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민을 위해 봉사할 내 남편 … “뽑아 주십시오”

중앙일보 2010.06.01 00:10 6면 지면보기
6.2지방선거 내일이면 결전의 날이다. 그동안 출마자는 물론이고 후보 가족들도 후보와 똑같이 지역구를 누비며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노력했다. 이제 선택만 남았다. 천안·아산 시장 후보 가족들이 유권자에게 보내는 마지막 호소문을 싣는다. 형식은 제각각 이지만 결전을 앞둔 가족들의 절절함이 느껴진다. 한창대 친박연합 아산시장 후보는 자료요청에 응하지 않아 제외했다.


천안·아산 시장 후보 가족들의 마지막 호소

글=장찬우·강태우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부인 최무자가 말하는 내 남편은

비리 없는 깨끗한 사람




대학 1학년 때 남편을 만났습니다. 반듯하고 책임감 있는 성품과 따뜻한 마음씨에 이끌렸습니다. 장손인 그가 부담스러웠지만 편찮으시던 어머니께 잘해드리는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간이 안 좋으신 어머니께선 바나나를 좋아하셨습니다. 어느 날 천안으로 어머니를 뵈러 오는 길에 돈이 모자라 애지중지하던 ROTC반지를 맡기고 바나나를 사드린 것을 보고 “정말 괜찮은 사람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은 학창시절 공부만 잘하는 샌님이 아니라 중·고등학교 내내 서울 용산고 테니스 선수를 지내는 등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모두 잘하는 요즘 말하는 ‘엄친아’였습니다. 그 당시 구하기가 어려웠던 클래식과 팝송 레코드도 많이 갖고 있어 따뜻한 효심과 함께 지·덕·체를 갖춘 사람이구나 싶어 결혼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결혼한지 7년. 천안에서 사업을 시작하면서 새마을지회장을 맡은 것이 계기가 되어 정치에 발을 들여 놓게 된 남편. 20여년 동안 남편 곁을 떠나거나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을 보며 속으로만 삭이는 그를 옆에서 지켜보며 돌아서 눈물 흘린 적도 많았습니다.



남편은 지난 8년간 새벽 5시에 시작해 퇴근 후에도 그날 일을 정리 기록하고 다음 날을 준비한 메모를 머리맡에 챙겨두고서야 자정이 넘어 잠자리에 드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때로는 고단하지 않냐고 묻자 “즐겁게 일하면 힘든 줄 모른다”고만 했습니다. 주위에서는 “어떻게 내조를 하길래 체력과 기억력이 저렇게 좋으냐”고 묻지만 “규칙적인 생활습관과 건강한 체력, 강인한 정신력이죠”라는 말 밖에는 드릴 말이 없었습니다.



부정하지 않고 깨끗한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밑받침 해 주신 시부모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남편의 명함을 주고 인사를 할 때 따뜻하게 손잡아 주고 용기를 주시는 분들이 많아 힘이 납니다. 이번 선거는 흑색선전과 유언비어가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상대 후보의 지나친 공격에 남편과 우리 가족 역시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지난 8년간 천안을 발전시킨 남편의 공적을 좋게 평가하는 분들과 비리에도 단 한번 연루된 적 없고 천안을 위해 헌신한 점을 시민들이 꼭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비방을 통해 이득을 얻기 보다는 모든 후보가 정책에 기반해서 천안 발전을 위해 누가 필요한지 검증 받는 선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동생 이규설이 말하는 우리 형은

