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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칼럼] 일본도 그리스 꼴? 하토야마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2010.05.29 00:01 주말섹션 15면 지면보기
그리스발 위기가 세계 경제에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불과 2년 만에 그리스의 ‘재정 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4%에서 13%로 불었다.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은 위기가 타국에 전염되지 않도록 불 끄기에 고심하고 있다.



비대한 나라 빚 문제는 비단 그리스와 EU에만 국한된 골칫거리가 아니다. 일본의 ‘국가 부채’는 GDP의 170% 수준이다. 그리스(110%)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일본에선 지난해 총선 때 정권이 교체됐다. 하토야마 유키오가 이끄는 민주당이 자민당의 50년 집권 체제를 눌렀다. 그러나 하토야마 정부는 경제·재정 정책을 다루는 ‘경제재정 자문회의’를 폐지하면서 거시경제 관리를 등한시했다.



대신에 일본 정부는 선거 공약을 지키기 위해 가계와 농업 보조금 같은 지출을 늘리는 데 골몰했다. 그 결과 올 들어 정부의 세금 수입은 총지출에 대해 50% 아래로 떨어졌다. 2차대전 이후 최저치였다. 일본이 계속 같은 길을 간다면 내년의 적자 확대는 불 보듯 뻔하다.



이처럼 일본의 나라 살림에 약점이 생겼는데도 아직까지 일본 국채 시장은 건재하다.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린 1990년대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경제 거품이 터지면서 일본의 재정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었고 경기 침체를 불러왔다.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구입한 건 외국인이 아니라 국내 기관과 가계였다. 다시 말해 민간의 거대한 저축이 정부 적자를 떠받쳤다는 얘기다. 따라서 그리스처럼 자본이 나라 밖으로 빠져나가는 일은 결코 없었다.



그런데 이런 구조가 최근 흔들리고 있다. 원인은 두 가지다. 첫째, 가계가 보유한 금융자산이 1100조 엔(약 1경5000조원)에 이르지만 국채 발행액이 극심하게 많아졌다. 앞으로 3년이면 국채 발행액이 금융자산을 추월할 것이다. 다시 말해 납세자들의 주머니로 정부의 빚을 메우는 일이 어렵게 된다는 소리다. 결국 채권 시장은 산산조각 날 것이다.



둘째, 일본 사회는 빠르게 늙어간다. 이 때문에 가계의 저축률이 극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민간이 정부 적자의 지원군으로 나서는 건 갈수록 힘들어진다. 게다가 5년 뒤면 베이비 붐 세대가 모두 65세 이상이 된다. 연금과 의료비로 나가는 지출은 정부 재정을 더욱 압박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2013년이 되면 이런 비용이 급증할 전망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일본 국채 시장은 몇 년 뒤 심각한 문제에 직면할 것이다. 마침내 정부도 세금 인상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현재 다른 나라보다 낮은 5%의 소비세율(부가가치세율)을 올릴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세금 올리기만으론 구멍 난 재정 주머니를 막을 수 없다. 가장 필요한 것은 일관되고 안정적으로 거시경제를 관리하는 일이다.



불가능한 작업이 아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2001~2006년 재직할 때 재정 적자 문제를 심각하게 다뤘다. 그의 정치철학은 작은 정부였고, 구체적인 달성 목표를 수치로 정해 놓고 재정 안정을 꾀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일본의 재정 적자는 2002년 28조 엔에서 2007년 6조 엔으로 줄었다. 이런 노력이 2년만 더 계속됐어도 일본은 재정 흑자를 맛봤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3년간 총리가 해마다 바뀌면서 재정 정책은 대중영합주의 색채를 띠었다.



지금 가장 필요한 일은 하토야마 정부가 경제 전반에 걸쳐 관리 능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세금 인상은 그중의 하나일 뿐이다. 성장을 위한 전략과 정부 씀씀이를 줄이려는 노력,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한 정책이 없다면 세금 인상은 해법이 되지 못한다. 특히 일부 경제학자는 세금 인상과 상관없이 재정 위기가 불거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일본이 위기에 빠지면 주변국과 세계 경제엔 어떤 타격을 줄까. 지금 EU가 겪고 있는 것보다 훨씬 거대한 충격이 나타날 것이다.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국이다. 아시아 GDP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지구촌 생산량의 8%를 책임진다. 반면 그리스의 GDP는 EU에서 3%에 불과하다.



어떤 나라에선 국방비 삭감과 이자율 인하가 재정 안정을 돕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일본에선 방위비와 금리 모두 낮은 수준이다. 결국 위기가 시작되면 탈출구를 찾기가 극도로 어려워질 것이다. 지금 일본에서 실질적인 정치적 리더십이 강력하게 요구되는 이유다.



다케나카 헤이조 일본 전 경제재정상·총무상/게이오대 글로벌안보연구소장

ⓒ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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