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선거 결과, 우연히 맞힌 게 아니라 15년 노력의 결실”

중앙선데이 2010.06.13 00:30 170호 10면 지면보기
김인규 KBS 사장은 “그동안 선거방송이 편파 시비에 시달렸는데도 백서 한 번 낸 적이 없다”며 “KBS는 이번 지방선거 전 과정을 있는 그대로 담은 백서를 발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동연 기자
민주당 승리라는 이변을 낳은 6·2 지방선거는 결과만큼 숱한 화제를 뿌렸다. 그중 하나가 방송 3사의 공동 예측조사다. 2일 오후 6시 투표 마감과 동시에 발표된 출구조사는 족집게처럼 정확했다. 밤샘 역전 드라마를 펼쳤던 서울시장 개표 결과(오세훈 47.4%, 한명숙 46.8%)는 출구조사(오세훈 47.4%, 한명숙 47.2%)와 거의 맞아떨어졌다. 또 송영길 인천시장, 이광재 강원지사, 안희정 충남지사, 김두관 경남지사의 당선도 정확하게 예측해 냈다. 당락뿐 아니라 득표율까지 근사하게 맞혔다. 엉터리 예측조사 보도로 편파 시비를 불렀던 역대 선거방송과는 판이한 모습이었다.

방송3사 공동 출구조사 이끌어 낸 김인규 KBS 사장

방송 3사 공동조사를 이끌어 낸 주역은 김인규(60) KBS 사장이다. KBS 기자(공채 1기) 출신으로 30년 넘게 방송에 몸담아 온 그가 KBS·MBC·SBS가 참여한 ‘2010 지방선거 공동예측조사위원회(Korea Election Pool)’를 만들어 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KBS 사장 집무실에서 김 사장을 만났다. 그는 “선거 결과는 우연히 맞힌 게 아니고 15년간의 보이지 않는, 또 지속적 노력이 결집돼 나온 것”이라며 “공정보도의 작은 주춧돌이 마련됐다는 데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취임 7개월째를 맞은 김 사장은 “취임 후 언론 인터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며 “출구조사에 한정해 얘기하기로 하자”며 인터뷰에 응했다. 김 사장은 KBS 정치부장·보도국장·이사·뉴미디어본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쳐 지난해 11월 사장에 취임했다. 현재 방송협회장도 맡고 있다. 그 직전엔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장, 이명박 후보 선대위 언론특보를 지냈다.

-방송3사의 출구조사가 화제입니다. 어떻게 정확한 결과가 나올 수 있었나요.
“선거 개표방송을 한 지 25년 됐어요. 1985년 12대 총선 때가 처음이었는데 당선자를 빨리 알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출구조사를 시작했지요. 그런데 선거 때마다 계속 출구조사(Exit Poll)가 실패해 (방송사가) 망신을 당했어요. 조사가 정확하게 되려면 첫째, 돈을 많이 들여 샘플 사이즈를 늘리고 인건비도 제대로 들여야 하는데 각 방송사가 따로 하다 보니 예산이 적고 편법을 써서 적당히 하니까 적중률이 낮을 수밖에요. 하지만 이번 공동조사로 각 사가 (따로 했을 때보다) 돈은 적게 쓰면서 실제 조사엔 더 돈을 풍족하게 쓸 수 있었고 적중률이 높아진 거죠. 또 과거 3사가 따로 했을 때는 방송사에 대한 신뢰가 없었지만 이번엔 3사가 같이하니까 신뢰를 했고 (유권자들이) 진솔하게 답변해 줬어요. 출구조사를 제대로 하려면 5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겨우 2가지가 해결된 거라고 봅니다.”

2일 출구조사에 든 비용은 18억2000만원이다. 전국 607개 투표소에서 15만5918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투표소당 230명을 조사한 셈이다. 설문 항목은 2개. 16개 시·도의 광역단체장과 교육감 후보 중 누구에게 투표했는지를 체크하도록 했다.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는 1.2~2.4%였다. 김영원(숙명여대)·류제복(청주대)·박진우(수원대)·이준웅(서울대) 교수 등 전문가 4명이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아직 충족되지 않은 남은 3가지 조건은 뭘까. 김 사장은 취재주간으로 있던 96년 11월 미국 대통령선거와 상·하원선거를 취재했던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그는 미국 메릴랜드주 록빌에서 있은 몽고메리 선거구 제04-03 투표소의 출구조사를 취재했다. 출구조사는 NBC·ABC·CBS·CNN·FOX등 5개 방송사와 AP통신이 공동출자한 VNS(Voter News Service)란 회사가 맡았다. VNS는 이후 NEP(National Election Poll)로 이름이 바뀌었다.

