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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를 틀어라" 방송사마다 수입 경쟁

중앙일보 2002.01.08 00:00 종합 46면 지면보기
지난해 9.11 미 테러 사건 이후 EBS 외화팀은 비상이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슬람 세계를 소개할 수 있는 정통 다큐물을 찾으라는 주문이 연이어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직원들은 다큐로 유명한 영국 BBC, 미국 PBS의 웹사이트를 하루에도 수십번씩 검색하는 것은 물론, 수차례의 e-메일을 해외로 날렸다.





어렵게 구한 테이프는 즉각 방송을 탔다. 반응은 의외로 뜨거웠다. 시청률이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나왔고, 인터넷 홈페이지에 시청자들의 관심이 쇄도했다.





이에 EBS는 관련 다큐물을 계속 편성하기로 하고 지난해 10월 초 '움직이는 세계-오사마 빈 라덴' 편을 시작으로 '탄저병에서 천연두까지, 생화학전의 실체''테러, 보복전쟁, 그리고 세계 경제''비극의 현대사, 아프가니스탄''테러와 전쟁의 원인을 찾아서' 등 8편을 연달아 방영했다.





◇ 다큐 전성시대 예고=다큐물의 성공은 EBS의 경우만이 아니다. 최근 해외 다큐멘터리가 한국의 안방으로 대거 몰려들어오고 있다.





바야흐로 '다큐의 전성시대'라 해도 좋을 정도다. EBS 김정기 외화팀 차장은 "최근 국내에서 일고 있는 다큐 붐은 주목할 만한 새 흐름"이라면서 "앞으로도 이른 시일 내에 유수의 다큐물을 소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논픽션 전문 케이블인 Q채널은 지난달부터 방영을 시작한 미국의 유명 다큐멘터리 채널 '히스토리'의 프로그램 방영 시간을 밤 9시에서 11시로 옮겼다. 뉴스 시간대를 피해달라는 시청자들의 요구 때문이다.





Q채널의 한 관계자는 "경쟁이 치열해 지다 보니 지상파 방송과 케이블이 같은 프로를 사서 방영 시기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 수입에서 제휴로 이어져=다큐물의 인기가 높아지자 해외 다큐물을 건별로 수입하는 대신 아예 외국의 유명 다큐멘터리 채널과 제휴, 방영물을 무더기로 들여오는 경우까지 생겼다. 지난달 초 종합유선방송사업자인 씨앤앰커뮤니케이션이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채널 '디스커버리'와 제휴한 게 대표적이다.





이로써 세계 1백55개국에서 4억여 가구가 보고 있는 프로그램의 상당 부분이 국내에서 전파를 탔다. 이 중 이색 직업의 세계를 다룬 '인사이드', 어린이들에게 자연의 세계를 알기 쉽게 풀이한 '아이들을 위한 최고 안내서' 등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히스토리' 채널의 경우 Q채널과 제휴 형식으로 다음달부터 정식 케이블 채널을 개국할 예정이다.





◇ 해외 다큐물 왜 인기인가=다큐, 그 중에서도 자연 다큐는 제작하기가 가장 어려운 분야다. 고도의 전문 지식과 장기간의 시간, 특수 장비, 엄청난 제작비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 다큐는 자연이라는 언어와 문화를 초월하는 공감대 때문에 세계 어느 시장에서도 인기가 있고, 가장 많은 시청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장르다. 선진국들은 이런 점에 착안해 질 높은 다큐를 생산해 각국에 배급하는데 심혈을 쏟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6천만명 이상이 시청했다는 영국 BBC의 '식물의 사생활'이나 일본 NHK의 '지구 대기행'은 제작 전문화(專門化)의 산물이다.'식물의 사생활'를 연출한 데이비드 아텐버러는 BBC 총국장이라는 자리를 뿌리치고 이 작품의 제작에만 매달리는 집념을 보였다.





판매망도 철저하다. NHK는 다큐를 해외 수출의 주 포인트로 삼고 있다. BBC도 판매망 구축을 위해 적극적인 세일즈에 나서는 등 공영방송으로서 종전에 생각하기 어려웠던 만큼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는 방송사 내에서조차 전문 인력들이 뿔뿔이 흩어져 있다가 필요할 경우에만 다큐 제작에 매달리는 형편이다.





이상복 기자





*** 우리 다큐 해외진출





지난달 중순 '아리랑 TV'의 김태정 영상물 수출지원센터장은 영국의 메이저급 영상물 배급사인 HIT 엔터테인먼트사와 최종 계약서에 사인을 하면서 쾌재를 불렀다.





60분짜리 '윈터 스토리'라는 다큐를 수출하는 대가로, 계약금 4만5천달러(약 5천8백만원)와 향후 25년간 판매 수익금의 60%를 배당받는다는 파격적 조건이었다. 한 중소 프로덕션이 제작한 다큐가 방송 프로그램 수출 사상 최고가에 팔린 것이다. 그동안은 대개 판매가가 1만달러를 넘지 못했다.





성공의 비결은 대략 두가지. 우선 이 다큐가 제작 단계부터 수출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는 점이다. 제작사인 와일드넷의 변광무 대표는 "해외 판로 개척을 위해 아예 영어판으로 만들면서 자막 등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썼다"고 말했다. 촬영 장소를 비무장지대(DMZ)로 잡아 외국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도 주효했다.





둘째는 외국의 다큐물에 못지 않은 충분한 시간과 공을 들였다는 사실이다. 이 프로그램은 세번의 겨울을 이겨내는 포유류의 겨우살이를 3년간 생생하게 담았다.





첩첩산중에 사는 포유류의 생태를 촬영하기 위해 설원에 잠복해 산양.멧돼지.고라니.수달 등을 카메라로 잡아냈다. 또 암수가 서로 포접한 채 꽁꽁 언 계곡에서 겨울잠을 자는 물두꺼비를 촬영하기 위해 추운 겨울 강가에 하염없이 앉아있기도 했다.





김센터장의 말대로라면 이번 수출은 "국내 방송물의 해외 판매 확대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물론 후속 수출작이 연이어 터져나와야 할 터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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