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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이어 아트밸리 옛 구로공단 일대 컬처노믹스 영근다

중앙일보 2010.05.31 00:18 경제 2면 지면보기
한때 구로공단과 벌집촌으로 대표되던 서울 서남권이 꿈틀거리고 있다. 문화예술과 경제발전을 연계한 ‘컬처노믹스’가 키워드다. 문화의 불모지였던 이 일대를 민·관이 함께 서울의 문화 중심지로 키워 지역경제를 발전시킨다는 전략이다. 이 전략의 바탕에는 앞으론 고속도로·공항 같은 시설이 집중된 곳이 아닌 창조적 인력이 모이는 지역이 발전한다는 ‘창조도시론’이 깔려 있다.



27일 오후 서울 구로동의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 여덟 명의 어린이가 자신들이 만든 곡을 국내외 전문 음악인들이 연주하는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함께 마련한 ‘꿈의 오케스트라’ 프로그램이다. 작곡 경험이 전혀 없는 초등학생들에게 일주일 정도 훈련을 시킨 뒤, 이들이 만든 곡을 전문가들이 연주해 아이들의 창의력을 길러주는 교육 과정이다. 뉴욕 필의 예술강사인 데이비드 월러스(39)는 “극장 설비와 아이들의 창의력 모두 생각보다 훨씬 훌륭하다”고 말했다.



잠시 뒤 인근 영등포구 문래동. 낡은 철공소가 늘어서 있는 골목에 ‘포토스튜디오’ ‘예술연구소’ 같은 색다른 간판이 군데군데 눈에 띈다. 문화예술인 170여 명의 작업공간이 있는 ‘문래 창작촌’이다. 지난해 이곳에 작업실을 낸 미디어아트 작가 김재화(46)씨는 “처음엔 홍익대 앞으로 가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임대료가 너무 비싸 포기했다”며 “문래동은 보증금이 홍대 앞의 10분의 1 수준인 데다 동료 작가와 교류도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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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남권 컬처노믹스의 중심지는 구로구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등 문화 관련 기관이 속속 이 지역에 둥지를 틀고 있다. 30여 년의 대학로 생활을 마치고 지난달 구로동으로 이사한 문화예술위가 핵심이다. 문화예술위는 연 800억원의 예산을 들여 국내 문화예술계를 지원하는 기관이다. 대학로가 130여 개의 소극장이 들어서고 예술인들로 북적이게 된 데는 문화예술위의 영향이 컸다. 윤정국(52) 문화예술위 사무처장은 “우리가 옮겨오면서 많은 예술인이 구로구 일대로 따라올 것으로 본다”며 “도시재생 효과를 통해 지역경제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대성산업은 지하철 신도림역과 연결된 초고층 주거·상업·업무·문화 복합시설인 ‘디큐브시티’를 짓고 있다. 내년까지 51층 아파트 2개 동과 호텔·사무실·쇼핑몰로 쓰일 41층짜리 건물이 들어선다. 1270석 규모의 뮤지컬 전용극장도 세운다. 디큐브시티 부지는 2002년까지만 해도 대성산업의 연탄공장이었다. ‘상전벽해’가 아닌 ‘탄(炭)전벽해’인 셈이다.



대성산업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은 특색 있는 문화 육성이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아닌 뮤지컬 전용극장을 짓는 것도 그래서다.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볼거리를 제공해야 손님을 끌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지난해 대성산업은 예술의전당 공연기획팀장을 지낸 고희경(47)씨를 문화사업실장으로 스카우트했다. 고 실장은 “1987년 예술의전당에서 처음 근무를 시작했을 때는 서초동도 문화 불모지였지만 이제는 서울의 문화 중심 중 한 곳으로 성장했다”며 “디큐브시티 뮤지컬 극장을 국내에서 손꼽히는 문화시설로 키우겠다”고 말했다.



서울메트로의 지난해 말 조사에 따르면 지하철 1, 2호선이 지나가는 신도림역의 평일 환승 인원은 35만 명으로 지하철 역 가운데 가장 많다. 2위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28만 명)을 큰 폭으로 앞선다. 대성산업이 디큐브시티를 연간 20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쇼핑·문화시설로 키우겠다고 자신하는 근거다.



지자체도 문화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구로구는 2006년 자체 예산의 3.9%(68억원)를 문화 분야에 썼다. 하지만 3년 뒤인 지난해에는 7.3%(223억원)로 확 늘었다. 구로구가 출연해 만든 구로문화재단은 2008년부터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 극장은 지난해 문화예술 기업·단체 3곳과 상주 협약을 했다. 단순히 한두 차례 공연만 하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주민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게 해 지역 발전에 기여하게 하겠다는 전략이다.



