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니어 시절 소렌스탐, 우승 인터뷰 두려워 일부러 2위

중앙선데이 2010.06.13 00:15 170호 17면 지면보기
“나연이는 어떻게 됐나요?”
기자-“2언더파입니다.”

우승컵 눈앞에 두고 주춤하는 골퍼들

“우리 송희랑 똑같네. 그래도 나연이만큼은 했으니 됐네요.”

김송희의 아버지 김춘배씨는 매 라운드가 끝나면 최나연의 기록을 챙겼다. KIA 클래식에서도,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도 경기가 끝나면 최나연의 기록을 봤다.

두 선수는 절친이다. 두 선수 모두 중성적인 이미지가 있으며 1988년생 동갑이다. 최나연은 호적상 87년생이지만 KLPGA 투어에 조기 입회하면서 나이 제한에 걸리자 호적을 바꾼 것이다. 88년생으로 컸고 88년생과 함께 학교를 다녔다. LPGA 투어에는 신지애·김인경·박인비·민나온·오지영 등 88년생이 수두룩하지만 둘이 가장 친하다. LPGA 투어에서 “둘이 사귀느냐”는 말이 가끔 나올 정도다.

라이벌 의식도 강하다. 둘 다 거리도 제법 나고 아이언샷은 정교하면서 스핀을 걸고, 쇼트게임도 뛰어나다. 샷 구질로 보면 LPGA 정상급이다. 12일 현재 최나연이 세계 랭킹 10위, 김송희가 11위다. 지난해 최나연의 평균 타수는 70.51이었고 김송희는 70.52타였다.

통계로는 막상막하였지만 큰 차이도 있었다. 김송희는 2009년 톱 10에 12번 들었으나 우승을 못 했다. 톱 10에 11번 들어간 최나연이 2승을 했다. 지난해 둘의 타수 차는 0.01에 불과했지만 상금은 30만 달러 이상 차이가 났다. 우승은 그만큼 중요하다.
2007년 김송희가 LPGA 투어에 들어올 때 엄청난 기대를 받았다. 2006년 LPGA의 2부 투어인 퓨처스 투어에서 김송희가 센세이션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시즌 5승에, 톱 10에 15번 들었다. 미국 ESPN은 “집중력이 좋고 게임 흐름을 지배한다”며 “상대가 스스로 무너지게 하는 힘을 가진 김송희에서 안니카 소렌스탐의 카리스마를 볼 수 있다”고 했다.

김송희의 앞길엔 고속도로가 펼쳐진 듯했다. 그는 자신감에 넘쳤다. 그는 LPGA 투어 개막을 앞두고 기자와 인터뷰에서 자신의 장점을 ‘연장 불패’라고 했다. 김송희는 “아마추어까지 합하면 연장 5경기를 했고 9홀 연장을 해 본 적도 있는데 다 이겼다”고 했다. 멘털이 강하다는 얘기였다. 그는 주니어 시절 라이벌이었으며 국내 투어에서 지존으로 성장한 동기인 신지애를 두고 “겨뤄 보고 싶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나 2007년 LGPA 신인으로 김송희는 상금 랭킹 99위에 머물렀다. 갑상선이 좋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의외였다. 2008년 상금 랭킹이 14위로 뛰었다. 그러나 우승은 없었다. 당시 두 차례 선두로 출발했지만 공교롭게도 절정의 기량을 보인 로레나 오초아와 소렌스탐에게 각각 밀려났다.

2009년에 더 잘 쳤다. 미켈롭 울트라 오픈 마지막 라운드에서 중반 단독 선두로 뛰쳐나왔다. 그러나 16번 홀에서 더블 보기를 하면서 미끄러졌다. P&G 아칸소 챔피언십에서는 65-68타로 2타 차 선두로 나섰다. 그러나 마지막 날 72타로 타수를 줄이지 못했다. 우승컵은 최종 라운드에서 64타를 휘두른 신지애가 가져갔다. 제이미파 클래식에서도 우승 경쟁을 했지만 하루 10언더파를 몰아친 이은정에게 밀려 3위에 그쳤다. 징크스는 삼성 월드챔피언십에서도 계속됐다. 66타 공동 선두로 시작했으나 3라운드 6오버파를 친 탓에 8위에 그쳤다. 이때 우승자가 최나연이었다. 최나연은 김송희가 78타를 친 3라운드에서 63타를 쳤다. 둘의 타수 차이가 15타였다. 그리고 LPGA 투어 첫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컵에 입을 맞추기 전까지 최나연도 우승 문턱에서 여러 차례 미끄러져 2위 징크스가 생기던 터였다. 최나연은 첫 우승 테이프를 끊은 뒤 한 달 만에 국내에서 벌어진 LPGA 투어 하나은행-코오롱 챔피언십에서도 우승했다.

