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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흑색선전

중앙일보 2010.06.01 19:09 종합 35면 지면보기
1970년 9월 칠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위기감에 휩싸였다. 사회주의 정당 연합체인 인민연합(UP)의 후보인 살바도르 아옌데의 당선 가능성 때문이었다. 세계 최초로 선거라는 합법적 방법으로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설 판이었다. 엄청난 흑색선전(黑色宣傳)이 난무했다. ‘아옌데가 승리하면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노예로 러시아에 보낼 수밖에 없을 것’이라거나 ‘아옌데가 당선되면 미국이 칠레 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갈 것’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그럼에도 칠레 국민은 아옌데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흑색선전이 맥을 못 춘 것이다.



선거판에서 네거티브 전략은 적중하면 큰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잘못 휘둘러 흑색선전으로 전락하면 부메랑이 돼 치명적 상처를 안긴다. 1963년 5대 대통령 선거. 군복을 막 벗은 박정희 후보와 윤보선 전 대통령이 격돌했다. 윤 후보가 거물 간첩 황태성 사건을 거론하면서 박 후보의 사상이 의심스럽다고 몰아붙였다. 이 전략은 윤 후보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심지어 그게 패배 요인이란 분석도 있다.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에선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 폭로한 국정원 도청자료가 선거정국을 흔들었다. 그러나 나중에 밝혀진 여론조사 자료에 따르면 유권자들은 노무현 여당 후보에 대한 선호를 바꾸지 않았다. 구태 정치의 표본인 흑색선전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흑색선전의 후유증은 후보 개인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 지역 갈등을 부추기는 흑색선전이 지역감정의 골을 더욱 깊게 했다는 게 정설이다. 1971년 대선 때 ‘호남에서 영남인의 물건을 사지 않기로 했다’는 전단지가 나돌았다. 97년 대선 땐 한술 더 떠 ‘김대중이 되면 경상도 땅은 피바다가 될 것’이라는 등 극단적인 말까지 횡행했다.



이번 6·2 지방선거에서도 흑색선전이라는 선거철 고질병이 어김없이 도졌다. 인신공격성 비방과 음해, 허위사실 유포 등 흑색선전 단속 건수가 200건 가까이에 이른다. 선거일 직전 서울 일부 지역엔 ‘1번 찍으면 전쟁 난다’는 내용의 괴문서까지 살포됐다. 선거판에 흑색선전이 발 붙이지 못하도록 하려면 흑색선전이 안 통한다는 걸 보여주는 길뿐이다. 유권자부터 흑색선전을 일삼은 후보를 오늘 반드시 표로 심판해야 한다. 사법당국도 투표가 끝났다고 어물쩍 넘길 일이 아니다. 끝까지 시시비비를 가려 법의 엄정함을 일깨워야 한다. 선거는 이번이 끝이 아니다.



김남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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