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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대관령의 중공군 (100) 미군의 단호한 대응

중앙일보 2010.05.31 00:33 종합 16면 지면보기
순간의 판단이 많은 것을 좌우하는 게 전장이다. 중요한 때에 판단을 제대로 내리지 못하면 많은 것을 잃는다. 전선의 수많은 병사가 목숨을 잃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장비와 무기를 빼앗긴다.


“동부전선 뚫린다” 미 3사단 전격 투입 … 1만7000명 하루 반 새 250㎞ ‘기적의 행군’

그러나 최적의 시점에 정확한 판단을 내리면 손실은 많이 줄어든다. 중공군이 동부 전선의 국군 7사단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물밀 듯이 쳐들어오는 시점에 미군 지휘부는 아주 중요하고, 기민(機敏)한 판단을 했다.



1951년 5월의 중공군 대공세에서 국군은 초반에 참담하게 무너졌다. 그 점은 뒤에서 더 서술할 생각이다. 그러나 그 중요하면서 긴박했던 순간에 미군의 전략적인 기동(機動)이 있었다. 이는 초반의 패배를 결정적으로 만회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경기도 광주에서 강원도 홍천까지. 미군 1개 사단이 이 먼 길을 따라 움직였다. 서쪽의 경기도 광주에서 미8군 사령관 제임스 밴플리트 장군은 8군 예하의 예비부대였던 미 3사단을 이동시켰다. 이는 전선에 닥친 불리한 상황과 그것이 몰고 올 여파에 대비하기 위해 내린 의미 있는 부대 이동이었다.



미 3사단은 기적과 같은 기동력을 보였다. 광주~홍천은 약 250㎞다. 1만7000명의 병력이 전차와 야포, 그리고 사단을 받쳐주는 각종 중장비를 이끌고 좁고 험한 길을 따라 하루 반 만에 그 거리를 주파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들은 해냈다.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움직여 무너지고 있던 전선으로 달려온 것이다. 더구나 밤에는 움직이기 싫어하는 미군이 아니었던가.



트럭은 1000대 정도였다. 다행히 미군은 부대원 대부분이 운전할 줄 알았다. 밤낮없이 운전석에 교대로 걸터앉아 트럭을 몰면서 길을 재촉했다. 그들은 아군의 전선이 전면적으로 붕괴할 때 전장에 도착했다.



그들은 두 갈래로 부대를 나눴다. 하나는 홍천에 도착해 미 2사단을 지원했고, 다른 한쪽은 하진부리로 향해 무너진 3군단의 서부 지역을 방어했다. 미 3사단이 급히 움직여 전선에 도착한 것에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당시 아군이 적군에게 밀린 형태는 포켓, 즉 주머니 모양이었다. 미 10군단의 미군 2사단 방어지역과 내가 이끄는 국군 1군단이 서쪽과 동쪽의 주머니 입구의 양쪽이라면, 가운데의 국군 7사단과 3군단 방어지역은 아래로 축 처진 주머니의 안쪽에 비유할 수 있다.



막대한 병력을 동원한 중공군은 이미 주머니 안쪽 깊숙한 곳으로 내려와 있었다. 그 주머니 입구와 가장자리가 뚫리면 중공군은 동쪽의 대관령을 넘어 강릉을 점령할 수 있었고, 서쪽으로는 하진부리로 내려간 뒤 서쪽을 겨냥해 진출할 수 있었다.



그 주머니 안쪽의 재봉선을 유지하는 게 과제였다. 미 2사단이 서쪽의 주머니 재봉선을 맡고, 국군 1군단이 동쪽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주머니 틈새를 막아야 했다. 그러나 중공군의 공세가 너무 강했다.



배경 사진은 눈이 쌓인 고지 위로 미군들이 이동하는 모습. 미 3사단의 장거리 기동과 지원에 힘입어 미 2사단은 ‘벙커고지 전투’에서 중공군의 공세를 성공적으로 저지함으로써 향후 반격의 토대를 마련했다. [미 국립문서기록보관청]
현장에 있던 미 2사단과 국군 1군단을 받쳐줄 증원군이 필요했던 것이다. 밴플리트 장군은 미8군의 강력한 예비인 미 3사단을 급히 움직여, 자칫 구멍이 뚫릴지도 모를 이 포켓형 전선에 과감하게 투입한 것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차전으로 과감한 돌파를 시도했던 명장 조지 패튼의 휘하에서 3군단을 이끌고 과감한 보병전술을 구사했던 명장이었다. 그는 휘청거리는 동부전선을 지탱하는 데 더 이상 주저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는 나중에 서술하겠지만, ‘밴플리트 포탄량’이라는 조어(造語)를 만들어 낸 사람이다. 그는 적군을 꺾기 위해 모든 힘을 쏟아 붓는 스타일이었다. 그는 미 8군 사령관으로 한국전쟁을 지휘하면서 워낙 많은 포탄을 소모했다. 그러자 워싱턴 정가는 그의 과감하고 단호한 대응을 보면서 ‘밴플리트 포탄량’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때 그가 그랬다. 중공군은 어두운 밤, 피리와 꽹과리로 상대를 교란하는 기동 전술을 펴면서 늘 아군의 의표를 찔렀다. 그러나 미군은 막대한 물량과 시스템, 뛰어난 기동성으로 적을 혼란으로 몰아넣는 정공법을 선보인 것이다.



중공군은 포켓 안으로 깊숙이 들어와 아군의 후방을 교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주머니의 가장자리는 튼튼한 박음질로 다져지고 있었다. 미 2사단은 유명한 ‘벙커 고지’에 거점을 형성하면서 미 3사단의 지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국군 3군단이 무너진 지역으로 종심을 길게 파고들어온 중공군의 동쪽으로는 국군 1군단과 다른 한 갈래로 나뉘어 전선에 도착한 미 3사단의 일부가 반격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전황은 어떻게 번질지 전망하기 어려웠다. 중공군은 막바지 대규모 공세에 총력을 기울였다. 가끔 보급 부족에 허덕이는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워낙 많은 수의 병력이 전선을 넘어오고 있었다. 국군은 주머니 바닥까지 밀리고 있었다. 그 무너지는 모습은 참담했다.



백선엽 장군

정리=유광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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