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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 BOOK] 남의 불행으로 돈 버는 것, 어디까지 용납할까

중앙일보 2010.05.29 00:27 종합 25면 지면보기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김영사

404쪽, 1만5000원




2004년 허리케인 찰리가 미국 플로리다 주를 강타한 뒤 생필품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었다. 평소 2달러 하던 얼음주머니가 10달러에 팔렸다. 지붕 위로 쓰러진 나무 두 그루를 치우는 데는 2만3000달러, 하루 40달러 하던 모텔 숙박비는 160달러를 내야 했다. 냉장고며 에어컨은 작동되지 않고, 당장 잠잘 곳을 마련해야 했던 시민들은 울분을 터뜨렸다. 마침 플로리다 주엔 가격폭리처벌법이 있었다. 이 법의 집행을 두고 벌어진 논란은 ‘공정가격’이란 무엇이냐에서 시작해 탐욕과 도덕의 문제로 번졌다.



남의 불행을 이용해 먹으려는 탐욕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컸지만 일부 경제학자들은 시장의 자유를 옹호했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될 뿐 공정가격이란 없다.” “가격 급등은 필요한 물건을 더 많이 생산하도록 자극해 플로리다 주민들에게 실보다 득이 많다.”



이 같은 논리에 주 정부는 “비상 상황에서 강요받는 구매자에게 자유는 없다. 비양심적인 가격은 진정한 자유 교환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고 맞섰다.



이재민들에게 생필품 값을 대폭 올려 받는 행위는 자연스러운 교환행위인가 탐욕인가. 이 같은 가격폭리 논쟁은 도덕과 법의 본질에 관한 철학적 의문을 던진다. 사진은 2005년 9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부 뉴올리언즈를 강타한 후 그 참상에 넋을 잃은 채 울고 있는 자매. [중앙포토]
정의(正義)의 의미와 그 실천적 방법을 다룬 이 정치철학 책은 이런 흥미로운 실화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면서 이 논쟁은 정의를 바라보는 세 가지 시각, 즉 행복 극대화· 자유 존중· 미덕 추구를 반영한다고 지적한다. 높은 가격을 노려 물건의 공급이 늘어나면 사회 전체의 행복이 커지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규제 반대론, 가격 부담을 하지 못하는 서민들의 고통을 감안하면 사회 전체의 행복은 상쇄되며 생필품에 높은 값을 매기는 것은 자발적 교환이 아니라 강탈에 가깝다는 반대론의 논거는 나름 논리가 있다고 지은이는 인정한다. 하지만 그가 주목하는 것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혹은 좋은 공동체가 갖추어야 할 미덕이다.



지은이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칸트, 제레미 벤담, 존 스튜어트 밀, 존 롤스까지 대표적 정치철학자들의 이론을 소개하는데 그 설명방식이 독특하다. 구제금융은 정당한가, 정부는 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해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하는가 등을 실제 도덕적 딜레마와 연결해 이야기를 풀어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정의론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지은이의 결론은 상당히 설득력 있다.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공리(共利)를 극대화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만들 수 없다며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으레 생기기 마련인 이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문화를 가꾸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만만하진 않지만 딱딱하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옳고 그름, 정의와 부정에 관해 서로 자기 목청만 높이는 우리 사회에서 차분히, 널리 읽혔으면 싶은 책이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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