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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텐마 봉합’ 후폭풍 … 일 연정 붕괴 위기

중앙일보 2010.05.29 01:18 종합 12면 지면보기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일본 총리가 28일 연정 파트너인 사민당 당수 후쿠시마 미즈호(福島瑞穗) 소비자·저출산 담당상을 파면했다. 후쿠시마 장관이 이날 미·일 양국 정부가 최종 합의한 오키나와(沖繩)현 주일 미군 후텐마(普天間) 기지 이전안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일본 총리의 장관 파면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다섯 번째다. 이로써 지난해 9월 출범한 민주·국민신당·사민 연립정권이 9개월 만에 붕괴 위기에 놓였다.


미·일 ‘원안대로 이전’ 공동성명
하토야마, 공약 깨고 미 요구 수용
사민당수 반발하자 각료직 파면

사민당은 후쿠시마 장관 파면이 발표된 뒤 즉각 성명을 통해 “연립정부 구성과 관련, 중대 결정이 불가피해졌다”고 연립에서의 이탈을 시사했다. 후쿠시마 사민당수는 “30일 전국 사민당 간사장 회의를 거쳐 연정 이탈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참의원 5개 의석을 갖고 있는 사민당이 탈당할 경우 하토야마 연정이 그동안 가까스로 유지해 온 참의원 과반의석은 무너지게 된다.



미·일 양국은 이날 오전 외무·국방장관(2+2) 협의체인 ‘안전보장협의위원회’ 명의로 후텐마 기지를 같은 오키나와 내 나고(名護)시 헤노코(邊野古)로 이전한다는 내용의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바로 기본정책각료위원회를 열어 연정 파트너인 국민신당 대표 가메이 시즈카(龜井靜香) 금융상, 사민당수인 후쿠시마 소비자 담당상 등에게 미·일 합의안 수용을 요청했다. 이어 열린 임시각료회의에서도 총리는 재차 미·일 공동 성명에 서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줄곧 ‘국외 이전, 최소한 오키나와현 밖으로의 이전’을 요구해 온 후쿠시마 장관은 각료회의에 불참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결국 후쿠시마 장관의 파면을 결정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당초 사민당을 배려해 각료의 서명이 필요 없는 ‘총리 발언’으로 정부 방침을 확정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나 미·일 공동 성명 실행을 위해서는 내각의 의사를 명확하게 나타내야 한다고 판단, 각의 결정을 선택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안타깝게도 연립 파트너인 후쿠시마 당수의 이해를 구하지 못해 파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연정은 지금처럼 유지해 나갈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미·일 동맹 복원 선택=하토야마 총리는 정권의 동반자인 연립여당의 당수를 각료에서 파면하면서까지 미·일 합의를 우선함으로써 미·일 동맹에 대한 단호한 결의를 드러냈다. 총리 취임 후 ‘대등한 미·일 관계’를 외쳤던 하토야마 총리가 결국 미국과의 힘겨루기에서 백기를 들고 만 셈이다.



하토야마 총리가 기존 합의안으로 후퇴한 것은 스스로 약속한 ‘5월 말 결론’ 시한에 쫓긴 탓이 크다. 이와 함께 천안함 침몰로 긴박해진 한반도 정세 등을 감안할 때 더 이상 미·일 동맹 균열을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이 내려진 것으로 분석된다.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반도·동아시아 정세가 긴박해지고 있는 가운데 후텐마 기지의 현 내 이전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미국은 하토야마의 선택을 환영했다. 백악관은 28일 오바마·하토야마 전화회담에 대해 “두 나라 정상이 작전을 운용할 수 있는, 정치적으로도 타당한 계획을 함께 추진하는 데 만족한다”며 일본에 대한 신뢰를 표시했다.



오키나와에서는 이날 미·일 공동 성명 발표에 관한 호외가 발행됐다. 주민들은 “배신·농락당했다”며 분노를 참지 못했다. 나카이마 히로카즈(仲井眞弘多) 오키나와 지사는 “(미·일 공동 성명이) 실행되기는 아주 어려울 것이다. 충분한 의사소통을 하지 않은 채 당사자를 제쳐 놓았다는 인상이 강하다”고 유감을 나타냈다. 이전지인 헤노코가 있는 나고시의 이나미네 스스무(稻嶺進) 시장은 “현민에 대한 배신이다. 이제 와서 헤노코로 이전한다고 해도 실현되지는 못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훈련시설 괌 이전 추진=미·일 공동 성명은 후텐마 기지 이전과 함께 오키나와 내 일부 훈련시설을 가고시마(鹿兒島)현 도쿠노시마(德之島) 등 오키나와 밖으로 옮기기로 했다. 오키나와 주민들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 줘야 한다는 일본 측의 요구를 미국이 수용한 것이다. 도쿠노시마뿐 아니라 일본 본토의 자위대 기지나 괌 등 국외 미군 기지로 일부 훈련시설을 옮기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오키나와에 주둔하는 미 해병대 8000명을 괌으로 이전하는 기존 계획도 단계적으로 시행에 들어가게 된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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