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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디지털 미디어랩’이 일하는 법

중앙일보 2010.05.31 00:08 경제 15면 지면보기
창조 면에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과 뉴 테크놀로지뉴 아이템신상품에 숨은 비밀 등을 다룹니다.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앱) 개발 회사인 고려대 디지털 미디어랩의 직원들이 사무실 내 투명한 유리창을 메모지 삼아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있다. 회의 주제는 증강 현실(실세계에 3차원 가상물체를 겹쳐 보여주는 기술)을 이용한 앱인‘유령 잡기’. 직원들은 다양한 유령 이미지를 유리창에 그렸다. 왼쪽부터 김성민(28) 이사, 배진아(24) 개발자, 정보나(24) 디자이너, 주한별(26) 매니저, 이원희(28) 매니저. [김성룡 기자]
“요즘 회사 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그래. 직장인이든 학생이든 스트레스가 많은 시대잖아 …. 참,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는지 측정하는 프로그램은 없을까.”


왁자지껄 수다, 이런저런 낙서, 쏟아지는 앱 아이디어

애플의 스마트폰인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 이하 앱) ‘스트레스 테스트’는 이처럼 우연한 대화 속에서 탄생했다.



고려대 디지털 미디어랩 직원들이 차 한잔 마시며 한담을 나누다 나온 아이디어. 30개 문항에 답하면 그 내용을 분석해 ‘스트레스 지수’를 백분율로 알려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아이디어가 앱으로 완성되는 데 걸린 기간은 1주일에 불과했다. 규모가 큰 회사였다면 결재 받고 회의하고 한 달 이상 족히 걸렸을 일이다.



스마트폰과 함께 다양한 앱 수요가 늘면서 앱 개발 붐이 일고 있다. 게임회사 등 소프트웨어 업계에 앱 전담부서가 속속 생기는가 하면 퇴근 후 대박을 꿈꾸며 홀로 앱 개발에 몰두하는 엔지니어도 늘고 있다.



본격적인 앱 벤처회사를 표방한 고려대 디지털 미디어랩이 문을 연 건 지난달 중순이다. 주변 일상생활에서 아이디어를 찾아내 시류에 맞는 앱을 재빨리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다. 대학생 5명을 포함해 임직원 수는 20명. 애플코리아에 따르면 이는 몇몇 게임회사의 앱 부서를 제외하면 국내 단일 앱 전문업체로는 가장 큰 규모에 속한다. 이 회사는 고려대 기술지주회사의 셋째 자회사로 고려대가 자본금 2억원을 댔다. 학교의 지식자산과 창의성 있는 교내 인재를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크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돈을 벌어야 하는 만큼 사무실 분위기는 자유로움과 상상력으로 채워져 있었다. 서울 안암동 고려대 산학관 2층의 회사 사무실은 칸막이 대신 유리벽으로 된 몇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다. 각각의 공간은 ‘스튜디오’로 불렸다. 3개 스튜디오별로 기획자·개발자·디자이너가 한 조가 돼 움직였다.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다 퍼뜩 영감이 떠오르면 유리벽 쪽으로 달려갑니다. 마커펜을 들고 반대편이 훤히 보이는 유리벽을 칠판 삼아 아이디어를 적어 내려가며 상대를 설득하는 거죠. 그러면 다른 직원들이 하나 둘 몰려들어 난상토론장이 되곤 하지요.”



강한(31) 사장의 이야기다. 자세히 보니 역시 유리로 된 회의 테이블도 얼룩덜룩하다. 이 사무실은 칸막이든 책상이든 도처가 메모지였다. 밤늦게까지 일하는 사람 때문에 사무실 불이 환하다. 근무시간은 자신의 하루 라이프사이클에 자율적으로 맞추도록 돼 있다.



강 사장과 김정환(36) 이사 등은 지난해 교육용 앱을 만드는 벤처업체를 차렸다가 고려대 기술지주회사에 영입됐다. 편입되기 전 이들은 ‘스트레스 테스트’를 포함해 ‘도전 8등신’ ‘군것질 쉐이커’ 등을 시범 제작해 애플 앱스토어에 등록했다. ‘도전 8등신’은 인체 사진을 찍으면 얼굴과 키의 비율을 분석해 몇 등신인지를 알려주는 기발한 앱이다.



“요즘 ‘8등신 연예인’처럼 신체 비율을 따져보는 게 유행이잖아요. 이 앱 역시 그런 얘길 주고받다가 만들어 봤지요.”



데모용으로 이런저런 앱을 만들어 무료로 배포했지만 소비자들은 냉정했다. 부족한 점을 지적하는 리플(인터넷 댓글)이 쏟아졌다. 특히 ‘스트레스 테스트’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스트레스 지수를 측정하는 질문 수가 너무 적다’ ‘질문 내용이 너무 뻔해 어떤 항목을 고르면 점수가 어떻게 나올지 예상 가능하다’ 등등.



“가벼운 마음으로 내놓은 거지만 막상 소비자 반응이 좋지 않으니까 마음이 언짢더군요. 분발하라는 채찍으로 받아들여요.”



‘에투알’(‘별’이란 뜻의 프랑스어) 스튜디오의 주한별(26) 매니저의 말이다. 이 스튜디오는 절치부심 끝에 ‘유령잡기’라는 앱을 선보였다. 앱을 실행해 카메라로 주변을 찍다 보면 하얀 유령이 불쑥 튀어나온다. 이때 스마트폰을 터치해 유령을 잡으면 광고나 커피의 쿠폰 등이 나온다. 호응이 좋아 광고에 활용하겠다는 기업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대기업과 제휴해 스마트폰 앱 기반의 모바일 광고 플랫폼을 개발하는 것도 이들의 업무다. 김 이사는 “삼성전자·SK멜론·금호타이어와 제휴했거나 그럴 예정”이라고 말했다.



글=송지혜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기술지식 사업화 위해 탄생

10곳서 자회사 23곳 거느려




대학기술지주회사는 대학이 보유한 기술을 바탕으로 자회사를 설립하고, 대학이 일정 지분을 소유하는 형태로 설립된 회사다. 2007년 관련 법이 제정돼 대학도 마음 놓고 수익사업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듬해 7월 한양대가 HYU홀딩스라는 대학기술지주회사를 처음 설립한 데 이어 서울대·삼육대·서강대·경희대·강원대연합·고려대·인천대(설립 순)가 그 대열에 들어섰다. 올해는 동국대와 부산대가 설립 인가를 받았다. 이에 따라 10개 대학기술지주회사가 23개의 자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회사는 대학 안에 머물렀던 우수 기술로 사업화하는 것이 목표다. 대학 내 건전한 벤처 붐을 조성하고 연구에서 기술이전·재투자에 이르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고려대 디지털 미디어랩의 경우 대학이 보유한 기술을 출자해 자회사를 만드는 초기 형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대학이 외부회사를 적극 유치한 사례로 꼽힌다.



한양대 HYU홀딩스의 자회사 트란소노는 한양대 정성일 박사가 개발한 ‘다양한 잡음환경에서의 효과적인 음질 개선기술’을 사업화해 매출실적을 내고 있다. 경희대 기술지주회사도 건강기능 식품, 기능성 화장품 분야 등에 뛰어들었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일부 자회사는 매출액이 20억원을 넘어서는 등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송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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