-어려웠던 점이나 아쉬운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거리 제한 규정입니다. 투표소에서 100m 떨어진 곳에서 하도록 돼 있는데 이 규정은 반드시 없어져야 해요. 미국에선 투표소 바로 앞에서 설문하고 바로 함에 넣어요. 투표하고 나오는 사람을 세서 여덟 번째 사람에게 설문을 하는데 만약 그 사람이 설문에 응하지 않겠다고 하면 그때부터 다시 여덟 명을 세어 묻는 방식으로 하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통계조사 방법에 어긋나기 때문이랍니다. 그런데 100m 떨어진 곳에서 어떻게 정확히 여덟 번째 사람을 알 수 있겠어요. 출구조사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까 봐 그런 규정을 둔 거겠지만 이젠 (유권자를) 믿어 줘야 해요. 또 출구조사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기 때문에 오해도 없어졌다고 생각해요. 100m 밖에서 하는 건 정확히 말해 출구조사(Exit Poll)가 아니라 거리조사(Street Poll)예요. 2012년 총선에선 거리 제한을 없애 바로 앞에서 하게 해 줘야 해요. 국회에도 이런 내용의 청원을 낼 생각입니다.

또 과거엔 통계학에 대해 무지한 방송사 간부들이 선거방송을 했어요. 표본오차 안에 있는 건 어떻게 판정해야 하는지, 샘플 사이즈에 따라 오차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하다 보니까 0.1%만 유리해도 무조건 당선된다는 식으로 보도한 거예요. 이런 식으로 해서 2000년 총선 때 ‘민주당 완승’ ‘제1당 확실’ 이렇게 내보냈다가 망신당한 거 아닙니까. 다행히 이번에 KBS는 통계학자가 처음부터 같이하면서 의견을 얘기하고 그걸 다 들어줬어요.”

-마지막 한 가지 조건은 뭡니까.
“당락 위주가 아니라 유권자의 투표 행태를 조사해 그게 정치 발전의 토대가 되게 하는 게 중요한데 이건 아직 안 됐어요. 미국의 경우엔 성·연령·인종, 대통령을 누굴 찍었나 하는 것뿐 아니라 여러 가지 정치·정책 이슈가 죽 나와 설문 항목이 24개나 돼요. 우리도 이런 식으로 정책 설문이 나와야 해요. 4대 강, 세종시, 무상급식 등에 대해 물어봐야 돼요. 그러면 지역별로도 좋은 자료가 되고 정부에도 도움이 될 수 있죠. 출구조사를 더 발전시켜야 해요.”

-앞으로 어떻게 더 발전시켜 나갈지 복안이 있으십니까.
“매번 선거방송 때마다 망신당하는 걸 되풀이해 왔는데 이거 하나는 해결하자고 해서 지난 1월 방송사 사장 회의를 해 공동조사에 합의를 했어요. 마침 다음 주 신문협회와 방송협회가 만나는데 공동조사를 신문과도 같이 하는 문제를 꺼내려고 해요.”

-집 전화를 통한 여론조사가 여론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전화조사는 추세를 알아보는 거지 그걸로 당락을 맞히려는 건 난센스예요. 방송 3사가 투표 전날까지 세 차례 전화조사를 했는데 추세는 정확히 나왔어요. 인천시장의 경우 3차 조사(6월 1일)에서 42%(송영길) 대 42.5%(안상수), 강원지사 선거는 44.7%(이계진) 대 41%(이광재)로 좁혀졌어요. 이대로 가면 뒤집어질지 모른다고 했지요. 정확하진 않지만 트렌드는 맞힌 거예요. 전화조사도 추세를 알아보는 데는 도움이 됩니다.”

배석했던 김진석 선거방송프로젝트팀장이 보충 설명을 해 줬다. 김 팀장은 “이번에 방송 3사는 RDD(Random Digit Dialing) 방식을 적용했다. 무작위로 전화번호를 생성해 샘플을 추출하는 방식이다. 기존 조사는 전화번호부에 등재된 것을 놓고 하는데 등재율이 40%밖에 안 된다. 60%가 빠져 있는 상태에서 샘플을 추출하는 것이다. 기존 방식은 건당 7000원이 드는 데 비해 RDD 방식은 9000원이 들었다”고 했다.

