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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짝지근 불고기·갈비엔 묵직한 수마트라 커피가 제격

중앙선데이 2010.06.13 00:25 170호 12면 지면보기
<1> 커피 사워크림과 발사믹 드레싱을 곁들인 참치 다다키 샐러드. 생선요리지만 풀 보디의 인도네시아 커피가 어울린다. <2> 커피젤리와 푸아그라. 푸아그라의 진한 맛과 케냐 커피의 청량감이 만났다. <3> 구운 채소와 송아지 고기. 수마트라 커피의 버섯 향이 고기의 풍미를 높였다. [스타벅스 제공]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머그에 코를 갖다 댔다. 열기와 함께 향이 코로 밀려들었다. ‘후르륵~’ 한 모금 들이마신 커피가 혀 위를 굴러 목을 타고 넘어간다. 씁쓸한 커피에서 싱그러운 꽃 내음과 청량한 과일향이 피어올랐다. 아기 다다시의『신의 물방울』식으로 표현하자면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광활한 대지 위에 움트는 새순처럼…”이라고 할까.

도쿄 ‘스타벅스 커피대학’서 체험한 커피와 요리의 마리아주

칠흑처럼 검은 커피는 피처럼 검붉은 와인과 비슷한 점이 많다. 기호품이면서 일단 맛을 들이면 좀처럼 끊기 어려운 중독성이 있다. 둘 다 볕이 잘 드는 더운 지역에서 자란 열매로 만드는데, 일조량·수분·바람·토양 등에 예민하다. 품질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고 등급도 다양하다. 달콤하고, 부드럽고, 풍부하고, 묵직하고, 라이트하고… 맛과 향의 표현도 비슷하다. 향을 맡고 소리 내 마신 뒤 혀에 머금는 시음 방식마저도 그렇다. ‘마리아주(mariage:결혼)’는 어떨까. 와인처럼 커피도 요리와 어울려 맛을 드높일 수 있을까.

지난 1~2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스타벅스 커피대학의 마지막 과정으로 제공된 만찬엔 다양한 조합의 커피와 요리의 마리아주가 선보였다. 커피와 요리의 궁합은 2008년 출판된 『The Colors of dessert』란 책에서도 제안된 적이 있다. 스타벅스 글로벌커피팀을 책임지고 있는 스콧 맥마틴, 뉴욕의 ‘장 조지’ ‘노부’ ‘불레이’ 등 미국에서 최고로 꼽히는 레스토랑의 셰프 87명이 함께 쓴 책이다. 2일 만찬에서 만난 맥마틴은 ‘마리아주’ 대신 ‘짝짓기(pairing)’라는 표현을 썼다. “커피와 음식은 진작부터 함께였다. 머핀과 베이글의 짝이 바로 커피 아닌가. 페어링을 확대하면 커피의 풍성한 향이 음식의 맛을 깨우고, 한입의 요리가 한 모금의 커피 맛을 더 훌륭하게 해 줄 수 있다”고 했다. 스타벅스가 제안한 다채로운 커피와 요리의 마리아주를 소개한다.

아침 식사엔 깔끔한 라틴 커피
세계 최대 커피 산지인 브라질을 비롯해 멕시코·과테말라·코스타리카 등의 라틴 커피는 일반적으로 다양한 맛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대체로 미디엄 보디(medium body)로 무게감도 적다. 모든 것이 ‘적당한’ 덕에 어떤 음식과 함께 마셔도 대체로 무난하다. 하지만 중부냐, 남부냐에 따라 같은 대륙의 커피에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콜롬비아나 멕시코 등 중미산 커피는 우아하면서도 신맛을 낸다. 남쪽으로 내려가면 커피 속에 모든 풍미가 어우러진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커피 가루를 뿌린 디저트. 음료로 마시지 않고도 커피의 향취를 느낄 수 있다.
중남미 커피는 특히 아침 식사에 곁들이면 좋다. 미디엄 보디라 배부르지 않게 먹는 아침에 부담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시리얼이라면 부드러운 남미산을 섞은 블렌드 커피와 궁합이 맞는다. 라틴 커피는 땅콩처럼 고소한 맛을 지니고 있는데, 시리얼 역시 견과류의 고소함을 갖고 있어 같은 맛 계열끼리 상승 효과를 낸다는 설명이다. 달걀 요리나 베이컨, 소시지처럼 짭짤한 음식엔 멕시코나 코스타리카의 중미산 커피를 추천했다. 간이 배어 있는 요리라서 마일드한 남미산을 곁들일 경우 커피 맛이 눌려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약한 신맛(acidity)이 나는 중미산 커피가 음식과 커피 맛을 모두 살리는 데 제격이다.

