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향기] 월드컵 관전 포인트

중앙일보 2010.05.31 00:19 종합 33면 지면보기
6월은 월드컵의 달이다. 이미 그 달의 모든 스케줄과 밤잠, 여타의 관심을 올스톱시키고 몰입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전 지구적으로도 흥분에 겨워하는 한 달이 될 것이다. 유독 축구가 이렇게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에 대해서는 분석이 쏟아졌겠지만, 그래도 나름의 개똥철학을 풀어놓자면 축구의 단순함과 자연스러움, 그리고 예술성에 있지 않나 싶다.



축구는 거추장스러운 경기복이나, 복잡한 룰이 필요 없는 단순함이 있다. 골대는 바닥에 그려진 금으로 대체할 수도 있고 공은 둥글게 생기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진입장벽이 가장 낮다는 점이 세계의 구석구석에서 사람들이 모이기만 하면 공차기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달려가서 공을 차 넣는 축구는 자연과 본능에 가장 가깝다. 서로가 호흡을 맞춰 공을 한 곳으로 몰고 가며 질주하는 모습은 광활한 초원에서 힘을 모아 짐승을 사냥하던 원시의 야생본능을 일깨운다. 서로의 몸을 격렬하게 부딪치는 투쟁의 본능 역시 큰 매력이다. 게다가 둥글게 생긴 공은 손으로 던지고 바닥으로 튀기는 것보다는 역시 땅에서 굴러가는 모습이 가장 자연스럽다. 그런 축구경기는 가장 드넓은 공간 속에서 사람과 공이 펼치는 아름다운 예술이다. 발과 발, 둥근 공, 넓은 경기장 안에서 이들이 그리는 궤적은 2차원 평면의 직선과 곡선, 그리고 3차원 공간의 포물선을 아우르며 황홀한 그림을 풀어놓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월드컵 같은 세계인의 축제는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게 해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계기가 된다. G8이니 군사대국이니 하는 기존 세계질서는 월드컵 앞에서는 의미가 없다. 축구를 보면서는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나 스페인 같은 나라들이 세계지도의 절반쯤을 뒤덮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가난과 전쟁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아주 커 보이는 것도 이때다. 우리와 맞섰던 토고니 코트디부아르, 트리니다드 토바고 하는 나라들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이 언제 가능했겠는가. 그러니 월드컵은 세상의 구석구석에 살고 있는 나라들과, 그 속에서 각자의 재능과 꿈을 키워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익히면서 시각을 넓히는 교육의 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월드컵을 앞두고 TV에서 계속 방영하는 미니다큐들을 보면서 ‘드록신(神)’으로 불리는 코트디부아르의 영웅 드로그바의 활약에 힘입어 내전이 종식됐던 이야기, 맨발로 공을 차던 가난한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소년 드와이트 요크가 네 번의 도전 끝에 월드컵 진출의 꿈을 이룬 뒤 눈물 흘린 이야기들을 보게 됐다.



2010년의 월드컵에서 남북한의 이야기는 훗날 어떤 다큐멘터리를 남기게 될까. 아마도 “전쟁이 끝난 지 5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이 동반 진출하는 꿈을 이뤘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월드컵을 앞두고 전쟁의 위기가 가장 고조되었다”로 시작하는 다큐일 것이다. 부디 그 이야기의 끝이 “결국 그들은 세계의 축제 월드컵에서 서로의 한 골 한 골에 어쩔 수 없이 뻐근해지는 가슴과 흘러내리는 눈물로 한민족임을 확인하고, 정치적인 위기를 극복했다”는 아름다운 결말로 완성되기만을 기대할 뿐이다.



이윤정 문화칼럼니스트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