같은 처지에 괴로워하던 절친한 친구는 위상이 갑자기 확 바뀌게 됐다. 김송희 캠프에서 최나연의 성적을 챙겨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톨 포피 신드롬(tall poppy syndrome)이라는 말이 있다. 이른바 키 큰 양귀비 증후군이다. 조화와 균형이 중요한 꽃밭에서 키가 큰 양귀비는 목이 잘린다는 말로, 튀고 잘나가는 사람을 용납하지 않는 문화를 말한다. 이런 문화에서 자란 사람은 튀면 목이 잘릴 수 있다는 걱정을 의식적 혹은 무의식 중에 하게 되고 1등을 앞에 두고도 물러서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키 큰 양귀비 증후군이 가장 만연한 나라가 호주다. 일본과 한국 등 동아시아와, 북구에서도 비슷한 문화가 있다.

골프에서 다 잡은 우승을 날려 버리기로 가장 유명한 선수는 그레그 노먼이다. 그가 호주 사람이어서 양귀비 신드롬이 골프계에도 널리 쓰인다. 노먼은 튀기 싫어서 우승을 일부러 날려 버린 것은 아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노먼을 톨 포피 신드롬의 전형적인 케이스로 생각하는 심리학자가 여럿 있다. 이택중 신경정신과 박사는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 깡패집단에 의탁하기 위해 깡패가 되고, 다른 사람이 무서워 자신이 걸핏하면 병을 깨는 등 깡패처럼 행동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스웨덴에서 자란 소렌스탐은 공개적으로 고백했다. “주니어 선수 시절 1등을 하면 인터뷰를 하게 되는데 그게 두려워 일부러 3퍼트를 하고 2위를 하곤 했다”는 것이다. 키 큰 양귀비 증후군이다. 그런 소렌스탐은 성인이 돼서는 모자 챙에 ‘no fear’라고 쓰고 다니면서 두려움 없는 여제로 성장했다. 튀는 것이 두려웠던 소렌스탐을 전사로 변화시킨 코치가 피아 닐슨이다.

최나연은 피아 닐슨에게 배우면서 2위 신드롬에서 벗어났다. 최나연이 성공하자 김송희도 닐슨에게 배우고 있다. 김송희의 에이전트사인 스포티즌의 김평기 이사는 “예전의 자신감을 90% 이상 찾았다”고 말했다.

LPGA 투어는 본격적인 여름 투어에 들어갔다. 11일 시작된 스테이트팜 클래식을 시작으로 숍라이트 클래식, 메이저대회인 LPGA 챔피언십, 제이미 파 클래식, 최고 권위의 US여자오픈이 연달아 이어진다. 2주를 쉰 뒤 제5의 메이저 대회인 에비앙 마스터스와 리코 브리티시 여자 오픈이 유럽에서 펼쳐진다.

스테이트팜 1라운드에서 김송희는 6언더파를 쳤다. 최나연은 7언더파다. 최근 컨디션은 김송희가 가장 좋다. 올 시즌 LPGA 투어에서 7개 대회에서 모두 톱 10에 든 유일한 선수다. 선수들 실력이 종이 한 장 차이인 LPGA 무대에서 7대회 연속 톱 10은 대단한 기록이다. 올해 김송희는 24라운드에서 19번이나 언더파를 쳤고(1위) 버디를 95개(4위) 잡아냈다. 평균 타수는 69.97로 2위, 그린 적중률은 71.2%로 10위다. 페어웨이 적중률을 제외한 전 항목에서 25위 이내에 들었다. 드라이브샷의 정확성이 69.5%로 50위에 처져 있지만 평균 254야드(24위)라는 거리를 감안하면 꽤 좋은 수치다. 김송희는 완벽한 경기를 하고 있다.

우승이 없는 것을 제외하면 그렇다. J골프 박원 해설위원은 “실패에 대한 기억이 많아 중요한 순간이 되면 또다시 실수를 반복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리를 채워 근육을 긴장시키는 것으로 보인다”며 “스코어라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좋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자신을 평가하고, 경쟁자가 아니라 코스와의 싸움이라고 생각하면 우승은 따라 나오게 돼 있다. 김송희는 우승을 못 하기에는 실력이 너무나 좋다”고 말했다.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