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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천안함 출구전략

중앙일보 2010.06.01 19:14 종합 34면 지면보기
3월 26일, 그 금요일 밤 이후 지금까지 줄곧 천안함이었다. 어딜 가도 천안함이었다. 귀를 막아도 소용없었다. 2010년 4월과 5월, 한반도는 수천만 개의 천안함으로 가득했다. 입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두 개씩 천안함을 그려냈다. 다른 얘기는 명함도 내밀지 못했다. 세종시며 4대 강도 천안함 앞엔 ‘꼼짝 마라’였다. 언제는 온 나라에 세종시와 4대 강밖에 없는 듯하더니 천안함 앞엔 꿀 먹은 벙어리였다. 중간지대도 용납이 안 됐다. 천안함 앞엔 인간도 두 종류뿐이었다. 천안함에 동조하거나 안 하거나. 그런 천안함이 파죽지세(破竹之勢)로 오늘, 선거일까지 덮쳤다. 남은 건 하나, 도대체 언제까지 갈 것인가다.



나는 천안함이 이제 신문 1면에 그만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만 나올 때도 됐다고 생각한다. 신문 1면을 두 달 넘게 독차지하는 걸 시기·질투하는 게 아니다. 나는 전쟁 얘기가 싫다. 무섭다. 애써 천안함을 외면한 것도 그래서다. 안에서 치고받는 모습은 더 싫다. 남북이 갈려 싸우는 걸 보는 것도 속 터질 노릇인데 남남(南南) 싸움까지 왜 봐야 하냐 말이다.



그래서 떠오른 게 천안함 출구전략이다. 지금은 경제 용어로 더 유명해졌지만 출구전략은 본래 군사 작전 용어다.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전장에서 발을 빼는 전략이다. 천안함 출구전략의 큰 틀은 경제 출구전략과 비슷하다. 경제는 풀었던 돈을 적절히 회수하는 게 초점이다. 중요한 건 타이밍이다. 늦으면 돈이 거품을 일으킨다. 물가가 오르고 증시·부동산이 요동친다. 너무 서둘러도 안 된다. 경제가 다시 주저앉을 수 있다.



천안함은 그간 토해냈던 거센 담론들을 적절히 풀고 주워 담는 게 초점이다. 역시 타이밍이 중요하다. 늦으면 감정의 골이 깊어져 상처를 치유할 수 없게 된다. 경제와 다른 건 서두를수록 좋다는 점이다. 오늘 선거가 끝나면 내일 당장 시작하는 게 좋다. 마침 핑계거리도 있다. ‘선거 때문이었다’면 여(與)든 야(野)든 슬쩍 넘어가 줄 만하다. ‘큰 공을 이루는 사람은 작은 이해에 연연하지 않는 법(見小利者, 大事不成)’이니.



방법은 여러 가지지만 핵심은 하나다. 경제는 금리인상이다. 돈줄을 죄고 외환 공급을 줄이고 세제 지원을 중단하는 것도 넓게 보면 출구전략이다. 그러나 이미 그런 일을 다했지만 여전히 우리 경제는 출구전략 논란에 싸여있다. 핵심인 금리를 손대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리인상은 그 자체의 효과도 효과지만 선언적 의미가 더 크다. 출구전략의 시작을 만천하에 알리는 신호라서다. 인상 폭은 작아도 괜찮다.



천안함도 마찬가지다. 유엔에 가고, 북한을 압박하고 중국을 설득하는 것도 출구전략이다. 그러나 이렇게 바깥일을 잘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핵심은 우리끼리의 문제, 남남 갈등을 푸는 것이다. 이럴 땐 인사가 묘책이다. 전면 개각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거국 내각이 효과적이다. 인사 폭은 작아도 괜찮다. 누가 어느 자리에 앉느냐도 작은 문제다. 박근혜 주중대사면 어떻고, 손학규 국무총리면 또 어떤가. 정세균 주미대사와 정몽준 외교부 장관을 패키지로 묶는 것도 나쁘지 않다. 차기 대권 후보들을 모두 모아 화합의 큰 판을 짜면 그만이다. 천안함 출구전략의 시작을 만천하에 고(告)하는 것으로 족하다. 국가 안보에 여야가 따로 없다는 얘기는 이번 선거 내내 여당과 청와대가 한 말이다. 거국 내각의 명분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물론 말만큼 쉽지 않을 일이다. 대통령과 여당이 크게 양보해야 하는데 천안함으로 정국의 고삐를 쥔 마당에 내킬 리 없다. 야당도 그간 중무장했던 각종 ‘이즘’과 ‘올로기’의 틀을 벗어야 한다. 여든 야든 탐탁할 리 없다. 그러나 해야 한다. 30만 남파 간첩설에 김정일 밀약설, 낼 모레 선제공격설까지 나오는 판이다. 뺨 때린 놈은 놔두고 맞은 이들끼리 시비가 끝이 없다. 언제까지 천안함이요, 언제까지 남(北)의 잘못으로 자기(南)를 탓하는 일만 되풀이할 건가. 진저리 날 때도 되지 않았는가.



이정재 중앙SUNDAY 경제·산업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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