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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B조는 IMF 구제금융 받은 나라들의 잔치

중앙선데이 2010.06.13 00:04 170호 26면 지면보기
‘싱크로나이시티(synchronicity)’. 심리학자 카를 융이 만든 용어다. ‘의미 있는 우연의 일치’로 풀이할 수 있다. 그는 “세상에 우연의 일치란 없다”고 주장했다. 우주가 하나의 통일체이기 때문에 시공간과 인과율을 초월해 어떤 일이 동시에 일어날 수 있다고 봤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이 속한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B조 국가들의 조합이 예사롭지 않다. 한국과 그리스·나이지리아·아르헨티나 모두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았거나 그 문턱까지 갔다. 지난달 말 인터넷과 일부 외신에서는 이를 일컬어 ‘IMF 더비(derby·시합)’로 부르기도 했다. 네티즌들 사이에선 “B조의 B가 구제금융을 뜻하는 ‘베일아웃(Bail-out)’을 의미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나이지리아(1986년)·한국(1997년)·아르헨티나(2000년)·그리스(2010년)…우연의 일치?

B조 국가 중 가장 먼저 IMF 도움을 청한 곳은 나이지리아다. 1986년 유가 급락으로 구제금융 일보 직전까지 갔다.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이다. 56년 유전이 발견된 뒤 석유로 먹고살았다. 70년대 들어 아랍 산유국이 생산을 줄이고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면서 유가가 급등했다. 80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터지면서 유가는 배럴당 30달러를 돌파했고 이듬해엔 50달러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오일쇼크’에 따른 세계 경기 침체로 석유 수요가 줄면서 이번엔 유가가 폭락했다. 돈 나올 구석이 없어지자 경제 성장이 멈췄다. 나이지리아는 IMF가 마련한 구조조정 계획을 수용해 강도 높은 긴축재정을 펼쳤다. 현재 1인당 국민소득이 1100달러 수준에 그친다.

다음은 한국이다. 97년 외환 유동성 악화로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다. ‘대마불사’라고 꿈쩍 않을 듯싶었던 대기업들이 부도가 났다. ‘절대 망하지 않을’ 것으로 봤던 은행도 쓰러졌다. 한국 정부는 IMF에서 210억 달러를 받아 급한 불을 껐다. 전 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을 벌이는 등 절치부심한 끝에 4년 만에 IMF 체제를 졸업했다.

아르헨티나는 2000년 3월 IMF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지나친 허리띠 조르기에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국민은 폭동을 일으켰고 경제는 추락했다. 2002년 초에는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다. 2006년 IMF 체제 졸업을 선언했지만 경제는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다. 특히 2008년 가을 글로벌 금융위기가 결정타를 날렸다. 지난해 경제는 2% 뒷걸음질쳤고(경제성장률 -2%), 정규직 일자리만 34만 개가 사라졌다. 물가상승률은 15% 선을 웃돌았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국가 부도 위험도를 나타내는 크레디트디폴트스와프(CDS)는 세계에서 둘째로 높다.

그리스는 올 초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조 추첨을 할 때만 해도 ‘IMF 더비’가 아니었다. 그러나 지난달 재정 악화로 향후 3년 동안 유럽연합(EU·800억 유로)과 IMF(300억 유로)에서 총 1100억 유로(약 161조원)의 구제금융을 지원받기로 했다.

이 국가들이 구제금융을 받고 난 직후의 월드컵 출전 성적은 어땠을까. 네 국가 모두 시원치 않았다. 나이지리아는 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지역 예선도 통과하지 못했다. 한국은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1무2패, 아르헨티나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1승1무1패로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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