밥과 된장국, 생선구이가 나오는 일본 가정식 요리엔 남미 커피가 어울린다. 진한 양념을 쓰지 않는 생선구이에는 부드럽고 가벼운 커피를 곁들여야 음식의 담백함을 느낄 수 있다. 맥마틴은 “커피의 깔끔한 끝맛이 생선의 기름기를 완화해 담백함을 상승시켜 준다”고 했다.

육류엔 묵직한 풀 보디 인도네시아 커피
인도네시아는 아시아의 대표적인 커피 산지다. 묵직하게 입 안을 가득 채우는, 풀 보디의 강한 커피다. 전문가들은 흙을 씹는 듯(earthy) 무겁지만 그 속에서 싱그러운 허브 향이 피어난다고 말한다. 바리스타들은 인도네시아 커피를 마시는 느낌을 “소나기가 쏟아지는 운동장 한가운데 서서 비 냄새에 실려오는 따뜻한 흙내음을 맡는 것 같다”고도 표현한다.

자연과 야생의 맛을 품은 인도네시아 커피는 육류에 제격이다. 만찬 메뉴엔 구운 채소와 버섯을 곁들인 송아지 고기 요리에 수마트라 커피가 곁들여 나왔다. 커피 맛이 깊고 짙어서 육즙이 흐르는 고기의 진한 맛에 녹아버리지 않고 어우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겉만 살짝 구운 참치 다다키 샐러드에는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지역의 커피를 짝지었다. 생선이지만 쫄깃하고 탄력 있는 육질을 가졌기 때문에 인도네시아 커피가 잘 어울린다고 했다. 하지만 가장 강하고 무거운 수마트라산보다는 가벼운 술라웨시를 곁들였다.

스타벅스코리아의 커피 대사 한상철씨는 “달짝지근하게 양념한 불고기·갈비 등 한식 육류 요리에도 수마트라 커피가 제격”이라고 했다. 그는 “보통 요리할 때 고기와 버섯의 궁합이 잘 맞는다고 하는데 인도네시아 커피의 흙내음을 버섯의 맛·향이라고도 한다. 커피의 버섯향이 육류와 만나면 맛의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식과 커피의 조합은 어색하게 느껴지겠지만, 마늘을 많이 써서 강한 맛이 나는 한식에 커피를 곁들이면 입 안에 남는 냄새를 완화시켜주는 효과도 있다”고 덧붙였다.

쌉쌀한 아프리카 커피는 향이 강한 요리에
아프리카 커피는 청량감 넘치는 신맛을 가졌다. 입 안에 탄산 기포가 일어나는 것처럼 시원한 느낌을 줘서 아이스커피용으로 많이 쓰인다. 이 지역 커피는 싱그러운 과일향과 꽃 내음을 지녔다. 그래서 요리하지 않은 신선한 과일 자체와도 잘 어울린다. 딸기·블랙베리·라즈베리 등 산딸기류와 복숭아·살구 등이 제 짝이다. 과일의 상큼함이 커피의 청량감을 더해주는 이 조합은 테이스팅에도 응용된다. 아프리카 케냐 커피를 시음하기 전 자몽을 한입 베어 무는 것이다. 한상철씨는 “커피 맛의 특징을 확실하게 잡아내기 위한 촉매제 용도로 자몽을 이용하는데 자몽을 먹고 케냐 커피를 마시면 청량감이 입에 가득 퍼진다”고 설명했다. 반면 자몽과 수마트라 커피를 함께하면 “이도 저도 아닌 맛이 난다”고 했다.

아프리카 커피는 다양한 향신료를 쓰는 인도나 태국·중국 등 아시아 요리에 주로 어울린다. 신선한 과일향 등의 향취가 요리에 더해져 풍미를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한씨는 담백한 한식 중 아프리카 커피에 어울리는 음식을 고른다면 “김치”라고 했다. 산도가 높은 김치와 산도 높은 아프리카 커피가 비슷한 계열로 어우러질 수 있다는 것이다.

‘페어링’이 익숙하지 않은 경우라면 라틴 커피를 고르면 무난하다. 하지만 커피는 와인보다 품종이 간단하고 산지별 특징도 명확해서 직접 페어링을 시도해 보는 것도 좋다. 한상철씨는 이때 “실패 확률을 줄이려면 같은 계열로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고소한 맛이 나는 남미 커피엔 견과류가 들어 있는 호두파이를 매칭하고, 아침 식사에 주로 먹는 오믈렛이라도 버섯 토핑을 넣었다면 인도네시아산이 좋다는 얘기다. 그는 “색다른 조화를 맛보고 싶다면 반대되는 것도 짝지을 수 있지만 자칫하면 커피와 음식 둘 다의 개성을 죽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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