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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초반 공세에 시라카와 일단 승복

중앙선데이 2010.06.13 00:08 170호 24면 지면보기
간 나오토(菅直人·63) 일본 총리의 별명은 ‘핏대 간’이다. 시라카와 마사아키(白川方明·60) 일본은행(BOJ) 총리는 ‘샌님 시리카와’로 불린다. 간 총리는 에두르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한다. 때로는 벌컥 화를 내기도 했다. 소신이 강하다는 평이다. 시라카와 총재는 조용한 서생 같다. 경제정책보다는 순수 경제학에 더 끌린다. 그는 속마음(本音)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상대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성향이 강하다.

‘핏대’ 간 나오토 총리와 ‘샌님’시라카와 일본은행 총재의 2인 삼각

정반대 성격인 두 사람은 일본 경제의 주치의다. 간 총리가 재무상에 노다 요시히코(53·아래)를 임명하기는 했다. 하지만 노다는 간 총리가 재무장관 시절에 데리고 있던 부하(부대신)였다. 그는 간 총리의 철학과 지시를 충실하게 따르는 인물쯤으로 비친다.

간 총리와 시라카와 총재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디플레이션과 장기침체라는 질환이다. 두 사람의 성공에 일본인들의 삶의 조건뿐 아니라 자존심이 걸려 있다. 올해 말을 기준으로 일본이 세계 2위 경제대국이라는 타이틀을 중국에 넘겨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특단의 대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노다 요시히코 신임 재무상
시장 개입 vs 시장 자유
두 사람은 성격만큼이나 경제를 보는 눈(철학)이 다르다. 진단과 처방이 다를 수밖에 없다. 간 총리는 취임 직후 “지난 20년 경기침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며 “잘못된 정책 때문에 발생했다”고 말했다. 정책 실패가 화근이었다는 얘기다. 달리 말하면 인재라는 얘기다.

시라카와 총재는 낮은 생산성 탓이라고 진단했다. 그가 2006년 일본은행 부총재에서 물러나 야인생활을 할 때 쓴 현대 금융통화정책 이론과 실제라는 책에서 “일본은행은 최선을 다해 최악의 디플레이션을 막았다”며 “하지만 생산성 증가율이 낮은 바람에 경기침체를 막지 못했다”고 말했다.

간 총리의 처방은 ‘제대로 된 경제정책’이다. 올바른 정책으로 시장을 조율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쪽이다. 그는 일본인들이 고용 불안 때문에 소비를 터무니없이 줄인다고 생각한다. 안정적인 일자리만 있으면 일본인들이 미래를 위해 현재 소비를 지나치게 줄이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간 총리에게 좋은 일자리는 공공부문 일자리다. 그렇다고 채권을 발행해 조달한 돈으로 정부 등의 일자리를 늘릴 수는 없다. 이미 공공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110%를 넘었다. 세수를 늘려야 한다. 간 총리는 11일 의회 연설에서 일본이 제2의 그리스가 될 수 있다며 소비세율 인상을 주장했다. 간 총리의 경제 가정교사인 오노 요시야쓰 오사카대 교수는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WSJ)과 인터뷰에서 “소비세 인상은 국민이 어차피 쓰지 않는 돈을 세금으로 거둬 정부가 공공 부문 일자리 창출에 쓰는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간 총리의 처방은 시라카와 총재의 눈에 이단으로 비친다. 그는 일시적으로 고통이 따르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부가 시장의 복원력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는 쪽이다. 그는 국제결제은행(BIS) 콘퍼런스 등에서 발표한 글에서 “일본 물가가 2005~2007년에 상승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양적 완화 정책 때문이 아니다”며 “그보다는 일본은행이 비정상적인 양적 완화 처방까지 불사하는 모습을 본 시장 참여자들이 합리적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런 믿음 때문인지 올해 초 그는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다.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을 연 2%로 제시하면서 “그 한도 안에서 물가를 잡겠다는 것(물가안정목표제)이 아니라 그 목표치까지 물가 상승을 용인하겠다(물가상승목표제)”는 원칙을 발표했다. 시장에 중앙은행 의지를 보여주고 반응을 기다리는 전략이다.

프레더릭 미시킨 컬럼비아대 교수는 “시장을 신봉하는 시카고 보이(시카고학파) 다운 처방”이라고 말했다. 시라카와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통화주의자 고(故) 밀턴 프리드먼이 교수로 있던 1977년 미 시카고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간 총리, 초반 주도권 장악
경제 철학·처방이 상극인 두 사람은 올해 1월부터 물밑에서 신경전을 본격적으로 벌이기 시작했다. 간 총리가 재무상에 임명된 이후다. 시민운동가와 비주류로서 정치현장이라는 들판에서 야성을 기른 간 총리가 공개적으로 시라카와 총재를 압박했다. 그는 “디플레이션을 해결하기 위해서 일본은행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최근 10여 년 동안 유지돼 온 일본 정치권의 금기 하나를 깨는 행동이다. 일본 정치인들은 98년 중앙은행법 개정 이후 일본은행에 대한 직접적인 주문을 삼갔다. 간 총리는 비판이 일자 “중앙은행가들도 통념과 관행을 좇다 경제를 악화시킨 책임에서 자유롭다고 아무도 말하지 못할 것”이라고 되받았다.

샌님 시라카와 총재는 괄괄한 간 총리의 공세를 그대로 받아 치지 않고 있다. 소신인 시장주의와 거리가 먼 정책을 채택하며 몸을 낮추고 있다. 그는 양적 완화를 최근 다시 실시했다. 기준금리를 0.1%에서 그대로 유지하면서 시중은행들이 빌려다 쓸 수 있는 자금 풀(당좌예금 한도)을 확대했다. 이는 2006년 3월 이른바 금융통화정책 정상화라는 명목으로 중단했던 양적 완화를 3년 만에 다시 부활시킨 것이다.

시라카와는 또 하나의 파격적인 실험을 이번 주에 단행한다. 일본은행이 직접 기업에 돈을 빌려줄 예정이다. 시중은행이 중간에 나서기는 하지만 사업 내용을 설명해주는 수준에 그친다. 일본은행은 의미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하면 기준금리(연 0.1%)를 적용해 해당 기업에 돈을 빌려준다. 이는 아돌프 히틀러가 1933년 대공황을 치유하기 위해 당시 중앙은행인 제국은행을 동원해 기업에 자금을 제공했던 방식이다. 일본이 관치금융 시대(1937~98년)에 쓰던 방식이기도 하다.

최근 간 총리는 엔화가치 하락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엔화가치 상승→수입 물가 하락→디플레이션 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또 일본은행에 국채 매입을 더 늘리라고 요구했다.

서방 내 일본 경제 전문가인 리처드 베르너 영국 사우스햄튼대 경제학 교수는 중앙SUNDAY와 전화통화에서 “일본은행 사람들은 과거 대장성이 압박하면 겉으론 따르지만 기회를 봐 반격하는 패턴을 보였다”며 “시라카와 총재는 간 총리 지지도가 떨어지는 듯하면 자기 철학과 소신을 드러낼 것”이라고 말했다. 가치를 공유하지 못한 팀워크가 어떤 결말로 이어질지 가늠하게 해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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