욕심을 버린 올곧은 사람




나이 차이가 많아 형님과 함께한 추억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주 어릴 때 형님이 자전거를 태워준 것이 무척 신난 기억이 있습니다. 집을 가려면 대로변에서 높은 언덕길을 넘어가는 길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형님이 저를 자전거에 태워 이 고개를 넘어가는데 가파른 경사여서 내려서 형님이 자전거를 끌고 갔습니다. 그 때 저는 자전거 안장을 슬며시 잡아당기며 장난을 쳤습니다. 형님은 느낌이 왔는지 뒤를 돌아보면서 말했습니다. “비록 너는 장난으로 살며시 잡아당겼는지 모르지만 상대방은 그 힘에 두배, 세배의 힘을 느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반대로 너의 작은 힘으로 그 자전거를 밀어주면 그 사람은 두배, 세배의 힘을 덜면서 고개를 넘을 수 있고 내리막길을 편히 갈 수 있다. 올라가는데 힘들게 한다면 내리막에서는 그 사람은 같이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혼자 걸어 갈 수밖에 없다”는 형님의 말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제가 중학교 때 형님은 학생운동을 했고 그 때 형님을 보면서 대학생들이 왜 학생운동을 하는지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선생님으로부터 광주 사태의 진실과 군사정권의 탄압을 간접적으로 들으면서 형님을 더욱 이해하게 됐습니다. 자식에게는 어려서부터 진실되게 살아가라 교육을 시키면서 자신의 꿈과 욕심을 위해 진정한 진실을 포장하는 여러 높으신 분들은 진정 누구를 위한 삶을 사는지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형님의 용기와 투지를 존경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형님도 이러한 정신을 끝까지 지키리라 믿고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형님도 말했듯이 욕심을 버리고 어려운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고 그 사람들이 우리 주위 사람과 같이 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청춘을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으로 보낸 형님을 어린 나이부터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런 기억이 지금에서야 꽃망울을 피울 시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동안 힘든 역경을 헤쳐 오면서 쌓아온 경험과 가치관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형님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부모님은 힘들어도 우리들을 떳떳하게 키운 것처럼 어려운 사람들 항상 둘러보고 형식과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떳떳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규희 후보는 본인의 뜻에 따라 동생이 원고를 보내왔다.




부인 정혜정이 말하는 내 남편은

배려심 많은 성실한 사람




이른 새벽, 어깨띠를 두르고 나서는 남편이 뒷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코끝이 찡합니다. 아쉬운 소리 한 번 못하는 꼿꼿한 성품이었는데 요즘은 꽤나 너스레도 떨 줄 압니다.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하는 시민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뛰어나가면서도 힘든 내색, 귀찮은 내색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신이 나고 광채가 납니다. 고된 행군에 지치고 힘들지는 않은지. 시계바늘이 하루를 훌쩍 넘기고서야 돌아오는 발걸음이 초조하지는 않을까. 그래도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길을 가는 남편을 너무 존경합니다.



남편과 처음 만난 건 29년 전입니다. 영어학원에 등록해 수강하고 있었는데 옆에 차돌 같은 청년이 대시를 하는 게 아닙니까. 얼굴도 잘생겼고, 성실해 보이는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하지만 키가 크다는 이유로 시댁에서 반대가 강해 3년 동안 남편과 함께 결혼승낙을 받기 위해 노력해야 했습니다.



어느덧 반평생을 살았는데, 남편의 머리 위에 서리가 희끗희끗 내렸습니다. 탄탄하던 공직생활을 정리하겠다고 하던 날, 말 없이 남편의 결정을 존중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인정받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그의 마음을 말 없이 어루만졌습니다. 제 손길처럼 유권자들이 남편의 진심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오늘 밤, 따뜻한 물을 받아 남편의 발을 씻겨드리고 싶습니다.



선거운동을 하면서 많은 유권자들, 아니 이웃들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대학에서 생활하다 보니 많은 계층과 교류하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안식년을 신청하고 1년 동안 남편을 챙기고 선거를 도우면서 주위에는 좋은 친구들이 너무도 많이 생겼습니다.



반면 유독 유권자들의 냉소가 어느 때보다도 심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전개되면서 몇몇 선수들만 레이스를 펼치는 기분입니다. 그만큼 정치에, 선거에 식상해 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다 최근 불거진 공무원들의 관권선거는 사회적으로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수십 년 동안 주위의 존경을 받으며 살아온 공무원과 그 가족들이 받을 충격과 상처를 받지 않을까 안타깝습니다. 이번 선거를 통해 삶이 고단한 시민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거칠지만 따뜻한 그들의 손을 마주잡을 수 있었던 것도 이번 선거에서 얻었던 보람입니다. 그들의 따뜻함을, 진솔함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부인 이명숙이 말하는 내 남편은

