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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단체장 후보 24시 르포 ⑥ ‘불모지’에서 홀로 뛰는 ‘다윗’ 후보들

중앙일보 2010.05.29 01:27 종합 10면 지면보기
6.2지방선거



“30년 민주당 외발통에 경제 꼴찌 … 이제 전북-정부 쌍발통 시대 열자”

정운천 한나라 전북지사 후보




250 대 0.



현재 도지사를 포함한 전북의 선출직 공무원 250명 가운데 한나라당 소속은 단 한 명도 없다. 14년 전 강현욱 전 의원이 신한국당(한나라당의 전신)으로 출마해 당선된 이후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나오지 않았다. 한나라당엔 ‘동토(凍土)’나 다름없는 이곳에서 정운천 전북지사 후보가 여당 간판을 달고 나왔다.



정운천 한나라당 전북지사 후보(오른쪽)가 22일 오후 전주시 효자동 서부시장에서 상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정운천 후보 제공]
28일 0시20분 전주시 서신동 막걸리촌. 주막에 들어가 손님들에게 인사하던 정 후보에게 한 남성이 잔을 건넸다. 그리고 막걸리를 가득 따랐다. 그러면서 대뜸 “제가 한옥마을에서 스파를 하는데요. 손님이 많은 토요일에 와서 꼭 유세하세요”라고 말했다. 정 후보는 반색했다. 그걸 보고 이 남성이 이렇게 말했다. “정 후보님, 4년 뒤엔 무소속으로 나오세요. 여기선 한나라당으론 안 됩니다.”



그러자 정 후보는 굳은 표정을 지은 채 술잔을 단숨에 비워버렸다.



27일 오후 6시18분 전주방송 스튜디오. 방송 연설을 녹화하기 위해 정 후보가 카메라 앞에 섰다.



“전북은 30여 년을 민주당 외발통으로 굴러왔습니다. 그 결과 전북은 경제 꼴찌, 교육 꼴찌 아닙니까? 중앙정부와 전북이 함께 가는 쌍발통 시대를 만들 겠습니다.”



전북 고창 출신의 정 후보는 이명박 정부에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지냈다. 2008년 ‘광우병 파동’의 책임을 지고 취임 4개월여 만에 물러났지만 그 후로 전국 곳곳에서 강연회를 열면서 이명박 정부의 농업정책을 홍보했다. 27일 오후 7시33분 전북대 삼성문화회관에서 열린 성 안나 장학재단 행사. 사회자가 정 후보를 소개하자 허리를 굽혀 인사하던 정 후보가 갑자기 “꼬끼오~”라고 소리쳤다. 장내는 웃음바다가 됐다. 이어 사회자가 민주당 김완주 후보의 부인 김정자씨를 소개했다. 그냥 인사만 했는데 환호성은 훨씬 더 컸다. 정 후보는 부러운 듯 김씨를 바라봤다. 그런 그에게 물었다.



-출마 결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을 만났는데 ‘정말 전북을 살리고 싶다. 그런데 정 장관이 전북 버릴래?’라고 하더라. 그 한마디에…. 지역장벽을 깨는 게 내 소임이다.”



-촛불집회를 겪은 게 도움이 되나.



“촛불집회 때만큼 나에 대한 거부감이 컸던 상황은 없을 거다. 덕분에 내공이 쌓였지.”



-왜 ‘꼬끼오’라고 외치나.



“‘꼬끼오’라고 하면 냉담한 사람들도 웃으면서 대한다. 계속 ‘꼬끼오’라고 외치다 보면 새벽이 오지 않겠나.”



정 후보의 부인 최경선씨는 27년간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최씨는 촛불집회 때 정 후보의 부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던 학생들이 “정운천은 사형시켜야 한다”고 했을 때도 묵묵히 학교에 나갔다. 그렇게 교직을 소중하게 생각하던 최씨는 지난달 15일 사직서를 냈다. ‘선거기간에만 도우면 될 텐데 왜 사표까지 냈느냐’고 물었을 때 최씨가 답했다.



