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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나·허정무의 월드컵 일기 ②

중앙일보 2010.05.29 00:17 종합 30면 지면보기
월드컵 대표팀을 이끌고 오스트리아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있는 남편(허정무 감독)이 어제 전화를 걸어왔다. “잘 지내지? 아픈 데는 없고?”


시련 딛고 명장 된 모리뉴 감독 얼굴서 남편을 봅니다

나는 “응” 대답하고는 곧바로 “나보다 선수들이 아프지 말아야지. 선수들은 다 괜찮지?” 하고 묻는다. 남편은 “응. 괜찮아. 잘 될 거야” 한마디 한 뒤 딸들은 잘 있는지, 정원의 꽃은 어떻게 됐는지 집안 얘기들을 꺼낸다.



허정무 감독이 28일(한국시간) 노이슈티프트 캄플 훈련장에서 열린 대표팀 훈련 도중 날카로운 눈빛으로 선수들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 허 감독은 30일벨라루스와 평가전을 치른 후 국제축구연맹(FIFA)에 제출할 최종 엔트리 23명의 명단을 확정할 계획이다. [노이슈티프트=연합뉴스]
남편은 집에서 축구 얘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나도 웬만하면 굳이 묻지 않는다. 남편이 대표팀을 맡은 뒤에는 “이번 대표팀 명단은 어떻게 되나” 하고 묻는 사람이 많았다. 나는 정말 모른다. 대표팀 관련 얘기들을 나는 신문을 통해 안다. 남편이 나한테 선수 칭찬을 한 적은 딱 한 번 있었다. 전남 드래곤즈 감독이던 시절 스승의 날이었다. 많은 선수가 꽃이나 난을 선물했는데, 정모 선수가 양말을 선물로 보냈다. 남편은 “이런 게 진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선물”이라면서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남편이 전남 감독일 때에는 연말에 팀 주최로 부부 동반 송년회를 하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선수 가족들과 친해지고 싶어 애를 썼지만 선수 부인들은 나를 어렵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남편이 대표팀 감독이 된 뒤에는 반대로 내가 선수나 선수 가족들과 거리를 뒀다. 괜히 오해를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서지 않고 뒷바라지나 잘 하는 게 최고의 내조라고 믿고 있다.



그래도 한 가지, 선수들 건강만큼은 예민하게 신경이 쓰인다. 남편이 부상당했을 때 마음고생을 워낙 많이 했던 터라 축구장에서 선수들끼리 부딪치기만 해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그럴 때는 선수 가족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지만, 남편의 위치 때문에 그러지 못한다.



남편을 만나기 전 나는 축구의 ‘ㅊ’자도 모르던 축구 문외한이었다. 몇 명이 축구를 하는지도 몰랐고, 골은 몇 골 안 터지면서 공만 몰고 다니는 경기가 그렇게 지루할 수 없었다. 그러던 내가 이제는 1년이면 적어도 50경기는 운동장에 가서 축구를 관람한다. K-리그는 물론이고 해외 축구도 꼬박꼬박 본다. 밤 늦은 시간, 거실 TV를 틀어놓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즐긴다. 그중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볼턴을 특히 좋아한다. 아무래도 한국 선수들이 활약하고 있는 팀이라 애착이 간다. 토트넘은 이영표 선수가 뛰어서 굉장히 좋아했던 팀이었는데 그가 다른 팀으로 이적한 후부터는 ‘져야 이영표의 빈 자리를 알 거야’ 하는 마음에 응원을 하지 않고 있다.



유럽축구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이탈리아 리그 팀 가운데 최초로 트레블(컵대회, 세리에A 리그,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한 인터 밀란 조제 모리뉴 감독이 지난 17일(한국시간) 리그 우승을 확정 지은 후 관중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최미나씨가 멋지다고 말한 흰색 와이셔츠를 받쳐 입고 있다. [중앙포토]
올해 이탈리아 세리에A에서는 인터 밀란을 응원했다. 조제 모리뉴 감독 때문이다. 축구 선수로는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감독으로 대성한 것이 놀랍고, 첼시에서 쫓겨나 인터 밀란에서 재기한 것도 대단하다. 시련을 딛고 보란 듯이 성공한 그의 얼굴에 남편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경기 때 모리뉴 감독이 하얀색 와이셔츠를 맞춰 입고 목에 핏대를 세우는 모습도 정말 멋지다.



나는 남편이 대표팀 감독이 됐을 때 “자기도 운동장에서 흰 셔츠만 입어” 하며 직접 챙겨주곤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번 월드컵에서는 남편이 흰 셔츠를 입은 모습을 볼 수 없을 것 같다.



6월의 남아공은 겨울이라 너무 추워 흰 셔츠는커녕 양복에 코트까지 껴입어야 한다. 게다가 이번에는 한 남성복 회사에서 선수단 양복을 통일해 맞춰주는 바람에 나는 남편 짐 속에 ‘행운의 벨트’만 고이 챙겨 보냈다.



모리뉴 감독 하니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차범근 감독이다. 남편이 네덜란드에서 활약하던 시절, 차범근 감독은 독일에서 축구로 국위 선양을 했다. 같은 시기 해외에서 활약했다는 점, 또 대표팀 감독으로 우여곡절을 겪었다는 점이 내 남편과 비슷해 나는 차범근 감독에게 항상 친근감을 느낀다. 최근 차범근 감독이 또 한 번 시련을 겪고 있다고 들었다. 오랫동안 맡아왔던 정든 팀을 떠나는 것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 아프다고 한다. 남편이 포항을 떠났을 때가 그랬다. 그래서 나는 차범근 감독이 또다시 멋지게 재기하실 거라고 믿는다. 차범근 감독님, 파이팅입니다!



정리=온누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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