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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 흡연 ‘이중 덫’ 걸렸다

중앙일보 2010.05.31 00:30 종합 18면 지면보기
#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권모(26)씨는 여중생 때 담배를 배워 요즘도 하루 7~10개비씩 피운다. 고교 시절에는 예쁜 디자인의 담배가 나올 때면 친구들과 사모으기 경쟁도 했다. 그는 “초콜릿이나 바닐라 같은 다양한 맛과 향이 담긴 수입담배가 나오면 돈을 모아 구입한 뒤 나눠 피웠다”고 말했다. 얼마 전부터는 건강에 덜 해로울 것 같은 박하향 국산 담배로 바꿨다. 그러나 목이 아프고 숨이 차곤 해 금연을 두고 고민이다. 하지만 금연을 하면 살이 찔까 봐 두렵다고 한다.


오늘 금연의 날 … 늘어난 여성 흡연

# 결혼 전 10년 넘게 담배를 피웠던 김모(35)씨는 지난해 임신과 함께 담배를 끊었다. 그러나 첫 아이를 품에 안은 지 한 달 만에 담배를 다시 물었다. 밤늦게 남편이 귀가할 때까지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면서 생긴 산후 우울증 탓이었다. 김씨는 “젖을 먹인 직후 한 개비씩 피우다 보면 하루에 10개비가 넘는다”며 “3개월 된 아기가 젖이라도 토하면 모두 내 탓인 것 같아 무섭지만 끊기가 어렵다”고 호소했다.



흡연이 암 등 다른 질환과 적지 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면서 세계적으로 흡연율은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담배를 피우는 여성은 오히려 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31일로 23회째를 맞는 ‘세계 금연의 날’ 주제로 여성 흡연을 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의 19세 이상 흡연율 조사에 따르면 남성흡연율은 2001년 60.9%에서 2008년 47.7%로 떨어졌다. 반면 여성흡연율은 5.2%에서 7.4%로 오히려 높아졌다. 금연상담전화를 운영하는 국립암센터의 임민경 국가암정보센터장은 “우리나라에선 흡연 사실을 숨기는 여성이 아직 많아 실제 여성흡연율은 훨씬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서울대병원 전종관(산부인과) 교수팀이 발표한 전국 산모들의 흡연율 조사 결과도 유사했다. 상담에서 ‘현재 흡연 중’이라고 말한 응답자는 전체 1090명 중 6명(0.55%)에 불과했지만 소변검사 결과는 32명(3.03%)이 흡연자로 판명됐다. 임 센터장은 “여성 흡연은 우울증 등 정서적 문제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고 금단현상도 남성보다 심해 끊기가 더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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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이처럼 여성 흡연이 늘어나는 이유를 무엇보다 담배회사들의 여성공략 마케팅 전략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건강정보센터의 정영철 소장은 “담배 이름에 여성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슬림’ ‘마일드’ ‘라이트’ 등의 단어를 쓰거나 날씬하고 매력적인 여성성을 부각시키는 광고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또 “최근에는 여성 소비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기 위해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하거나 여성스포츠단을 운영하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금연정책에서 여성이 소외되어 있는 것도 문제다. 흡연사실을 밝히길 꺼리는 여성에게 공개적인 금연프로그램은 ‘그림의 떡’이다. 제주보건소의 경우 2008년 3월 금연클리닉 안쪽에 여성 전용상담실을 마련한 결과 2007년 전체 상담자의 9.7%에 불과하던 여성 상담자가 2008년 14.2%, 2009년엔 15.6%로 늘었다. 복지부 이석규 구강생활건강과장은 “성차별로 여길까 봐 여성 흡연 문제는 논의조차 어려웠다”며 “앞으로 여성을 위한 금연프로그램을 보다 적극적으로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김정수·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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