“여긴 말도 안 되게 힘든 곳이잖아요. 남편 혼자 오면 외롭지 않았을까요.”  



전주=허진 기자






“날 찍어야 도민 무서운 줄 알아 … 예산 한 푼이라도 더 내주지요”

홍의락 민주당 경북지사 후보




홍의락 민주당 경북지사 후보(왼쪽)가 26일 오전 경북 구미시 낙동상가 골목을 돌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홍의락 후보 제공]
28일 오후 1시 경북 청송군 진보면 청송시장.



경북지사에 도전하는 민주당 홍의락(55) 후보가 할머니 예닐곱 명이 앉아 있는 양장점을 발견하자 불쑥 안으로 들어갔다. 한 할머니가 떡을 권하자 홍 후보가 너스레를 떨었다. “저 찍어주신다고 하면 묵고, 아니면 안 묵고….” “찍어줄팅게 묵으라!” 홍 후보는 그제야 떡을 베어물었다.



홍 후보는 이번이 난생 처음 치르는 선거다. 중소기업을 경영하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돕고 싶어 오십이 다 된 2003년에야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기인 지난 23일 봉하마을도 다녀왔다. 그가 출마한다고 하자 가족들이 모두 말렸다. 하지만 고향 어르신들이 힘들게 사시는 게 가슴 아파 결심했다고 한다. 전북지사에 출마한 한나라당 정운천 후보가 그의 대학(고려대 농업경제학과) 1년 후배다. 대학 선배들이 “서로 당을 바꿔 나갔으면 될 텐데 둘 다 사서 고생이다”라며 전화를 걸어온다고 했다. 진보면 삼거리에서 나 홀로 유세를 하던 그의 목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제발 ‘묻지마 투표’만 하지 말아주십시오! 이래도 찍어주고 저래도 찍어주면 한나라당이 우습게 봅니다. 저 찍어주셔야 경북도민 무섭다고 예산 한 푼이라도 더 주지 않겠습니까!”



지나가던 심문섭(68)씨가 홍 후보의 명함을 이리저리 살폈다. “사람은 참 났는데(괜찮은데) 지지한다고 되겠습니꺼. 여데 다 한나라당 표밭이라예.”



각종 여론조사에서 홍 후보의 지지율은 6% 선을 왔다 갔다 한다. 한나라당 김관용 후보의 10분의 1이다. 조직이라곤 캠프에서 일하는 당원 15명이 전부다. 중앙당의 지원 유세도 이곳까진 미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매일 장이 서는 곳을 찾아 인사하는 ‘장돌뱅이’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그의 은색 카니발은 하루 500~600km를 예사로 달리고, 그는 매일 밤 경북 곳곳의 모텔에 몸을 누인다. 그는 “현장을 다녀보면 체감 지지율이 30%는 되는 것 같은데, 여론조사 결과가 나올 때마다 맥이 빠진다”고 털어놨다.



-떨어질 거 알면서 왜 나왔나.



“(목소리를 높이며) 경상도에서 지지율 두 자릿수를 넘는 민주당 후보들이 있어야 견제도 되고 균형도 이룰 수 있다. 20~30년 뒤에나 가능할지 모르지만 계속 나 같은 사람들이 나와야 하지 않겠나.”



-선거가 처음인데 힘들진 않나.



“생방송 토론을 두 번 했는데, 나중에 TV로 보니까 가관이더라(웃음). 잔뜩 얼어서…. 그래도 토론회 잘 봤다고 먼저 악수 청하는 사람이 있어 힘이 난다.”



오후 1시쯤 그가 짬을 내 안동의 한 음식점에서 첫 숟갈을 뜨려던 순간, 명함을 받고 나갔던 한 여성 손님이 다시 들어와 잠깐 보자는 손짓을 했다. “꼭 지지해 드릴게요. 제가 영양 사람인데 열 표는 자신있어요.”



양말 발로 달려나간 홍 후보의 표정이 순식간에 환해졌다. “이 맛에 정치하나 봐요.”  



청송=선승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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