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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1964년 탄생한 PLO의 한반도 인연

중앙일보 2010.05.29 00:10 종합 33면 지면보기
1993년 9월 13일 아라파트와 이스라엘 총리 라빈이 팔레스타인 자치 협정에 서명했다. 94년 협정 당사자인 아라파트와 라빈 그리고 당시 이스라엘 외무장관인 페레스는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1964년 5월 28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조직됐다. PLO는 같은 날 선포된 헌장에서 팔레스타인의 자치를 선언하면서 ‘영국의 위임 통치시기에 존재했던 경계 안에서 팔레스타인은 통합된 지역 단위로 존재하며, 유대주의의 존재를 금지한다’고 규정했다. 이후 PLO는 독립을 목표로 요르단·레바논 등 인접 국가와 가자 지구 및 웨스트 뱅크 지역을 근거지로 해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 PLO는 팔레스타인 국가평의회라는 명목상 입법기구를 갖추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18명으로 구성돼 있는 집행위원회에서 실권을 행사하고 있다. PLO는 74년 아랍연맹과 유엔으로부터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대표하는 기구로 인정받아 유엔총회에 옵서버 자격을 부여받고 있지만, 팔레스타인 내부에서는 자신들의 전체적인 견해를 대표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PLO가 10개의 크고 작은 파벌로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69년부터 2004년까지 지도자의 지위에 있었던 야세르 아라파트는 PLO를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기구로 승격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라파트는 테러와 부인의 사치스러운 생활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93년 이스라엘과의 협정을 이끌고 자치정부를 수립하면서 94년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팔레스타인은 어느 정도 한반도와도 인연을 맺고 있었다.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국 정부는 PLO가 북한으로부터 게릴라 훈련 및 비밀자금 지원을 받고 있는 적대 국가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북한은 이미 66년부터 PLO와 외교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러나 건설업의 중동 진출, 한·미 간의 갈등으로 인해 제3세계에 대한 적극적 진출을 모색하면서 PLO와 관계 개선에 나서게 됐다. 이에 79년에는 박동진 외무장관이 쿠웨이트를 방문한 자리에서 PLO가 팔레스타인의 유일 합법 대표권을 갖고 있으며, 이스라엘의 점령지 철수 및 팔레스타인의 권리 회복에 찬성하는 합의안을 내기도 했다. 북한은 82년 팔레스타인에 파병을 제안하기도 했고, 90년 5월에는 아라파트가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과 회담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라파트는 99년과 2000년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 방문을 추진할 때 중동과 보다 적극적인 협상 추진을 위해 그의 북한 방문을 만류하기도 했다. 그런데 국제정치학에서 나타나는 한반도와 팔레스타인의 무엇보다 중요한 인연은 60여 년이 넘도록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있는 지역이라는 점이다. 한국전쟁 발발 60년이 되는 올해, 이제 분쟁을 끝내야 할 때가 된 것 아닐까?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 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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