 정부는 인도적 차원에서 강민철에게 사식을 넣어 주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5월 29일 오전 찾은 아웅산 국립묘소는 굳게 닫혀 있었다. 83년 아웅산 사건 직후부터 미얀마 정부는 출입을 통제했다. 7월 19일 순교자의 날 기념식 때만 개방한다. 이날은 미얀마 독립의 아버지 아웅산 장군 등이 암살당한 날이다. 아웅산 장군 등 지도자 9명의 유해가 있다. 아웅산 장군이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의 선친이라는 점도 묘소 폐쇄의 한 배경인 듯했다. 묘소 밖에서의 사진 촬영도 금지했다. 출입문 앞 군인에게 “서울에서 온 유족”이라고 했더니 웃으며 사진을 찍어도 좋다"고 했다. 83년 당시엔 대낮에도 사람이 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숲이 우거졌다고 하지만 지금은 한적했다.

단교 24년 만인 2007년 4월, 북한과 미얀마는 국교를 재개했다. 김석철(57) 대사가 부임했다. 오랜 시간이 지났고 당시 한국 정부의 대북 분위기가 유연했던 점이 재수교 배경이라는 게 외교가의 분석이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군사협력에 대한 상호 필요성이다. 양곤의 북한 외교관들은 드러나지 않게 조용하게 지낸다고 한다.

양곤에서 만난 미얀마인들은 북한에 대한 거부감을 노골적으로 표시했다. 50대 A씨는 “아웅산 테러로 한국 관리들도 사망했지만 우리 미얀마인들도 죽거나 많이 다쳤다. 우리는 북한을 정말 싫어한다”고 했다. 북한이 땅굴을 파 주고 무기를 팔아 군사정부의 억압 수단을 제공하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했다. 30대 후반의 B씨는 “북한은 이상한 지도자들이 통치하는 국제사회의 문제아다. 2007년 재수교 보도가 나온 뒤 왜 그런 쓸모없는 나라와 재수교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군부를 욕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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