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구글+소니+인텔 … CEO 7인 “잡스 독주 막자” 선제 공격

중앙선데이 2010.05.23 03:43 167호 7면 지면보기
구글은 20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개발자대회(구글 I/O)’에서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기반으로 한 스마트TV를 공개했다.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이 6명의 동맹업체 최고경영자(CEO)들과 함께 구글TV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슈미트 회장, 어도비의 샨타누 나라옌 사장, 베스트바이의 브라이언 던 CEO, 디시네트워크의 찰리 에르겐 회장, 로지텍의 제라드 퀸들렌 사장, 소니의 하워드 스트링어 회장, 인텔의 폴 오텔리니 사장. [로이터=연합뉴스]
일곱 명의 수재는 천재 한 명을 넘어설 수 있을까?
올 초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애플의 신제품 발표는 ‘잡스의, 잡스에 의한, 잡스를 위한’ 행사였다. 1월 27일(현지시간) 애플 최고경영자(CEO)인 스티브 잡스는 검은색 터틀넥 티셔츠와 청바지, 흰색 운동화 차림으로 나타났다. 두 시간 동안 이어진 기조연설에서 그는 아이팟·아이폰을 잇는 차세대 전략제품인 아이패드를 선보였다. 잡스는 “애플이야말로 삼성·소니·노키아를 넘어서는 세계 최고의 모바일기기 업체”라고 기염을 토했다.

구글TV 공개, 막 오른 스마트TV 전쟁


애플의 최고경영자인 스티브 잡스가 올 1월 2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신제품 발표회에서 아이패드를 소개하고 있다. [블룸버그 뉴스]
그로부터 100여 일이 지난 이달 19일 같은 도시에서 ‘구글 개발자회의(구글 I/O 2010)’가 열렸다. 첫날 기조연설에 나선 구글 엔지니어링 담당 부사장 빅 군도트라는 안드로이드의 새 버전인 프로요(2.2버전)를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이 자리에 참석한 분들에게 HTC의 신제품 안드로이드폰인 EVO 4G를 나눠준다”고 말했다. 66개국에서 모인 5000여 명의 개발자가 일제히 환성을 질렀다. 군도트라 부사장은 “유튜브 생중계로 보고 계신 분들께는 미안하다. 다음부터는 I/O에 꼭 등록을 하라”고 농담을 하자 장내에는 큰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구글의 진정한 신무기는 둘째 날인 20일 선보였다. 에릭 슈미트 구글 CEO는 폴 오텔리니 인텔 CEO, 하워드 스트링어 소니 CEO 등과 함께 연단에 올라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한 구글TV 개발을 완료했다”고 선언했다. 미국 최대의 전자 유통업체인 베스트바이, 마우스 등 PC 주변기기 생산업체인 로지텍, 위성TV 업체인 디시넷, 포토숍·플래시 같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어도비의 CEO도 같은 자리에 모여 구글TV에 대한 지원을 다짐했다. 하드웨어-소프트웨어-콘텐트를 독식하는 애플에 대한 본격적인 전쟁이 마침내 선포됐다.

스마트폰에서 스마트TV로 전장 이동
“5년 뒤에는 시청자들이 현재 TV를 보는 방식에 대해 웃음을 금치 못하게 될 것이다.”

