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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주사 세게 맞은 허정무 “개인보다 팀 플레이가 먼저”

중앙일보 2010.06.01 01:17 종합 28면 지면보기
30일 벨라루스와의 평가전은 뼈아팠다. 축구 대표팀이 자신감을 쌓아야 할 국면에서 당한 뜻밖의 0-1 패배였다. 지난 2월 동아시아컵 일본전(3-1승)을 시작으로 코트디부아르전(2-0승)-에콰도르전(2-0승)-한·일전(2-0승)으로 이어진 4연승 행진도 마감했다.


벨라루스 평가전 뼈아픈 0-1

독일 출신의 벨라루스 감독 베른트 슈탕게는 “주전 선수를 빼고도 한국을 압도했다. 한국은 날카롭지 못했고 월드컵에서는 이보다 더 험난한 과정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북한-그리스전을 지켜본 후 한국 경기를 관전한 그리스 기자도 “한국은 기대했던 것처럼 빠르지 않았다. 두 경기만 놓고 보면 북한이 훨씬 낫다. 스트라이커 정대세의 파괴력도 한 수 위”라고 평가했다.



허정무 축구 대표팀 감독이 지난달 29일(한국시간) 전훈지인 오스트리아 노이슈티프트 훈련장에서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허 감독은 1일 남아공 월드컵에 출전하 는 대표팀 최종 엔트리 23명의 명단을 발표할 예정이다. [노이슈티프트=김민규 기자]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완패한 허정무 감독은 “만족할 만한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에겐 좋은 공부가 됐다”고 깨끗이 패배를 시인하고 선수단 버스에 올라탔다. 지는 걸 못 견디는 젊은 시절의 그였다면 당장 불호령이 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한 시간 남짓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는 동안 그는 입술을 꾹 다물고 마음을 다스렸다.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비로소 입을 열었다. “좋은 보약을 먹었다고 생각하자. 자만하지 말자. 개인보다는 팀플레이를 우선할 때”라고 목소리를 한 톤 낮춰 자근자근 태극전사들을 설득하고 보듬었다.



주장 박지성은 놀라울 만큼 의연했다. 경기에 지면 인터뷰는 피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박지성은 승리한 날과 조금도 다름없이 조리 있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우리 문제점을 파악할 기회가 생겨서 다행이다. 모든 경기를 성공적으로 해내는 팀은 세상에 없다.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장점이 있다.” 평가전 패배 따위에 기죽을 필요는 없다는 듯 담담한 표정이었다. 박지성은 “맨유가 강한 것은 패배를 한 뒤에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예전의 기량을 회복하기 때문”이라고 자서전을 통해 밝힌 바 있다.



대표팀은 이튿날 아침 식사를 평소보다 한 시간 늦췄다. 경기 다음 날 늘 하던 회복훈련도 취소했다. 훈련보다는 휴식을 취하며 정신적 여유를 되찾는 게 급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원재 축구협회 미디어 담당관은 “허 감독이 주장 박지성과 면담한 뒤 이같이 결정했다”고 말했다.



대표팀은 이날 숙소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해발 2600m의 슈투바이 빙하에 올라가 점심을 먹었다. 스트레스도 풀고 고지대가 어떤지 미리 느껴보자는 취지였다.



대표팀이 완패를 당한 후 휴식을 통해 반격의 기운을 재충전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월 동아시아컵에서 중국에 0-3으로 패한 뒤 허 감독은 저녁 식사 후 피아노 연주 능력이 있는 스태프에게 연주를 부탁했다. 식당에는 ‘엘리제를 위하여’가 울려 퍼졌다. 경기에 패한 후 질책을 당하는 데 익숙했던 선수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선수단은 다음 경기인 한·일전에서 3-1로 쾌승했다.



대표팀은 31일 하루를 쉰 뒤 1일부터 스페인과 마지막 평가전에 대비한 훈련을 재개한다.



글=노이슈티프트(오스트리아)=이해준 기자

사진=노이슈티프트=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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