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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문학은 지금 ④ 핀란드 소설가 레나 크론

중앙일보 2010.06.01 01:24 종합 27면 지면보기
한국문학번역원이 지난달 중순 개최한 세계작가축제에 참석한 외국작가 중 핀란드의 여성 소설가 레나 크론(63)이 눈에 띄었다. 핀란드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나라다. 자작나무와 자일리톨, 사우나, 노키아 휴대폰 등이 떠오른다. 월드컵 무대에 한 차례도 서지 못한 비운의 스타 야리 리트마넨도 있다. 하지만 소설로 눈을 돌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장편 『기발한 자살여행』의 아르토 파실린나를 빼면 알려진 작가가 거의 없다. 크론은 베일에 싸인 핀란드 문학의 실체를 보여주는 실력파 작가다.


예술은 결국 놀이와 논리의 교차점이죠

핀란드 작가 레나 크론은 인간의 자연파괴를 경고하는 생태주의자다. 그래선지 “추운 핀란드에서 잘 자라지 않는 꽃들이 서울에서는 곳곳에 피어 있어 너무 부럽다”고 했다. [조용철 기자]
“우리가 현실(reality)이라고 부르는 것은 공유된 꿈(shared dream)에 불과하다” “예술은 결국 놀이(play)와 논리(logic)의 교차점이다.”



예술과 세계에 대한 농익은 시선이 담긴 크론의 발언이다. 그는 이런 바탕 위에 사실과 허구, 과학적 진실과 가정 등을 뒤섞은 독특한 작품을 선보여 왔다. 특히 판타지·SF 등 장르소설 장치를 애용하면서도, 현실과의 접점을 중시한다는 평가다. 국내에는 『펠리칸맨』(골든에이지)이 지난해 번역됐다. 인간세계를 동경한 펠리칸이 사람처럼 말하고 공부하다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보게 보고, 결국 자기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2004년작 『A Dream Death(꿈의 죽음)』에도 그의 개성이 잘 담겨있다. 품격 있게 죽도록 도와주는 회사와 영생불사 방법을 개발하는 회사 사이에서 갈등하는 ‘투잡녀’ 이야기다. 이런 설정을 통해 크론은 영생이라는 개념이 인간에게 위안을 주지만, 진작에 죽은 이들이 우리 곁 어딘가에 늘 함께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참으로 끔찍한 일 아니냐고 묻는다. 서울 성북동의 핀란드 대사관저에서 크론을 만났다. TV 예능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 출연자인 핀란드 여성 따루 살미넨이 통역을 했다.



-핀란드의 국민작가로 불린다.



“40년 가까이 소설을 썼지만 베스트 셀러 작가는 아니다. 핀란드는 인구가 500만 명이다. 도서관이 잘 돼 있어 사람들이 책을 사기보다 빌려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선지 소설이 많이 팔리지는 않는다. 대표작 『타이나론』이 7000부 정도 팔렸다. 방송에 가끔 나가 얼굴은 많이 알려진 편이다. 내 작품은 20여 개국에 소개됐다.”



-『타이나론』은 어떤 작품인가.



“편지 형식의 소설이다. 편지는 주인공이 곤충의 도시로 여행을 떠나 겪은 내용을 미지의 수신인에게 적어 보낸 것이다. 도시의 이름이 타이나론이다. 사람 크기의 곤충들이 산다. 여행자는 곤충이 변신하고 겨울잠을 자는 모습을 보며 당황한다. 사람도 곤충처럼 끊임 없이 변하는 상태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캐나다의 장르소설 인터넷 사이트인 ‘SF Site(www.sfsite.com)’에 따르면 타이나론의 주민인 곤충들은 몸 하나 들어가면 딱 맞을 크기의 개인 집을 어딜 가나 지고 다녀야 하는 운명이다. 또 바로 이 집 때문에 음성이 공명하는 바람에 서로 의사소통이 힘든 상태다. 어쩐지 인간 세상에 대한 은유로 읽힌다.



-『펠리칸맨』도 주인공 펠리칸이 말을 하고 직업도 갖는다. 생물의 의인화를 즐기는 것 같다.



“사람들은 다른 생물 종(種)들의 재능과 감각이 인간보다 뛰어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지금 앉아 있는 소파에도 의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그런 작품이 나오는 것 같다.”



한국문학번역원은 레나 크론, 한국의 황석영·김영하씨가 참가하는 작가의 만남 행사를 9일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서 연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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