2007년 다보스포럼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이던 빌 게이츠는 TV 분야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예견했다. 방송사에서 보내주는 콘텐트를 멍하니 바라보는 ‘바보 상자’는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다. MS는 인터넷과 결합한 ‘커넥티드 TV’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TV가 동영상 콘텐트를 인터넷에서 실시간으로 내려받아 보고, 뉴스·날씨·e-메일 등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센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스마트TV’라고 부른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지만 스마트TV는 아직 대중에게 파고들지 못했다. PC의 기능을 일정 부분 떠맡으려면 프로세서와 저장장치 등을 갖춰야 한다. 리모컨 몇 번 누르면 드라마·영화·음악 등의 콘텐트를 손쉽게 찾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구글TV는 처음으로 이 같은 문제를 해결했다. 인텔의 저전력 프로세서인 아톰과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가 발전하면서 TV에도 적용할 수 있게 됐다. 유튜브를 비롯한 구글의 콘텐트도 막강하다. 여기에 어도비·디시넷 등을 우군으로 끌어들였다. 슈미트 구글 회장은 “우리는 하드웨어· 디자인 및 판매 분야에서 수십 년의 경력을 쌓아온 최고의 파트너들과 함께 일하게 된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구글TV는 구글이 혼자 만드는 TV가 아니다. 안드로이드폰의 소프트웨어를 구글이 내
놓았지만 단말기는 삼성전자·LG전자·모토로라·HTC 등이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안드로이드 OS가 누구나 무료로 쓸 수 있는 공개 소프트웨어인 만큼 구글TV 역시 내년부터 많은 제조업체가 채택할 전망이다. 구글은 우선 소니를 파트너로 선택했다. 올가을부터 소니 브라비아TV에 안드로이드 플랫폼을 올린 첫 구글TV가 전자제품양판점 베스트바이를 통해 팔리게 된다. 스트링어 소니 회장은 “시청자들은 독보적인 디자인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탄생한 소니 인터넷TV로 새로운 차원의 즐거움과 커뮤니케이션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글TV를 켜면 화면에는 스마트폰처럼 다양한 아이콘이 뜬다. TV를 선택하면 기존 지상파·케이블 방송을 볼 수 있다. 메일이나 검색을 누르면 바로 웹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유튜브나 아마존의 비디오온디맨드에서 동영상을 골라봐도 되고, 구글의 앱스토어인 안드로이드마켓에서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아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구글은 이번 I/O 행사에서 개발자들에게 “구글TV에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앱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어떤 앱이 나올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 안드로이드폰에서 할 수 있는 작업은 대부분 가능해진다. 로지텍은 구글TV를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리모컨을 개발하고 있다. 무선 키보드를 TV와 연결하거나 안드로이드폰과 TV를 연결해 스마트폰으로 TV를 조정할 수 있다. 단말기에 저장된 음악·동영상 등의 콘텐트를 TV 화면으로 보는 것은 기본이다. 구글보이스 서비스를 활용하면 인터넷전화(VoIP)를 통해 영상통화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 오텔리니 인텔 사장은 구글TV를 “TV의 재탄생”이라고 표현했다. 전통적인 TV가 인터넷의 무한한 콘텐트와 융합해 무한한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이다.

구글 “애플이 모든 걸 갖는 미래 원치 않아”
구글TV의 등장은 플랫폼에서 콘텐트까지 완벽하게 장악하려는 애플의 전략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애플은 2007년 셋톱박스 형태의 ‘애플TV’를 출시했지만 시장에서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PC에서 아이튠즈를 통해 내려받은 콘텐트를 TV 화면으로 볼 수 있는 기능만 갖췄을 뿐, 실시간 방송을 보거나 TV로 직접 아이튠즈에 연결하는 등의 기능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애플이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에 이어 ‘아이TV’를 곧 내놓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잡스 회장은 최근 “올해 안에 비범한 신제품을 선보이겠다”고 선언했다. 외신들은 이 발언을 휴대전화에 이어 TV 분야로의 진출을 선언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은 이달 1일 “애플이 일체형 TV를 출시해 아이튠즈를 기반으로 하는 ‘3스크린 전략’을 완성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미국 AT&T가 처음 들고 나온 3스크린 전략은 사용자가 동일한 콘텐트를 휴대전화·PC·TV 화면을 통해 자유롭게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KISDI는 아이폰을 생산하는 대만의 훙하이(鴻海)가 멕시코와 슬로바키아에 있는 소니 LCD 라인을 사들인 점에 주목했다. 박민성 연구원은 “훙하이가 LCD 디스플레이 기기를 생산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것은 애플이 TV산업에 뛰어들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애플의 움직임에 구글이 선제공격에 나선 셈이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애플과 구글은 더없이 가까운 사이였다. 슈미트 구글 회장이 2006년부터 최근까지 애플 사외이사를 겸직했다. 아이폰에 들어가는 지도·메일·검색 등의 서비스는 대부분 구글이 제공했다. 사이가 틀어진 것은 2008년 말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내놓으면서부터다. 구글은 2005년 앤디 루빈의 안드로이드사를 인수했다. 2007년 아이폰을 처음 내놓은 애플은 구글이 뒤통수를 쳤다고 생각한다. 반면 구글은 “애플이 모든 것을 갖는 미래를 원하지 않는다”고 맞섰다. 군도트라 구글 부사장은 “만일 우리가 행동하지 않았다면(안드로이드를 내놓지 않았다면) 한 사람, 하나의 폰, 한 통신사만 있는 가혹한 미래를 맞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애플이나 잡스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누가 봐도 애플과 잡스를 겨냥한 발언이다. 다음날 슈미트를 비롯한 일곱 명의 CEO가 함께 무대에 나서는 것으로 반(反)애플 동맹을 공식화했다. 백설공주는 일곱 난장이의 도움을 받았지만 잡스는 구글·인텔·소니 등 쟁쟁한 적수를 만난 셈이다.

