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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는 선거 얘기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허요 밥 묵는 것도 눈치봐야 쓴 게”

중앙일보 2010.05.31 01:25 종합 4면 지면보기
6.2지방선거 29일 정오쯤 전남 신안군 임자면 전장포의 ‘깡다리(강달어) 축제’ 장. 축제 개막을 2시간30분 앞두고 관광객이 삼삼오오 몰려들기 시작했다. 축제장 메인 무대를 중심으로 전장포 부녀회·선주협회, 임자면 여성단체 등에서 설치한 천막마다 깡다리 전·튀김, 무침을 만드는 냄새와 소리로 요란스럽다. 요즘 제철인 깡다리는 민어과의 바닷물고기로 황석어(黃石魚)라고도 불린다.


‘돈 선거’ 홍역 치렀던 전남 신안군 임자도 가보니

천일염과 각종 젓갈을 파는 판매장에 군수·기초의원 후보들이 잇따라 모습을 드러냈다. 지방선거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으나 이곳에선 후보들을 대하는 모습이 다른 지역과 달리 생경스럽다. 인사를 마친 후보들도 바삐 자리를 떴다. “오 메, 인자는 선거 이야기만 들어도 가심(가슴)이 철렁허∼요. 요샌 밥 묵는 것도 눈치를 봐야 쓴 게.” “금 메, 50배를 물린당께 당최 가늠이 안 된단 말이 씨. 옛날 같으면 진즉에 쇠주 몇 잔 걸쳤을 것인디, 참말로 시상(세상) 많이 변해 부러 꾸마∼잉.” 축제장 주변에서 만난 주민들 사이에선 이 같은 대화가 오갔다.



인구 3726명의 임자도는 선거를 4일 앞두고 평온해 보였다. 하지만 ‘선거’ 이야기만 꺼내면 주민들은 경직됐고 고개를 숙였다. 지난 1월 농협조합장 ‘돈 선거’의 홍역을 치른 탓이다. 당시 섬 주민의 3분의 1인 조합원 1000여 명이 후보들에게 금품이나 접대를 받은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이후 모두 60여 명이 입건 또는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떠도는 ‘과태료 50배 괴담’이 그대로 주민 생활 속에 회자되고 있었다. 김성심(58·여) 전장포 부녀회장은 선거 이야기를 꺼내자 손사래부터 쳤다. “그땐 주민들이 몰라서 그랬지만 지금은 절대 그런 일 없다”고 했다.



선거 때마다 넘쳐나던 식당에도 손님 찾기가 힘들었다.



선착장 부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45)씨는 “오늘 연설회가 두 번 열렸다. 과거 선거 땐 식당에서 술도 마시며 왁자지껄했는데 요즘은 손님이 거의 없다. 선거철에 오해 받기 싫어 섬 안쪽 주민들은 아예 식당에 오려고 하지도 않는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사람들이 모이는 시장에서조차 ‘불법선거 주의보’는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젓갈 판매장에서 만난 정정순(52·여)씨는 “돈 선거는 주민들에게 수치다. 조합장 선거는 곪았던 고름이 터진 격이다. 차라리 본보기로 잘 됐다”고 말했다. 금품수수 두려움에 대한 과잉반응으로 일부 농민들은 선거 불감증을 보이기도 했다. 밭에서 농사일에 한창이던 박모(35)씨는 “돈 선거가 동네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이젠 돈을 줘도 (주민들이) 무서워서 안 받을 것이다. 개인적으론 누가 되든 상관없다”고 심드렁해 했다.



물론 일부 불만도 있었다. 조합장 선거 부정이 지나치게 확대됐다는 것이다. 정범진(61)씨는 “조합장 돈 선거는 언론에 알려진 것과 달리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현지 분위기가 이러다 보니 부정선거를 감시하는 선거관리위원회는 느긋한 표정이다. 신안군선관위 김효경 지도계장은 “‘과태료 부과액이 상당할 것’이라는 말이 돌면서 더욱 조심하는 분위기다”며 “단속을 나가도 예전보단 (불법 행위가) 덜 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임자도=유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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