화제가 SBS의 월드컵 등 중계권 독점 문제, KBS 조직 개편과 수신료 인상 문제로 옮아 갔다. 김 사장은 “모 인사가 ‘이번에 3사 공동 출구조사를 이끌어 낸 것처럼 중계권 문제를 한 번 풀어 보라’고 하더라”며 “진정성을 갖고 하면 이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BS와 MBC는 중계권 독점에 반발, SBS 윤세영 회장을 형사 고발한 상태다. 이어지는 김 사장의 얘기.

“ 방송을 책임져야 할 사람한테 맡겨 놓으면 되는데, 몇 사람이 괜히 개입해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겁니다. 사실 공동 출구조사를 추진하면서 일부에선 SBS를 빼자는 얘기도 있었어요. 아마 그랬다면 SBS는 출구조사 방송을 못 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것과 중계권 독점은 별개다, 그렇게 하는 건 감정적 대응이다 해서 같이하게 됐어요.

지상파가 서로 경쟁하지만 국가적으로 큰일이 있을 때는 3사가 같이 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월드컵은 국가대표 선수가 출전하는 거니까 국민 세금으로 출전하는 경기 자체도 국민의 콘텐트입니다. 이걸 한 개의 개인 회사가 (독점)하는 건 말이 안 되죠. 오죽하면 법의 심판을 받아 보자고 해서 형사 고발을 했겠어요. 방송법에도 ‘보편적 시청권’이란 조항이 몇 개나 있어요. 이번에 월드컵 중계를 SBS가 단독으로 하게 됐는데, 많은 시청자가 볼 거예요. 보고 나면 거기에 대한 잘잘못을 떠나 반응이 나올 거예요. 여름올림픽은 중계가 너무 많아 SBS가 단독으로 하고 싶어도 못할 거예요. 지금이라도 정상적·합리적 테이블로 들어와 맡겨 주면 방송협회 차원에서 코리안 풀을 만들어 얼마든지 문제를 풀 수 있어요.”

-수신료 인상 논의가 본격화될 것 같습니다. 수신료 인상의 필요성과 향후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수신료 인상은 시청자가 선택할 문제예요. 공영방송은 시청자가 주인이니까요. 다채널이 되면서 온 가족이 함께 맘 놓고 볼 수 있는 채널이 필요하고 이런 역할을 공영방송이 해야 하지 않느냐는 건데, 그러려면 시청자들이 돈을 대줘야 해요. 광고에 의존하면 시청률을 의식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품격 있는 콘텐트 제작에 걸림돌이 되죠. 시청자가 그린존(청정지대)을 원한다면 우리는 광고 안 하는 방향으로 가는 거고, 반대로 수신료를 올릴 수 없으니 광고로 가라 하면 그럴 수밖에 없어요. …정확한 데이터는 기억나지 않지만 상당수가 30년 동안 수신료를 안 올렸다면 이번에 올리는 게 맞는 것 같다는 게 분명히 다수예요. 그런데 일부에서 수신료 인상을 공영방송을 위한 재원 안정화 방안으로 보지 않고 종합편성 채널의 출현과 연결시키니까 정치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이 나오는 거예요.”

인터뷰는 한 시간 넘게 이어졌다. 김 사장은 경기고·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온 엘리트다. KBS에 입사할 73년 무렵은 방송이 지금처럼 각광받던 시대는 아니었다. 그는 왜 방송기자가 되려 했을까. 소탈한 성격만큼이나 솔직한 답변이 돌아왔다.

“사실 방송기자 할 맘 전혀 없었어요. 교수가 ‘KBS에 지원해 보라’고 했을 때 ‘방송국도 기자가 있는 겁니까’ 하고 물었으니까요. 상식 책 한 권 안 읽어 보고 시험을 쳐 상식을 많이 틀려 떨어진 줄 알았죠. 그런데 영어 시험이 100% 영어정해란 책에서 나왔는데, 내가 과외선생을 해서 몇 페이지에 뭐가 나오는지 다 알거든요. 영어 시험을 100점 맞았죠. 입사하고 나서도 중간에 몇 번 떠날까 생각을 했었죠. 방송 저널리즘을 인정해 주지 않으니까 잘못 들어왔나 고민도 많이 했어요. …방송쟁이 30년 하면서 공영방송의 역할에 대해, 과거에 못했던 걸 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무감이 생겼어요. 그중 하나가 기자와 PD가 (칸막이를 허물어) 같이 가는 시스템을 만드는 거예요. 편하게 하려면 그냥 가도 되지만 문제가 있는걸 안 이상 고치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