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집 팔고 땅 팔아 모은 50만 점 나 떠나면 이 보물들 어찌될지”

중앙선데이 2010.06.13 03:45 170호 2면 지면보기
의사였던 아버지의 뒤를 잇는 것이 이우로(83) 한얼테마박물관장의 어린 시절 꿈이었다. 그러나 20대 초반에 6·25전쟁이 터지고, 운명에 떠밀려 생각지도 않은 신문기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기자로 일하던 당시, 시간이 날 때마다 서울 인사동이나 황학동의 골동품 가게를 돌아다니는 것이 낙이었다. 처음엔 도자기나 그림을 수집했다. 그러나 목표의식 없이 모으는 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루지 못한 꿈을 기억했다. 의료박물관 설립을 목표로 세웠다. 체신부에만 13년을 출입한 기자 경력도 수집을 재촉했다.

83세 이우로 한얼테마박물관장의 ‘마지막 꿈’

“역사를 증언할 유물들이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걸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어요.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들여온 레이저현미경이 퇴출되자 즉시 사들였죠.”
처음엔 의료기기와 과학기자재를 중점적으로 모았지만 점점 범위가 확대됐다. 소장품 중 현미경만 1200대다. 의료기기용으로 모으기 시작한 게 전 세계 현미경의 역사를 꿰는 컬렉션이 돼 버렸다.

“독일의 칼자이스, 일본의 니콘 등 현미경을 브랜드별로 모으다 보니 자연히 카메라도 모으게 됐어요. 렌즈가 붙은 광학기기로 수집 범위가 확장된 거죠.”
그렇게 수집하는 도중 세상은 온통 디지털로 바뀌었다.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아날로그를 모으기 시작했다. 오디오와 TV는 초기 모델부터 수집해 컬렉션을 완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런 식으로 가다 보니 차라리 다양하게 모으는 게 남보다 많이 가질 수 있고, 특이한 것도 손에 넣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종목을 따지지 않고 희귀한 아날로그 제품은 모두 모으기 시작했죠. 남들을 흉내 내기는 싫고, 특이하게 하려면 아예 박물관을 한 20개쯤 만들어 보자 싶었어요. 그게 50만 점을 모으게 된 동기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물이 15만여 점이다. 그중 1만여 점을 전시하고 있는데 이를 당일치기로 둘러보기에도 벅차다. 국립박물관의 문화재와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지만 한 개인이 50만 점을 모았다는 건 경이로운 기록이다. 이 관장은 지금까지 과학문화관·전적유물관·고문서유물관·카메라유물관·산업디자인유물관 등 테마박물관 7개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 7개가 모두 1999년 폐교된 대신초등학교 옥천분교 운동장에 모여 있다. 번듯한 건물이 아니라 지하철 객차를 전시실로 활용한 박물관이다. 74년 8월 15일 개통한 서울 지하철 1호선. 당시 도입됐던 일제 객차 60량 중 12량과 우편열차 2량이 유물 담는 그릇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원래 전시실 용도로 산 게 아니라 유물로 구입했어요. 24년간 뛰고 퇴역한 1호선 열차가 공매에 나왔었죠. 덩치가 워낙 큰데 놔둘 곳이 없어 일단 폐교에 갖다 둔 겁니다.”

서울 차고지에서 여주까지 운송하는 데만 1년 넘게 걸렸다. 지하철의 중량 때문에 다리를 건널 수 없었는데, 하필 여주로 가는 길에 다리가 많았다. 먼 거리를 돌아갔다. 몸집이 커서 한 번에 2대밖에 못 옮기는 데다 교통을 방해하지 않도록 오전 2시부터 4시까지만 움직일 수 있었다. 오전 4시가 되면 갓길에 차를 세워 두고 날을 꼬박 지새웠다. 예행연습을 세 번 하면서 커브를 돌 수 있는지, 전선이나 전화선에 걸리지는 않는지 점검해 한전·전화국에 연락해 조치했다. 10여 년 전 기준으로 객차 값은 대당 1200만원. 그러나 운송비는 유물 값을 훌쩍 뛰어넘었다. 임시로 거쳐 갈 자리라고 생각했음에도 자갈 깔고, 침목 놓고, 레일 깔고, 다시 자갈을 덮어 선로까지 완벽히 세팅 했다. 그러나 눈비에 노출된 탓에 칠이 벗겨지고 녹이 슬었다.

“당초 여주군에서 의욕적으로 박물관을 유치하려 했어요. 군유지 66만㎡(약 20만 평)를 할애해 주면 제가 땅을 사서 박물관 20개를 지어 들어가기로 이야기가 됐었죠. 그런데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그 땅을 내주지 않는 거예요. 군수도 바뀌고, 약속도 지키지 않고…. 10년 허송세월을 했죠.”

박물관 단지를 조성하면 외곽에 순환선로를 깔고 중국산 증기기관차를 들여와 지하철 1호선 객차를 끌고 달리게 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부지 문제는 끝내 해결되지 않았다. 폐교 건물 하나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궁여지책으로 지하철 객차에 전시하는 방책을 마련해 2000년 박물관 문을 열었다. 이색 박물관이라며 반짝 화제가 됐다.

