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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가 추천한 명의] 김동수 연세대 교수→이경식 CHA 의과학대학교 분당차병원 외과 교수

중앙일보 2010.05.31 00:03 건강한 당신 2면 지면보기
첨단 영상기기의 발전으로 암의 정확한 위치와 상태까지 잡아내는 요즘. 하지만 이 교수는 손을 더 믿는다. “(환자를 볼 때마다) 매번 손을 씻어서 그런지 지문이 흐려지는 것 같아요. 자, 한 번 봐요. 내가 잘못 봐서 그런가….” 유방암 수술의 대가인 이경식(73) 교수는 손을 ‘금쪽’같이 여긴다. 손의 촉감이 어둠 속의 물체를 식별하는 레이더처럼 유방 속에 숨어 있는 암을 잡아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는 손에 굳은살이 박여 촉감이 무뎌지는 것을 막기 위해 운동 등 손을 쓰는 활동에는 항상 장갑을 낀다. “유방암 진단기기라도 피부 가까이에 있는 암 덩어리들은 잘 잡아내지 못합니다. 의료기술이 많이 발달했지만 유방암에선 아직도 촉진을 병행하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운동할 때도 항상 장갑 낍니다 촉감 무뎌지면 유방암 잡아내기 힘들거든요”

현재 유방암 진단을 위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유방 엑스선 검사(맘모그라피)는 통계적으로 20~30%의 암을 놓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손 관리에 각별한 이유는 영상기기에 의존했다가 놓칠 수 있는 암을 하나라도 더 발견하기 위해서다. 맘모그라피로 놓친 암 덩어리는 촉진을 통해 10% 이상 찾아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하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그는 국내 유방암 영상진단의 문을 연 맘모그라피를 처음 도입한 인물이다.



“의사들은 주로 자신의 진료실을 찾는 환자들만 보기 때문에 치료를 받은 환자들이 모두 건강하게 잘 사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자(死者)는 말이 없는 법입니다. 현대 의료와 의사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환자 편에 서서 더 좋은 치료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영상진단 ‘맘모그라피’ 국내 첫 도입



이 교수는 중학교 2학년 때인 1951년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 의사의 길을 결심했다. 부친은 서울시 서대문구에서 병원을 운영했던 의사였다. 부상당한 군인들이 신음하는 모습을 보며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겠다고 다짐했다. “외과가 다른 과보다 사람을 살리는 데 많이 기여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좀 거칠긴 하지만 수술을 통해 환자에게 뭔가 도움을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당시 유방암 분야는 외과에서도 의사들이 거들떠보지 않았던 ‘찬밥’이었다. 남들이 외면한 길을 택한 이경식 교수. 하지만 국내 유방암 외과 1세대로 불리며 새로운 분야의 개척자가 됐다.



학구파인 그는 1966년 국내 처음으로 유방암 환자 5년 생존율을 발표했다. 당시 129명의 환자를 추적한 결과 1기 환자의 생존율은 78%, 2기는 36%였다. 현재는 전체 유방암 환자의 생존율이 90%에 이르지만 당시에는 항암치료제도, 항호르몬치료법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의 연구결과는 국내 유방암 환자의 체계적인 추적관찰의 기반을 제공했다.



특히 이 교수는 유방암 진단분야에 큰 획을 그었다.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국내에는 유방암을 진단할 영상기술이 없었다. 엑스선을 찍어도 가슴과 유두의 그림자만 잡힐 뿐 해부학적으로 암을 관찰할 수 없었다. 미국 연수를 통해 맘모그라피를 접한 이 교수는 이 기술을 국내에 도입했다.



양배추 등 식이요법 메모까지 자상하게 전달



70세를 넘겼지만 하루 일과는 예나 지금이나 큰 변함이 없다. 일주일에 두 번 있는 외래에서 약 120명의 환자를 본다. 점심을 우유로 때우며 2~3건의 수술을 집도하는 날도 많다. 이 교수는 1980년 이후 2700여 명의 유방암 환자를 수술했다. 70이 넘은 그에게 아직도 전국에서 많은 환자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는 의사들이 지금보다 더 ‘선생님’으로 칭송받던 과거부터 ‘권위’를 벗어 던지고 환자와 ‘소통’했다.



유방암 수술 후 항암치료를 기다리며 불안해하는 환자에겐 항암제를 이겨낼 수 있도록 양배추즙, 당근즙을 하루에 한 잔씩 마시고 비계를 떼 낸 살코기를 꼭 챙겨 먹으라는 메모를 슬쩍 건넸다. 이 교수가 작은 종이에 손수 적은 거친 글씨는 환자들에게 항암제 부작용을 이기는 백신이다.



암 확진 판정은 사형선고다. 이 같은 심정을 반세기 가까이 지켜봤기 때문일까. 이 교수는 환자에게 ‘틈’을 준다.



“그 자리에서 실신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검진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으니 며칠 뒤 가족과 함께 오라고 할 때도 있죠. 환자의 정신적 충격이 반감됩니다.”



이 교수는 유방암 환자의 가족들에게 한 가지 당부했다.



“유방암 수술로 가슴을 잃었지만 용기를 내서 사우나에 가고 헬스클럽에서 운동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힘든 시기를 보내지만 가족의 격려, 특히 남편의 도움이 환자의 치료결과와 삶의 질을 크게 높입니다.”



황운하 기자, 사진=최정동 기자



이경식 교수 프로필 



▶1937년: 평안북도 후창 출생



▶1961년: 연세대 의대 의학과 졸업



▶1961~66년: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병원 인턴, 외과 레지던트 수료



▶1969~2002년: 연세대 의대 외과 전임강사, 조교수, 부교수, 교수, 명예교수(2002~현재)



▶1975년: 연세대 대학원 의학과 박사학위 취득



▶1992~95년: 연세대 의대 암연구소 소장 및 암센터 병원장



▶1995~99년: 연세대 의대 부속 세브란스병원장



▶1998~99년: 대한외과학회 회장



▶2002~06년: CHA 의과학대학교 분당차병원장



▶2007년~현재: CHA 의과학대학교 분당차병원 명예원장



▶논문: 2005년 한국유방암학회지에 실린 ‘T1, T2 액와임프절 음성인 유방암에서 S-phase fraetion의 예후인자적 가치’ 외 국내외 논문 216편



김동수 교수는 이래서 추천했다

환자뿐 아니라 동료 의료인까지 존경하고 따르는 명의




“과연 명의란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할까.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인격적으로 좋은 인품을 갖추고 환자를 사랑하는 것이겠죠. 나아가 육체의 질병은 물론 마음과 영혼까지도 어루만지는 의사가 명의라는 데 이르렀습니다. 이런 분들은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많은 환자로부터 칭송을 받으시겠죠. 둘째는 주위 사람들, 특히 같은 의료계에 종사하는 동료나 선후배들이 따르고 존경하는 의사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을 충족하는 의사가 명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김동수 교수는 이경식 교수를 명의로 추천한 이유로 환자는 물론 같은 의료인까지 존경하고 따르기 때문이라고 요약했다. “벌써 연세가 70이 넘으셨는데도 불구하고 외과의사로서 전혀 흔들림 없이 수술을 소화하시며 많은 환자를 돌보고 계십니다. 아직도 교수님을 찾는 환자를 돌려보낼 수 없어 가장 늦게까지 외래진찰을 하시는 것으로도 알고 있습니다. 젊으셨을 때도 수술 후 합병증이 거의 없어 많은 환자가 이 교수님께 수술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가슴에 사랑도 많으셔서 환자를 섬세하게 잘 돌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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