변함없이 늘 한결 같은 사람




남편 임좌순은 37년 동안 공직생활을 한 사람입니다. 9급에서 장관급까지 오르기 위해 남편이 희생한 건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입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물론, 방학 기간 중에도 그 흔한 가족 여행 한 번 제대로 못 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와 아이들은 남편이 고맙습니다. 아이들은 아빠가 나오는 토론 프로그램이나 뉴스를 보면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아빠를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잦은 야근으로 항상 입술이 부르터 있었지만 가족들에게 자상했고, 우리가 그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임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남편은 장모에게 일찍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를 모시듯 했습니다. 이런 사람과 평생을 같이 한다는 건 제겐 행운 같습니다.



“아이들 입학식도 졸업식도 모르는 무심한 남편이라고 했던 말 취소할게요. 임좌순씨.”



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 자리를 내려놓고 아름다운 퇴장을 보여준 남편입니다. 툭 건드리면 각종 선거법 조항이 튀어 나오는 ‘걸어 다니는 선거법’으로 불리던 남편입니다. 내무부 소관이던 선거 업무를 선관위로 가져가서 내무부 사람들에게 공적1호로 지목되던 남편입니다.



1994년 깨끗한 선거문화를 만들기 위해 정치인들을 설득해 통합선거법을 만든 남편입니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손맛을 그리워하고 고향을 늘 걱정하는 남편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외손녀 나령이만 보면 훌쩍 안기부터 하는 남편입니다. 대학 강의를 위해 아직도 모르는 게 많다며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남편입니다. 30년을 서로 바라보며 살아온 세월 내내 남편이 제게 보여준 모습입니다.



남편이 아산 시장 선거에 출마하겠노라 한 건 고향에 대한 애틋함 때문일 것입니다. 말단 공무원부터 한 길만 달려온 남편은 1993년에 홍조근정훈장을 받았습니다. 훈장을 받던 날 남편은 제일 먼저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가 이걸 받으셔야 한다고, 다 어머니의 공”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산 염티 쌍죽리의 작은 마을과 거기 살던 한 촌부의 삶은, 남편이 바쁜 생활 중에 되돌아가곤 하던 마음의 고향입니다. 남편이 그간 쌓아온 능력을 아산에 모두 쏟고 싶은 것은 고생만 시킨 어머니에 대한 죄스러움을 고향에 대신 갚고 싶은 마음에서 입니다. 어머니가 그리워 고향을 찾아온 남편 임좌순을 부탁합니다.






부인 박현우가 말하는 내 남편은

불 같은 열정을 가진 사람




남편과 저는 21살에 만났습니다. 그로부터 23년 동안 가장 가까이에서 그를 지켜보면서 그의 됨됨이와 그의 철학, 그리고 인간적인 고뇌와 아픔을 나눈 동반자로서 이 사람이 아산시장의 가장 적임자임을 이제부터 감히 하고자 합니다.



저는 정치와 사회현상에 대해서 관심은 많지만 실제로 앞장서는 성격이 아닙니다. 우리의 정치 현실이 고통과 고난이 동반되는 길이기에 그 길을 가는 남편이 서운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마음이 따뜻하고 성정이 곧고 불 같은 열정을 품고 있는 남편이 참 잘할 것이라는 자부심을 늘 지니고 있습니다.



저희가 92년 4월에 결혼을 했는데 그 해 여름에 친정어머니께서 암 수술을 하셨습니다. 장성한 자식은 저 밖에 없었고 아버지께서도 곁에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늘 어머니 곁에서 병간호를 해야 했습니다.



저희가 사는 곳은 서울이었고 친정은 경남 진주였는데 천리 길 밖에 있는 남편 외에는 마음으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남편은 매주 주말에 바쁜 일과를 마치자마자 진주로 내려와 주었습니다. (그 때는 5시간 이상이 걸리던 때였습니다) 손수 장모의 머리를 감겨드리고 손발톱을 깎아드리고 온갖 허드렛일들을 다 해주고 지쳐있는 저에게 위안을 주며 한결같은 마음으로 곁을 지켜주었습니다.



