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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산책] 맺힌 것은 풀고, 풀린 것은 묶고

중앙일보 2010.05.29 00:06 종합 33면 지면보기
늘 이맘때(음력 4월 15일)쯤이면 선불교(禪佛敎) 절집 안은 90일의 여름안거(安居)가 시작된다. 이를 결제(結制)라고 부른다. 석 달 동안 산문 밖의 출입을 삼가고 오로지 수행에만 전념토록 만든 특별기간이기도 하다. 함걸(咸傑·1118~1186)선사는 “자기가 앉아 있는 자리에서 4면 8방에 맑은 바람이 흐르도록 만들어라”고 하여 외적인 고요함과 내적인 치열함이 함께하는 결제를 주문했다.



하안거(夏安居) 역사는 2600여 년 동안 유장하게 흐르는 강물처럼 이어져 오늘에 이르렀다. 하지만 시작은 사소한 것이었다. 그건 인도 지방의 우기(雨期)라는 독특한 기후 때문이다. 당시에는 가지려고 해도 가질 수 없는 ‘그늘’조차도 오래 머물게 되면 혹여 그것에 대한 미련과 애착심이 생길까 봐 같은 나무 밑에서 3일 이상 머물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철저한 무소유와 무주(無住·잠시 머묾)를 실천했지만 석 달 동안 내리는 폭우 앞에선 어찌할 수가 없었다. 거친 비를 피해 자연스럽게 넓은 동굴 안이나 큰 지붕 밑으로 모여들었다.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리면서 (다닐 때보다) 상대적으로 ‘편안한 머물기(安居)’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본래 떠돌이였지만 할 수 없이 한시적인 붙박이가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중국·한국·일본 등 동양 삼국은 함께 모여 수행하는 곳을 총림(叢林)이라고 불렀다. 대중이 풀과 나무처럼 빽빽하게 서 있는 까닭에 내키는 대로 어지럽게 자라지 못하도록 서로 붙들어 주는 공간인 까닭이다. 쑥대머리(머리털이 마구 흐트러져 있는 모양)란 말에서 보듯 쑥은 제멋대로 자라는 식물의 대명사다. 설사 그런 쑥이라고 할지라도 곧게 자라는 마(麻) 속에 있으면 애써 잡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곧게 자라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모이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것은 전쟁터뿐 아니라 수도원의 법칙이기도 했다. 그래서 대중이 공부시켜 준다는 말이 나왔다. 그냥 함께 살면서 따라 하기만 해도 크게 잘못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림=김회룡 기자]
‘크게 잘못될 일이 없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기억나는 사건이 있다. 그날 행사에 초청된 강사는 차분하게 주제를 잘 이끌어가는가 싶더니 한순간 그만 키워드를 놓쳐버렸는지 말이 끊겼다. 어색한 고요가 잠시 이어졌다. 그 난감한 표정을 향해 뒷자리에서 누군가 ‘뭐라뭐라’ 하면서 말머리를 쳐주었다. 그랬더니 "아! 맞아요” 하면서 이내 다시 말문이 열렸다.



한참 후 마음에 여유가 생겼는지 청중을 돌아보며 농담을 던졌다.



“아까 저를 도와준 사람이 누군지 모르죠? (뜸을 들인 후) 우리 집사람이에요.”



그러자 모두 작은 소리로 웃었다.



“집사람 시키는 대로 하면 크게 잘못될 일이 없습니다.”



다시 큰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백번 맞는 말이다. 이것이 같이 사는 사람의 힘인 것이다. 가정 역시 작은 총림인 까닭이다.



머묾이라는 결제와 떠남이라는 해제(解制)는 수행승의 몸과 마음을 조화롭게 만들었다. 머물 때는 모두가 푸른 산처럼 꿋꿋한 자태로 살았지만 떠날 때는 한결같이 자유로운 흰구름이 될 수 있었다. 때로는 하늘 높이 우뚝 서기도 했고, 때로는 깊이깊이 바다 밑에 잠기기도 했다. 그 잠김을 통해 속살이 여물어야 다시 솟아오를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긴장과 느슨함으로 맺힌 것이 있으면 풀었고, 마냥 풀어진 것이 있으면 다시 야무지게 묶었다. 물이 흐르기만 한다면 피곤함이 묻어날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고여 있기만 한다면 답답함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흐를 곳에서는 흘러야 하고 머물 곳에는 머물러야 하는 것이 물의 순리인 것처럼 인간사 역시 그랬다.



따지고 보면 인생이란 것도 이동과 머묾의 반복이다. 살다 보면 머무르고 싶다고 늘 머무를 수도 없고, 이동하고 싶다고 마음대로 이동할 수도 없긴 하다. 하지만 지나친 머묾은 정체를 의미하고 그렇다고 해서 지나친 이동은 불안정을 내포한다. 어쨌거나 농경시절에는 이동하는 성격을 ‘역마살’이라 하여 부정적으로 불렀지만, 현대 IT시대엔 그것이 또 다른 경쟁력이 되었다. 노마드(nomad·떠돌이)가 칭송되고 붙박이는 알게 모르게 ‘도태’라는 뉘앙스가 가미되었기 때문이다. 머물고 있으면서도 늘 떠날 사람처럼 하루하루를 매듭지으며 살았고, 반대로 늘 떠돌아다니면서도 영원히 머물 사람처럼 주인의식을 가지고 순간순간 살 수 있을 때 비로소 제대로 붙박이와 떠돌이의 자격을 갖춘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어쨌거나 이동과 머묾이 적절한 조화가 이루어졌을 때 이동은 이동대로, 머묾은 머묾대로 같이 빛나게 된다.



하지만 혜원(523~592) 스님은 30년 동안 그림자조차 여산(廬山) 밖을 나가지 않았고, 마조(709~788) 선사는 개원사(開元寺)에서 30년을 머물렀다. 그렇지만 그 머묾을 어느 누구도 정체나 도태로 보지 않았다. 같은 장소지만 그 안에서 해제와 결제를 거듭했을 것이고, 매 순간순간 머묾 속에서도 떠남을 반복하도록 스스로를 경계하고 훈련시킨 까닭이다.



알고 보면 사바세계 전체가 80년 평생을 머물러야 하는 거대한 총림이요 또 수도원이다. 서로 의지하며 또 참지 않고서는 함께 살 수 없는 땅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살기 위해선 붙박이건 떠돌이건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는 삶의 자세가 필요했다. 그것은 나와 남에 대한 부끄러움을 아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그런 까닭에 법연(1024~1104) 선사는 이런 소박한 구절을 남겼다.



“20년 동안 죽을 힘을 다해 공부해 보니 이제 겨우 내 부끄러운 줄 알겠다.”



글=원철 조계종 불학연구소장

그림=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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