“3년 뒤 TV 절반은 스마트TV일 것”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스마트TV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KT 경제경영연구소는 최근 “2013년에는 스마트TV가 국내 TV시장(260만 대)의 절반을 차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에 따라 삼성·LG·소니 등의 제조업체와 애플·구글·MS 등 플랫폼 업체들이 차세대 주도권을 잡기 위해 어지러운 합종연횡이 벌어질 전망이다. 디지털TV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브라운관TV 시절의 영광을 놓친 소니가 구글과 가장 먼저 손잡은 이유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소니가 한국 기업들이 주도하는 디지털 가전제품의 가격 인하 경쟁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성장전략을 그려낸다는 목적도 깔려 있다”고 풀이했다.

세계 TV시장 1위인 삼성전자는 스마트TV를 비롯한 가전제품에 독자적인 모바일 플랫폼인 ‘바다(bada)’를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전 세계 100여 개 국가에서 개방형 앱스토어인 ‘삼성 앱스’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개발도구(SDK)도 배포했다. 이를 통해 바다폰과 바다TV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게임·동영상·뉴스 등 각종 앱을 내놓는다는 전략이다. 이경식 삼성전자 상무는 “올해 출시하는 디지털TV 10대 가운데 4대는 인터넷 연결기능을 갖춘 제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측에서는 구글TV 참여 여부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홍보실 관계자는 “소니의 제품이 나와봐야 (삼성의 구글TV 생산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스마트폰과 마찬가지로 TV 역시 ‘투트랙’ 전략을 펼 것으로 보고 있다. 안드로이드마켓이 활성화될수록 삼성의 독자 앱스토어만으로 수많은 콘텐트에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LG전자도 스마트TV에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설 계획이다. 남용 LG전자 부회장은 올해 초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가전전시회인 ‘소비자가전쇼(CES 2010)’에서 “스마트폰에서 스마트TV에 이어 스마트그리드(차세대 지능형 전력망 시스템)’까지 ‘스마트’가 앞으로 10년을 관통할 핵심 키워드”라고 말했다. LG전자는 자체 플랫폼이 없는 만큼 안드로이드 기반의 앱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내년 이후에 나오는 고급 디지털TV는 대부분 안드로이드 플랫폼을 채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TV업체들이 구글에 호의적인 것은 애플보다 개방적이기 때문이다. 애플TV가 주도권을 잡을 경우 TV 제조업체들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 업체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대만 업체들과 가격경쟁을 벌여야 한다. 하지만 구글TV는 플랫폼만 공유할 뿐 업체별 정체성(아이덴티티)은 유지할 수 있다. 안드로이드 기반 TV의 보급이 늘어날수록 구글의 콘텐트 판매와 광고수익도 늘어난다. 제조업체와 플랫폼 개발업체가 윈윈하는 셈이다.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