남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소신을 버리지 않을 사람입니다. 연대의 틀을 깨고 동료를 배신하고 상처를 주지 않을 것입니다. 작은 것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큰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강한 기운을 지니고 있는 사람입니다.



좋을 때는 누구나 너그러울 수 있으며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과 시련이 닥친 상황에서 꿋꿋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철학과 소신을 지키며 곁에 있는 사람들을 배려하며 지켜나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의 시기를 보냈던 남편의 곁에서 한결같은 그의 따뜻함과 너그러움과 의지를 보면서 더욱 깊은 믿음으로 그가 가고자 하는 길에 기꺼이 동반자가 되고자 미약한 힘을 보태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그저 시장에 당선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좋은 시장 따뜻한 시장이 되어서 시민들이 그로 인해 삶의 희망을 얻고 용기를 얻고 위안을 얻고 행복하게 잘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는 훌륭한 시장이 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의논하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소통하는 젊은 시장후보에게 지지를 부탁 합니다. 감사합니다.






부인 하연훈이 말하는 내 남편은

평생 욕심 없이 살아온 사람




러시아의 역사적인 소설가 톨스토이는 “욕심이 작으면 작을수록 인생은 행복하다. 이 말은 낡았지만 결코 모든 사람이 다 안다고는 할 수 없는 진리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남편인 강태봉 후보가 행복하게 정치할 수 있는 원천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시어머니 말씀처럼 어려서부터 남한테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더 즐겼던 그였기에 청렴함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혼생활 35년을 돌아보면 서운함도 없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아산시민과 충남도민을 위한다’는 정치에만 몰두하느라 늘 바빴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남편과 살아오며 타인과 함께하는 삶, 이웃과 함께 나누는 식탁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그 시간을 통해서 저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습니다.



좀 더 멋지고 그릇이 큰 사람들과 어울려야 더 큰일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냐 하고 염려하는 저에게 남편은 “사람은 장단점이 다 있다. 단점이 많은 사람이라도 그 사람을 보며 배울 점이 꼭 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얘기를 듣는 것이 정치가의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모든 사람들을 아우르고 통합하는 포용력과 이해심을 가진 남편을 만들었으며, 평생 정치생활의 가장 큰 자산이 되었다고 확신합니다.



남편이 우유부단하게 보인다는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남편을 잘 모르고 하시는 말씀 입니다. 그를 가까이서 지켜 본 지인들은 그의 세심하고 꼼꼼한 일 처리와 명철한 통찰력, 현명한 판단력에 혀를 내두르곤 했습니다. 다른 후보들처럼 스타 같이 멋진 외모나 재치 있는 말솜씨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진정으로 시민들을 위하는 정치를 할 사람입니다.



남편은 그 어느 후보보다도 아산을 사랑하고 평생 동안 많은 봉사를 하며 아산 시민들 곁에서 아산을 지켜온 사람입니다. 지나가는 길에서, 시장 가는 길에서 시민 여러분의 말소리에 귀 기울이고, 밤새워 그 이야기만 되새기는, 진정 아산시민을 사랑하는 여러분들의 일꾼입니다. 많은 훌륭하신 후보님들 속에서 강태봉 후보가 시장이 되어야만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존경하는 아산시민 여러분께서 부탁 드립니다. 아산의 미래를 이끌어 나가고 행복을 가져다 줄 진정한 동반자를 선택해주십시오. 언제나 희망, 기쁨, 여유가 함께하는 사랑이 가득한 행복한 가정이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부인 황혜경이 말하는 내 남편은

신뢰와 원칙을 지킨 사람




동훈 아빠!



드디어 내일이면 당신의 10년을 평가 받게 되네요. 수능시험 하루 앞둔 수능생의 심정이 이랬을까요?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으니 어떤 결과가 나오든 우리 받아들여요. 충정으로 똘똘 뭉친 운동원들과 함께, 정말 원 없이 행복하게 즐긴 13일간이었잖아요.



“아무래도 아산에 내려가야 할 거 같은데, 당신 생각은 어때?”



