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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대기자의 투데이] 연두회견이 던진 의문

중앙일보 2002.01.16 00:00 종합 6면 지면보기
매일 터지는 게이트 때문에 정신을 못차린다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고백은 충격적이다. 국가 최고지도자는 사정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정신을 차리고 냉철한 이성(理性)으로 국민을 안심시키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마키아벨리가 정치가의 자질로 왜 사자의 용맹과 함께 여우의 교활한 지혜를 꼽았겠는가.





*** 차분히 생각못한 개각?





金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개각의 시기를 묻는 질문에 그렇게 대답하면서 "또 무슨 일이 없는가 해서 개각에 대해 차분히 생각을 못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사고(思考)가 순조롭지 않았다는 말로 들린다. 그렇고 그런 개각이야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지만 나라에 큰 비상사태가 없었던 건 다행이다.





金대통령은 분명히 심신이 피곤해 보였다. 얼굴에는 핏기가 없고 목소리는 갈라지고 힘이 없었다. 기자회견장의 공기는 당연히 무거웠다. 그는 아직도 생각의 정리가 덜 되는지 질문 세개에 대한 답변을 빠뜨렸다가 지적을 받고서야 두개에 답변을 하고 하나는 그냥 넘어갔다.





게이트에 대한 사과로 시작된 기자회견은 두번째 질문에서 맥이 빠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날 아침에 일어나 조간신문을 보고 신승남(愼承男)검찰총장이 밤 사이에 사퇴한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시간적으로 잘 됐다 싶었다. 몇시간 후에 있을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이 문제를 중심으로 많은 질의응답이 오갈 것을 기대했다.





金대통령이 열거한 대로 우리 앞에는 큰 문제들이 많이 쌓여 있다. 경제와 실업이 그렇고 대선.월드컵이 그렇다. 이런 문제의 해결을 주도하는 사람은 대통령이다. 그러나 최측근을 포함한 대통령 주변 사람들의 부정과 비리 연루로 대통령은 국민의 신뢰와 도덕적 권위를 잃었다. 그래서 대통령과 정부의 신뢰와 도덕성 회복이 가장 급하고 중요하다.





그래서 검찰총장의 사퇴로 집약된 모든 게이트의 처리방안이 심층적으로, 속속들이 다뤄졌어야 했다. 민심이 돌아앉고, 사회에 냉소주의와 도덕적 허무주의가 넘쳐 흐르는 현실을 두고 어떻게 국력을 결집해 대선과 월드컵.아시안게임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실업과 주택문제, 중산층과 서민생활을 보장하는 정책을 수행한단 말인가.





金대통령은 기자들의 질문을 받기 전에 읽은 성명과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여러 게이트들의 의미를 축소한다는 인상을 줬다. 지금 전개되는 사건들은 일부 벤처기업의 단순한 비리사건인가. 그리고 거기에 일부 공직자와 금융인, 청와대의 몇몇 현직 직원들이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정도인가.





게이트들의 실체는 일부 벤처의 비리 이상이요, 일부 청와대 직원들의 연루는 혐의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지 않은가. 경찰청과 국정원 간부들의 비리에는 왜 침묵하는가.





그 많은 게이트와 국정원.경찰청 간부들의 일탈(逸脫)은 김대중 정부의 체질과 무관한 것인가. 돈의 여신 앞에서 벌이는 집단광란 같은 엽기적 사건들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은가. 한사람의 기자만이 이 문제를 묻고 후속질문 없이 회견이 끝난 것은 유감이다.





그러나 金대통령의 발언에서 가장 걱정되는 것은 중산층과 서민생활을 직접 챙기겠다는 대목이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도 임기말에 그런 말을 했다. 그리고 우리는 외환위기를 당했다.





경제의 경쟁력, 중산층과 서민생활, 부정부패, 남북관계라는 4대과제 중에서 두번째 것만 직접 챙기면 다른 과제들은 저절로 굴러 가는가. 대통령이 직접 챙기면 장관들은 무엇을 하는가. 우선순위상 굳이 대통령이 직접 챙길 게 있다면 그것은 모든 게이트의 공정한 수사일 것이다. 게이트들을 넘지 않고 다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 왜 언론개혁 문답은 없나





지난해 연두회견에서 金대통령은 언론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비판적인 중앙.조선.동아일보의 숨통을 조였다. 지금 언론개혁은 어떻게 됐는가. 金대통령은 언론과의 전쟁의 전과(戰果)에 만족하는가, 아니면 불만인가. 기자들은 이것을 물어야 했다.





부패척결을 위한 金대통령의 불퇴전의 결의를 환영한다. 그러나 학연.지연 중심 인사가 과거보다 줄었다는 안일한 주장과 공적자금은 앞선 정권의 실정의 산물이라는 "네탓이요"의 설명을 들으면서 이런 의문을 갖는다. "金대통령은 문제의 해결자인가, 문제 그 자체인가."





김영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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