1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지하철 안에는 둘 곳 없는 유물이 켜켜이 쌓여 갔다. 좁은 객차 통로를 제외하곤 죄다 유물이다. 게걸음으로 통로를 빠져나가야 할 정도로 아슬아슬한 곳도 여러 군데다. 손만 내밀면 얼마든 만질 수 있는 거리. 유물을 만지고 체험해야 한다는 그의 지론 때문이다.

“현미경 렌즈를 빼 가고, 유물에 붙어 있는 라벨을 떼어 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예요. 갖고 가서 뭘 어떻게 할 수도 없을 텐데, 아직 국민 의식이 멀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예약제로 바꿨어요.”
얼핏 고물상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데, 막상 유물 하나하나의 가치를 따져 보자니 입이 딱 벌어졌다. 초창기 TV부터 제작·송출 관련 기기까지 아우르는 방송 관련 컬렉션은 기기가 작동만 된다면 당장 방송국을 차려도 되겠다 싶은 수준이다.

주요한 것들을 대강만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1892년 제작된 최초의 영문 타자기, 스칸디나비아 의료진이 6·25전쟁 때 들여온 우리나라 최초의 수술대,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됐던 치과 석션 의료기, 초기 내시경, 1986년 제10회 아시안게임에서 연합뉴스 사진기자가 사용했던 아날로그 사진 전송기, 임진왜란 때 사용한 조총, 1945년 미군이 들여온 가장 오래된 X선 촬영기, 헬리콥터 2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용하던 식탁, 초창기 노트북, 수중 카메라, 초창기 스파이 카메라, 매머드 뿔, 대북 방송용 스피커, 18세기에 제작된 명품 과르네리 바이올린, 루이 17세 당시 제작된 시계와 피아노, 88올림픽 개막식 공연에 쓴 온갖 북 몽땅, LP 20만 장…. 서울역 옛 청사 돔에 걸려 있던 시계, 파고다극장에서 사용하던 35㎜ 영사기도 그곳에 있었다. 이 관장은 취재진에게 에디슨이 만든 최후의 축음기 소리를 들려주기도 했다. 다이아몬드 바늘을 적용하는 등 너무나 견고하고 완벽한, 그러나 비싼 제품을 만드는 통에 에디슨을 망하게 만든 제품이란다. 가슴을 뛰게 하는 소리였다.

“이런 것 때문에 희열을 느끼죠. 난 오디오도 시시한 건 안 구했어요.”
가장 안타까운 건 비가 새는 폐교 건물 안에서 곰팡이가 슬어 가는 그림과 옛 글씨들이었다. 비에 젖어 바닥이 내려앉는 바람에 유물을 복도에 옮겨 놓은 모습도 보였다. 항온·항습기마저 들여놓을 공간이 없어 박물관 마당에 놓아 둔 터였으니 열악한 처지는 필설로 설명하기 어렵다.

“여주군에선 이렇게 비 새는 건물을 빌려 주고 한 해 임대료로 1800만원을 받아 가니 분통이 터지죠.”
대표적인 유물 몇 개씩만 뽑아 설명을 들었음에도 박물관을 돌아보는 데 4시간이 족히 걸렸다. 대충 따져 봐도 카메라박물관·오디오박물관·의학박물관·고문서박물관·신문박물관·방송박물관·영화박물관·악기박물관·TV박물관·가구박물관·의상박물관은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유산으로 물려받은 땅도 집도 남김 없이 팔아 여기 쏟아 부었어요. 돈 없어진 건 별로 아쉽지 않은데, 여기서 뺏긴 내 청춘 10년은….”
노(老)수집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청춘은 어디 가서 보상받을 수 없지 않습니까. 이곳을 지키느라 가족을 멀리하다 보니 홀로 지내던 아내가 지난해 치매에 걸렸어요. 가족들에게 미안합니다. 내일모레 가야 할 나이인데 이제 어찌할 도리가 없어요. 후퇴도 전진도 못하는, 그런 세월을 보냈죠.”

우연히 열어 본 장롱(물론 유물이다) 안엔 그와 아내가 입을 수의가 보관돼 있었다. 박물관에서 그가 자신에게 할애한 공간은 객차 맨 구석에 놓인 병실용 침상 하나였다. 차려 자세로 반듯이 누워야 딱 맞을 그곳을 제외하곤 온통 유물로 들어차 있었다.

“보여 주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체험장도 5~6개 정도 만들어 아이들이 과학에 재미를 들이고, 과학자가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갖도록 유도하고 싶어요. 계획대로 됐다면 연구소도 하나 차리고 싶었고, 과학자를 키워 내는 작은 대학도 하나 세우고 싶었어요. 유한양행 유일한 회장을 존경하는데, 그분과 비교할 순 없겠지만 가진 걸 환원한다는 의미도 있었어요. 그게 전부입니다. 이젠 사는 시간보다 가는 시간이 바쁘니, 후계자를 만드는 게 소원입니다.”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