10년 전 당신이 그리 물었을 때 마치 각오한 사람처럼 흔쾌히 그러라고 답했죠. 당신을 믿었기 때문이에요. 당신이 청와대 있을 때 밤낮없이 대통령 일정에 쫓아다니는 걸 보면서 얼마나 외롭고 속상했는지 몰라요.



그런 야속한 당신이었지만 대통령 순방 때 국가를 위해 미친 듯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박근혜 대통령 경선캠프 충청 대표 특보로 1년 반을 자신의 돈을 들여가며 여의도로 출퇴근하는 모습을 보면서, 고향에 가진 거 없이 내려와 자리 잡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산포럼을 유례없이 정착시켜 가는 모습을 보면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날치기공천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죠. 온갖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지켜온 당인데...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으로 1위를 한 당신을 어떻게 배제할 수 있나.



당신의 10년 세월을 그 누구보다 잘 알기에, 당신이 10일 동안 단식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서서히 투사가 되어 갔어요. 견디기 힘든 시간들이었지만 당신을 찾아와 정의를 바로 세워달라며 눈물짓던 시민들이 큰 힘이 되었어요. 그분들을 결코 잊지 못할 거예요.



여보! 그동안 너무 애썼어요. 우리 아들에게 당당한 아빠가 되어 주어 고마워요. 아산을 세계적인 도시로, 전국 최고수준의 교육도시로 만들겠다는 당신의 꿈이 반드시 이루어 질 거라 믿어요. 진정 뜻있는 시민들의 투표를 통해 반드시 정의롭고 풍요로운 아산이 열릴 거라 믿어요. 아산이 정말 달라질 거라 확신해요. 기도할게요.



※이건영 후보 부인 황혜경씨는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글을 보내왔다. 후보 부인이 아니라 한 남자의 아내로 진솔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요청이 있었다.






부인 최혜경이 말하는 내 남편은

희생을 마다하지 않을 사람




국가정보원이라는 특수성을 지닌 직업 때문인지 처음 만났을 때는 사실 조금은 무섭기도 하고 조심스러웠습니다. 시어머니께서 중매를 하셨기에 내심 믿는바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1982년) 23살이었던 나는 말문이 쉽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나의 입장을 알았는지 남편은 가벼운 유머로 어색한 분위기를 지워나갔고 밑도 끝도 없는 질문에도 잘 정리해 대답해주었습니다. 상대를 배려해 진지하고 차분하게 대화를 이끌어 가는 모습에서 나의 미래가 희망적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남편의 공직 30여 년 동안 나는 남편의 바깥일을 거의 묻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업무가 무엇인지는 자세히는 몰라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고향인 아산(온양)에 오갈 때 마다 평소 없던 말이 많아졌습니다. 아산의 유래, 문화, 역사적인 인물들, 그리고 친구들과 공부하고 뛰어 논 옛 장소와 추억, 아산의 옛 풍광 등을 장황하게 늘어놓았습니다. 어떤 때는 “누구는 고향이 없나, 자기 고향만 좋은가?”라고 퉁퉁거리기도 했지만 나는 “언젠가는 아산에 와서 살겠구나” 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남편이 아산시장에 출마 한다고 했을 때 저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했습니다.



고향인 아산을 아끼고 사랑하는 남편의 마음도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아산과 관련된 숱한 자료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과 준비로만 시장이 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정원에서의 30여 년의 경륜, 특히 국내외의 경제, 정보 분야, 행정을 두루 경험하고 리더십 등의 능력을 고루 갖추었다고 믿기에 아산시장으로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습니다.



아산시장으로의 출마를 결심하고, 남편은 아산시 구석구석을 두 바퀴 이상을 돌며 시민과 아산발전을 논의했습니다. 잠자리도 거의 사무실이었습니다. 집에서 잔 것은 한 손으로 세어 꼽을 수 있습니다. 남편이 아산시장이 된다면 이보다 더 바쁘게, 더 열심히, 더 강렬하게 아산을 이끌어 나갈 것으로 믿습니다. 일을 즐기고 봉사와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 사랑하는 고향과 시민을 위해 일하는 것처럼 보람되고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요? 남편이 아산시장이 되면 저는 아산시민들을 상대로 남편반환청구를 미리 준비할 예정입니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