‘9로로 노리단’의 공연 모습. [노리단 제공]
자동차 휠, 산업용 파이프 등을 이용해 연주하는 ‘9로로 노리단’이 그중 하나다. ‘노리단’은 구로구의 지원으로 지하철 2호선 신도림·대림역 사이의 교각 밑에 작업 공간도 마련했다. 안석희(43) 노리단 공동대표는 “앞으로 구로·금천구의 벤처기업과 협력해 정보기술(IT)을 활용한 미디어 아트도 해나갈 계획”이라며 “공연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구로공단으로 불렸던 서울디지털산업단지도 이 지역 문화 발전을 위한 큰 자산이다. 현재 1만여 개의 기업에서 12만 명 이상이 일하고 있다. IT 관련 업체가 가장 많다. 김흥수(47) 구로문화재단 대표는 “이 지역 근로자들은 문화 생활을 하려면 대학로, 홍대 앞, 강남 등지로 나가야 했다”며 “구로구 일대 문화예술을 발전시켜 이들이 직장 근처에서 돈을 쓰도록 하면 지역경제에 엄청난 효과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김선하 기자






“차별화하려면 문화가 중요 … 1270석 뮤지컬 전용관 만들 것”

연탄공장 터에 ‘디큐브시티’ 짓는 대성산업 차도윤 사장




“핵심은 차별화다. 디큐브시티를 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시설로 만들겠다. 그러려면 문화사업이 가장 중요하다.”



대성산업 건설사업부 차도윤(56·사진) 사장의 말이다. 이 회사가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에 짓고 있는 주거·상업·업무·문화 복합시설인 디큐브시티는 현재 공사가 60% 정도 진척됐다. 연면적 35만㎡로 땅값을 제외하고 1조원 정도가 들어간다. 토지는 자체 보유한 연탄공장 부지를 활용했다. 내년 6월 준공한 뒤 8월 말 개장할 예정이다.



-수도권 사람들에게 구로구는 ‘공단’의 이미지가 강하다. 문화 사업이 성공할까.



“구로공단은 정보기술(IT) 벤처 밸리로 탈바꿈했다. 구로구의 소득 수준도 서울시 평균보다 높다. 그간 이 지역에 문화시설이 적었을 뿐이다.”



-어떤 문화시설이 들어서나.



“우선 1270석 규모의 뮤지컬 전용극장이 있다. 40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다목적 홀도 만든다. 소규모 콘서트나 연극·무용 공연 등이 가능하다. 이 밖에도 상업시설 곳곳에 작은 문화 공간을 준비하고 있다. 상당 부분 문화예술인과 지역 주민에게 무료 개방할 생각이다. 디큐브시티 인근에는 조성될 공원에 1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야외공연장도 생긴다.”



-뮤지컬 전용극장은 성공을 자신하나.



“처음엔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생각했지만 지역 문화를 육성하려면 뮤지컬 극장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운영을 통해 흑자를 내는 게 목표지만 어느 정도 손해를 보더라도 감수할 생각이다.”



차 사장은 “대성산업은 1947년 연탄 제조로 출발해 서민과 함께 성장한 기업”이라며 “디큐브시티를 서민이 가족 단위로 쉽게 즐길 수 있는 시설로 키우겠다”고 강조했다. “티켓 값이 10만원 안팎인 뮤지컬이 많은데 우리는 장기공연을 통해 이를 끌어내리는 게 목표”라는 말도 했다. 첫 작품으로 준비하고 있는 ‘맘마미아’는 6개월간 공연할 계획이다.



-시행착오는 없었나.



“왜 없었겠나. 이런 시설을 운영한 경험이 없다 보니 설계 과정에서 일부 착오가 있었다. 무대 장치의 무게를 생각하지 못하고 5t 규모의 엘리베이터를 넣기로 했다가 컨설팅을 받고 11t짜리로 바꾸기도 했다. 엘리베이터 크기가 달라지면서 주변 시설의 설계도 달라져 애를 먹었다.”



-문화시설 외에 상업시설은 어떻게 운영하나.



“전체 상업시설 면적의 40%를 식음료 매장에 배정했다. 다른 곳은 보통 15% 안팎이다. 내용도 차별화할 생각이다. 잘 알려진 식당을 유치하는 게 아니라 우리 나름의 테마 식당가를 꾸밀 계획이다. 전국의 숨겨진 맛집을 모아 음식 장터를 만드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회사 직원들이 이미 ‘한식 탐험대’란 이름으로 전국 식당을 돌고 있다. 주요 메뉴를 1인당 2만원 이하로 해 서민들이 이용하기 쉽도록 할 생각이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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