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j Global] 일주일에 4개국 일정 장재영 바비브라운 아태 대표

중앙일보 2010.05.29 00:01 주말섹션 12면 지면보기
“지난주 목·금·토요일은 홍콩에서 아시아 브랜드 매니저 회의를 주재했어요. 일요일부터 화요일까지는 도쿄, 수요일과 목요일은 상하이에서 전략회의를 했습니다. 서울에 들어와서 닷새 동안 일을 본 뒤 다음 주에 홍콩 집으로 돌아가요.”


뉴욕 임원이 만리장성 얘기 줄줄 … ‘아는 사람’ 돼야겠다 싶더군요

장재영(48·사진) 바비브라운 아시아태평양(아태) 대표가 스마트폰을 꺼내 2주일치 스케줄을 보여줬다. 일주일에 4개국을 도는 일정은 그에게 낯설지 않다. 미국 화장품 브랜드 바비브라운에서 그의 책임 아래에 있는 시장은 12개국. 한국·중국·일본을 포함하고 호주·뉴질랜드까지 들어간다. 한 나라를 1년에 대여섯 차례 방문하고, 분기별로 뉴욕 본사를 방문하는 일정을 더하면 그는 ‘언제나 출장 중’이다.



글=박현영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장 대표는 이 회사 세계 매출의 3분의 1을 책임진다. 지난해 아태 12개국은 전체 매출의 35%를 차지했다. 본사가 있는 미국 시장과 공동 1위다. 대부분 화장품 브랜드의 아시아 매출 비중이 20%를 밑도는 걸 고려하면 바비브라운은 쾌속 성장 중이다. 장 대표의 경영 능력을 높이 평가한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바비 브라운(53)은 2006년 그를 아태 총괄 이사로, 지난해 아태 총괄대표 겸 본사 부사장으로 승진시켰다. 10명쯤 되는 본사 부사장급 중 그는 유일한 아시아인이다.



장 대표는 1999년 한국에 진출한 바비브라운의 첫 브랜드 매니저를 맡았다. 신생 브랜드여서 남들은 기피했지만 그는 새로운 도전이라며 선택했다. 5년 뒤, 그는 롯데백화점 본점 매장을 세계 매출 1위 점포로 일궈냈다.



성공의 자양분은 그의 실패에서 나왔다. 종합상사의 철강 수출부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그는 4년 만에 사표를 던지고 오퍼상을 차렸다. 그런데 사업은 마음처럼 풀리지 않았다. 우후죽순 생겨난 오퍼상들 간 제살 깎기식 경쟁이 치열해졌다. 얼마 못 가 회사를 정리했다. 다시 중소기업에 들어가 월급쟁이로 살다가 친척이 운영하는 화장품 총판을 맡게 됐다. “남자라면 군 생활을 제대로 해야 한다”며 해병대 장교를 다녀온 ‘천생 남자’인 장 대표에게 여성 화장품은 흥미로운, 새로운 세계였다. 화장품에 대한 열정과 외국어 실력을 눈여겨본 에스티로더 코리아 사장이 그를 영입했다. 에스티로더 그룹은 에스티로더와 바비브라운, 크리니크 등 10여 개 브랜드를 보유한 미국의 화장품 대기업이다.



그는 무엇보다 현장을 중시했다. 바비브라운 매니저가 되면서 먼저 판매 직원들에게 정성을 쏟았다. “화장품 업계에는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가 많았어요. 전 정반대였죠. 제겐 사업 실패와 여러 회사를 전전한 경험이 있었죠. 그런 점이 오히려 현장 직원들과 소통하고 거리를 좁히는 데 도움이 됐어요.”



상호 신뢰가 쌓이자 이직이 줄고 서비스 품질은 높아졌다. 장 대표는 새로운 스타일의 서비스도 도입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채용할 때 교사, 승무원, 대기업 출신 등 경력자를 뽑았다. 이들에게는 화장품을 적극적으로 팔지 말고 공손하되 친구 같은 조언을 하라고 주문했다. 상투적인 말투와 과장된 태도를 없앴더니 오히려 고객들이 물건을 사겠다고 나왔다.



그는 “결국은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비즈니스에선 ‘사람’과 ‘숫자’를 아는 사람이 승자입니다. 그 두 가지는 현장에서 나오지요. 사람에 대한 이해 없이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직원이든 고객이든, 상대방의 마음을 연구하는 게 리더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그가 업무로 e-메일을 주고받는 사람은 100명쯤 된다. 국적은 30~40개국이다. 상대방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업무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다국적 기업일수록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더 해야 해요. 어머니가 중국인이고 아버지가 폴란드인인 직원이 살아온 배경이나 교육 환경을 알면 그의 의사결정을 짐작하거나 납득하기 쉬울 거예요.” 출장 길에 오를 때마다 현지 직원들과 식사 일정을 빼곡히 잡는 이유다.



외국어는 사람을 얻기 좋은 수단이다. 4~5년 전 일본에서 영업사원 200명이 모인 회의를 열었다. 상사맨 시절 익힌 일본어 실력으로 원고를 외워 10분간 일본어로만 연설을 했다. 일본 직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한국에서 대학(경북대 경영학과)을 나온 순수 토종인 그는 독하게 영어를 배웠다. 요즘은 중국어를 추가했다.



그의 좌우명은 ‘아는 사람, 생각하는 사람, 행하는 사람’. 고교 시절 교훈이다. “한국인의 강점은 행동하는 사람이에요. 추진력이 좋죠. 하지만 우리가 의외로 아는 데 약해요.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만 한 겹만 깊게 들어가면 무지(無知)가 들통날 때가 많잖아요.”



10년 전 뉴욕 본사에서 임원들과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였다. 우디 앨런의 영화가 화제에 올랐는데, 무려 두 시간 동안 그 얘기만 했다. “유일하게 본 우디 앨런의 영화 ‘애니홀’ 하나로 겨우 버텼는데, 낭패감이 컸어요. 또 다른 식사 자리에선 피카소를 놓고 두 시간가량 대화가 오간 적이 있어요. 대표작 몇 개 아는 걸로는 낄 수도 없어요. 미술 전공자는 한 명도 없었지만 모두 피카소의 탄생부터 작품 세계, 사랑 이야기, 최근 경매 가격까지 꿰고 있더군요. 한번은 레스토랑 창문 밖으로 개기일식이 진행 중이었는데, 그날은 개기 일식과 월식 같은 주제가 천문학 강의를 방불케 했죠.”



아시아가 화제가 될 때도 본사 임원들의 수준은 상상을 넘었다. “서양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알까 싶었는데, 만리장성의 건축 배경, 기법, 수치까지 역사책 같은 대화를 그들이 주도하더군요. ‘아는 사람’이 되는 게 참 어렵구나 느꼈습니다.” 한국인이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예술적 감성과 깊은 지식, 뛰어난 판단력과 사람에 대한 이해심을 가져야 한다고 그는 거듭 강조했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